실사 그래픽 x 극사실주의 회화
모방된 현실과 실제 현실 간의 간극 때문에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느끼게 되는 거부감. 언캐니 밸리 (Uncanny Valley). 로보틱스 분야에서 처음 등장한 이 용어가 이제는 CG를 이용하는 영화, 게임 분야에 자주 언급되고 있다. 그만큼 인간을 표현하는 그래픽스 기술이 실사에 근접할 정도로 발전했다는 반증이다. 실사에 가깝게 표현될수록 인간의 호감도는 증가하지만, 어느 임계점에 다다랐을 때 오히려 느껴지는 불편한 감각, 한편으로는 섬뜩함까지 느껴져 인간의 호감도는 나락으로 치닫는다. 실사와 유사한 모습에 감탄하면서도 아직까지 가시지 않은 인공적이며 작위적인 느낌에 자연스럽게 거부감이 느껴지는 것이다. 이렇게 비호감의 나락으로 빠진 곳이 바로 섬뜩함의 계곡, 즉 언캐니 밸리다.
천문학적 돈을 쏟아부어 제작한 CG 애니메이션이 흥행 폭망 한 사례는 심심치 않게 발견되는데, 바로 언캐니 밸리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화이날 판타지> <폴라 익스프레스> <베오울프> 등. CG로 최대한 모사한 애니메이션 속의 인간의 모습은 실제처럼 자연스럽지 않고, 마치 시체가 움직이는 좀비 같은 느낌을 주게 되어 관객의 호감을 사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그래픽으로 표현하기 가장 어려운 객체가 바로 인간의 얼굴인데, 인간의 얼굴은 피부, 주름, 동공, 머릿결, 눈썹 등 최고 난이도의 그래픽 기술이 필요한 세부 객체의 집합소다. 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미묘한 얼굴 근육 움직임은 어떠한가. 이 또한 만만찮은 기술이 요구된다.
2013년 미국의 GPU 개발 업체 NVIDIA에서 'Face Works'라는 기술과 함께, 인류가 드디어 이 언캐니 밸리를 빠져나왔다고 발표하였다. 미국의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의 Paul Debevec 교수가 개발한 Digital Ira라는 이 인공 캐릭터가 현존하는 가상의 인간들 중 가장 현실과 근접하다는 것이다. 그것이 'Face Works'기술을 통해 가능했다는 것인데, 실제로 이것을 위해 많은 연산과 고용량의 데이터 저장 그리고 무수한 렌더링 기술이 혼합되었고, 실제로도 이전에 비해 상당히 인간다움이 느껴지는 진일보된 모습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완전히 거부감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사실, 이러한 실사에 근접하려는 인간의 노력은 상당히 오래되었다고 할 수 있다. 바로 회화 분야에서 15-16세기경 플랑드르 지역에서는 사실주의 화풍이 유행하던 시절이었고, 이때는 눈에 보이는 대로 가깝게 그리는 것이 최고의 미덕이었다. 또한, 사실성을 높이기 위해 그림을 그릴 때 여러 번의 덧칠이 필요해졌는데, 유화물감도 이러한 필요에 의해 발명되었다. 유화를 통해 화가들은 작업을 완성하기 위해 계속해서 수정하고 수정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갖게 되었고, 시간의 변화에 따른 빛의 원리 그리고 색의 혼합에 대한 연구를 반복하였고 이를 그림에 반영하게 되었다. 무수한 렌더링을 겹겹이 수행하는 현대의 실사 그래픽스 기술과 크게 다르지 않은 셈이다.
19세기 현대로 넘어오면서 미국의 팝아트와 함께 등장한 '극사실주의'는 여기에 한술 더 떠 사진인지 구별되지 않는 그림을 그리는 것을 지향하게 되었다. 실제로 화가들은 사진을 보고 똑같이 그림을 그리는데, 그들만의 정밀한 테크닉과 노동 집약적인 시간 투자를 통해 사진과 동일한 회화를 완성한다. 언뜻 처음 보았을 때는 누군가 그림이라고 이야기해주지 않는 이상 사진이라고 느낄 수밖에 없는 그림. 따라서 그림을 소비하는 일반인들이 별다른 해석의 노력 없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그림이다.
이러한 그림에 언캐니 밸리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실사 그 자체인 그림이니까. 하지만, 또 다른 의미의 불편함이 다가온다. 사진으로 인지하였던 감각에 '이것은 그림이다'라는 사실이 추가되는 순간, 곧 뒤따르는 그림으로써의 존재 의미에 대한 의구심. 작가의 주관이 담겨야 할 그림 다움의 실종으로, 그림으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은 불편한 느낌에, 오랜 시간을 공들인 작가의 수고에 대한 놀라움만 남는다.
그래픽스에게도 언캐니 밸리가 사라지는 순간 유사한 느낌을 받을까? 오랜 기간 실사를 지향해 온 그래픽이 그 표현의 한계를 뛰어넘는 순간, 격정의 환희보다는 생각지 못한 허무감과 알 수 없는 그리움을 느낄지도 모를 일이다. 그때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도. "이럴 거면 그냥 비디오를 보지, 왜 그래픽스를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