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근법 x 가상현실
2012년 오큘러스(Oculus)에 의해 가상현실(VR)이 처음 소개되었을 때 대중은 열광했다. 모니터 저쪽 너머에서만 존재하던 세상이 어느 날 갑자기 눈앞에 펼쳐지니 신세계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그동안 맛보지 못한 새로운 사용자 경험에 모두가 흥분했고, SF 영화에서만 보아오던 세상이 곧 올 것만 같은 기대감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출시 초반에는 기기를 조금만 착용해도 멀미를 느끼게 하거나 상호작용을 위한 인터페이스 기술이 미흡해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몰입시킬만한 요소가 없었다. 점차 사람들의 관심은 사그라들었고 기술은 흥미위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그래서일까. VR에 대한 회의론도 등장했고 생각만큼 폭발적으로 시장이 성장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최근 페이스북 연구팀의 주도로 기술적 애로점들이 하나둘씩 극복되고 있고, 사회 관계망과 연계한 새로운 서비스가 소개되면서 대중으로 하여금 거둬들인 시선을 다시 돌리게 하고 있다.
이렇게 기대감을 높여가는 VR 이외에도 현실과 가상을 섞는 혼합 현실(AR:Augmented Reality), 공간에 사물을 투사하는 홀로그램(Hologram)까지, 가상을 현실로 끌어내고자 하는 바람을 실현하기 위해 많은 연구가 현재에도 진행되고 있다. 최근엔 이러한 개념을 통칭하여 확장 현실(XR: eXtended Reality)라는 말을 쓰고 있다. 이러한 확장 현실이 사람들을 시선을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이 탐하는 원초적인 시각적 욕구는 바로 "입체감"이다. 인간은 예로부터 인공물에 생명을 불어넣고 싶어 했고, 일차적인 감각인 시각을 통해 이를 실현하려 했다. 자신이 만든 세계는 물리법칙을 뛰어넘지 못하지만, 그 한계 내에서 어떻게든 자연현상을 재현해 현실감을 높이려 한 것이다. 현실에 다가서는 데 있어 첫 번째 관문이 바로 입체감이었다. 우리가 창조한 세상은 평면에 갇혀버릴 수밖에 없지만, 사물의 위치, 넓이, 길이, 두께를 평면에 표현하는 방법을 새롭게 고안함으로써 비로소 그 문을 열게 된 것이다.
마사초(Masaccio, 1401-1428)는 그 욕망을 제대로 실현해 낸 최초의 인물로 알려져 있다. 3차원의 실세계에서 느낄 수 있는 거리감을 2차원의 평면으로 옮길 수 있는 방법, 바로 "원근법"을 회화에 적용시킨 것이다. 사실 원근법은 마사초 이전, 건축가였던 브루넬레스키(Brunelleschi, 1377-1446)에 의해 이미 체계화되었는데, 마사초는 건축에 활용되었던 브루넬레스키의 원근법을 최초로 회화에 도입한 것이다.
마사초가 그린 "성삼위일체"라 불리는 이 그림은 그림 하단부를 중심으로 사물이 모든 방향으로 뻗어나가는 구도로 형성되어 있다. 평면을 바라보는 관찰자의 위치를 상정하고, 이로부터의 객체까지의 상대적인 거리를 수렴시켰을 때 도달하는 지점, 즉 "소실점(vanishing point)"을 기준으로 모든 사물을 전개시킴으로써 자연스럽게 거리감을 느끼게 한 것이다. 이 그림은 전면부의 인물과 제단은 관찰자에게는 가깝게, 후면부의 건물 천장은 중심부로 가면서 멀어지는 느낌을 주게 된다. 실제로 마사초는 이 벽화를 그릴 때 준비작업으로, 소실점에 해당하는 십자가 하단 지점에 못을 박고 그로부터 그림의 모서리에 끈을 연결함으로써 원근법을 설정해 놓았다고 한다. 원근법을 표현하는 수학적인 비례관계를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 그림이 처음 공개되었을 때 세간의 반향은 대단했다. 마치 애플이 아이폰을 내놓았을 때 전 세계가 열광했듯, 대중은 일대 혁명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였다. 지금 생각하면, 원근(遠近), 즉 멀고 가까운 것에 따라 사물을 작고 크게 그리는 것이 당연한 것일 수 있지만, 그 이전까지만 해도 회화가들의 표현력은 2차원에 갇혀 있었다. 아래 그림처럼 12 세기에 그려진 중세 유럽의 종교화, 제단화들을 보면 인물이나 사물에서 공간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같은 주제로 그린 마사초 성삼위일체와 비교하면 이해가 더욱 쉬울 것이다.
캔버스나 벽에 그림을 그리는 대상(object)은 3차원에 존재하지만, 이를 풀어내는 공간은 평면이었기에 그들의 사고력도 이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의 머릿속에만 존재해 왔던 그 감각을 일깨우는 그림이 나타나자 환호하게 된 것이다. 스티브 잡스가 그랬던가. "사람들은 그들이 무얼 원하는지 모른다"라고. 대중의 내재된 욕구를 채워주었던 그에게 현대인들의 열광했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이 원근법은 이후의 르네상스 회화 양식 나아가 모든 미술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현대로 와서는 3차원을 표현하는 그래픽스와 카메라 이미징 분야의 핵심원리가 되었다. 원근법이 생생히 살아있는 몇몇 서양 회화들을 잠시 감상해보자.
왜 인간은 멀리 있는 사물은 작게 가까이 있는 사물은 크게 느끼는 것일까. 인간이 사물을 시각적으로 인식하는 방법을 이해하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아래 그림과 같은 핀홀 카메라(pinhole camera, 바늘구멍 사진기)를 생각해보자. 실제로 렌즈가 보편화되기 전에 사진기는 이러한 간단한 구조로 되어있었다. 내부를 어둡게 만든 상자에 바늘구멍 하나만 뚫고 사물을 향하게 되면, 사물에 반사된 빛이 이 구멍으로 모이게 된다. 이 작은 바늘구멍을 통과한 빛은 상자 안쪽 평면에 도달하여 일종의 상을 맺는다. 인간의 시각 기관(visual sytem)도 다르지 않다. 공간을 떠다니는 빛이 사람의 안구를 통해 전달되어 망막에 그 상이 맺히는 것이다.
핀홀 카메라와 사물과의 관계를 측면도로 보면 좀 더 이해는 쉬워진다. 객체의 한 점 p와 이점이 맺힌 카메라 내의 점 q를 바늘구멍 c를 통해 연결하면 비례관계가 있는 두 개의 삼각형이 생성되는데, 삼각형들을 만드는 직선의 기울기는 같다. 카메라의 폭이 1로 정규화되었다고 가정하면 v/1 = y/z 관계가 성립한다. 따라서 카메라에 맺히는 영상의 길이(크기)인 v는 카메라와 사물과의 거리 z와 반비례관계가 존재해, 거리가 멀면 멀수록 맺히는 상의 크기가 작아지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카메라 내의 영상은 원본을 뒤집도록 맺히게 되는데, 인간의 시각 기관에서도 마찬가지로 뒤집힌 영상이 투영된다. 우리의 뇌가 이를 다시 재구성하기 때문에 올바른 영상으로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현대의 3차원 그래픽스 기술은 이 원근법을 기초로 발전하였고, 컴퓨터 그래픽스가 적용된 거의 모든 게임이나 영화에서 이를 쉽게 만날 수 있다.
영화 <트론(1982)>은 등장인물의 얼굴을 제외하고 모든 것을 그래픽스로 합성해 영화 시각 효과 (visual effect, VFX)의 신기원을 연 작품이다 (물론 흥행은 참패했지만). 이 영화의 한 장면인 오토바이 액션 시퀀스에서는 두 개의 소실점을 가진 가상공간이 소개된다. 영화 스토리 자체가 가상 세계를 소재로 하고 있기 때문에 디지털 세계임을 인위적으로 표현하는데 VFX가 대량으로 사용되었고, VFX에 의해 표현된 원근법이 생생한 거리감을 부각시킨다.
개인적으로 아주 재미있게 보았던 작품인 영화 <13층(1999)>의 한 장면을 보자. 자신이 가상공간에 존재하는 줄 몰랐던 주인공은 어느 날 실제 세상에서 온 누군가의 말을 듣고 무작정 고속도로를 따라 차를 몰고 간다. 결국 그 끝에서 그가 만난 것은 가상 세계의 경계. VFX가 마감 처리되지 못한 듯 그물망으로 표현된 풍경을 접하면서 비로소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깨닫고 망연자실해하는 장면이다. 중앙부의 소실점을 기준으로 원근법이 극대화되었는데, 지평선을 가로지르며 드넓게 펼쳐진 세상이 와이어 프레임으로 표현됨으로써 주인공의 허무감을 그대로 나타내는 듯하다.
이 밖에 <매트릭스> <아바타>등 가상공간이 주무대이고 VFX로 표현되는 장면이 많은 영화들이나 애니메이션 영화들에서는 어김없이 원근법을 적용한 장면이 등장한다.
그래픽스 기술의 집약체인 3차원 게임은 원근법을 빼놓고 설명할 수 없는 응용분야다. 특히, 빠른 속도감, 거리감이 중요한 레이싱 게임이나 1인칭 슈팅 게임에서는 이 원근법이 게임의 박진감을 높이는데 큰 역할을 한다. 이외에도 아웃 도어(Outdoor, 야외)를 배경으로 하는 어드벤처 게임이나 롤플레잉 게임에서도 심심찮게 원근법이 구사되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이 원근법을 일부러 제거하는 경우도 있는데, 게임 장르에 따라서는 과도한 원근법이 게임성(게임 자체가 주는 재미)을 해치기 때문이다. 의도적으로 거리감을 배제함으로써 게임 시나리오에 집중하고 감성을 높이기 위해서이다. 시점을 높이 잡고 장면을 거의 평행하게 평면에 투영, 게임 전체를 조망하도록 함으로써 관찰자로 하여금 게임 세상에서 멀리 떨어진 객관적 느낌을 갖도록 한다. <스타크래프트>나 <문명>, <심시티> 같은 시뮬레이션 게임이 대표적인 예들이다.
다시 회화로 돌아오자. 목적은 다르지만 이러한 원근법을 거부하는 양식은 일찍이 회화분야에서도 일어났다. 현대 미술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폴 세잔(Paul Cezanne, 1839-1906)은 인간이 사물을 인식하는 방식은 원근법으로 표현된 그림과 같지 않다고 믿었다. 우리의 눈은 소실점을 기준으로 질서 정연하게 나열된 장면을 한 번에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빛을 타고 들어오는 장면의 여러 조각들을 시시각각 받아들여 뇌에서 이들을 입체적으로 재구성한다는 것이다. 이 믿음을 실현시키기 위해 세잔은 빛과 사물 자체에 집중했고,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르는 이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평생을 바쳤다.
그 결과 아래처럼, 한 장의 그림 안에 복수개의 관점에서 본 장면을 담아냈다. 그는 우리의 뇌에서 바르게 정합된 이미지, 즉 눈에 보이는 장면을 그대로 그리는 데는 관심이 없었고, 사물과 이를 인식하는 방식에 대한 본질을 추구했다. 그래서, 그에게는 수학적이고 기계적인 원근법은 버려야 할 대상이었다.
'좋은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 바로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가 한말이다. 자신의 말처럼 그는 세잔의 철학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했다. 세잔이 천착했던 근원적 질문에 대답하기보다, '원근법을 거부하는 방식'을 차용해 발전시킨 것이다. 그래서, 그는 다시점으로 표현된 대상을 아예 해체 후 재조립해 조형마저도 파괴한 그림을 그려냈다.
피카소는 3차원으로 사물을 받아들이는 인간의 시각 기관을 비웃는 듯, 대상의 시각적인 편린들을 과감하게 2차원으로 전개시켜버린다. 정면과 측면 시점에서 바라본 인물의 모습이 한 장의 그림에 기묘하게 담기는 순간 우리의 시각 기관은 혼란을 겪는다. 세잔이 사물을 인식하는 방식을 '원근법의 무시'라는 방식으로 표현하려 했다면, 피카소는 세잔의 그 표현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극대화한 것이다.
전혀 입체적이지 않은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그가 <입체파>의 창시자로 불리는 것은, 대상을 이미 '입체적'으로 바라보고 이를 반복적으로 분해, 조립하는 과정을 거쳐 그림을 그려냈기 때문이다. 그래서 피카소에게 극한의 입체감이란 그 입체감을 파괴하는 것에 있었다.
이렇듯, 극한의 입체감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은 원근법에서 발현되었다. 3차원 공간상에서의 사물과 나와의 거리를 2차원의 평면에 효과적으로 표현함으로써 평면에 갇힌 사물을 공간으로 해방시켰다. 길이와 넓이로 표현되는 제한된 차원에 "깊이"가 추가됨에 따라 우리가 창조한 세상은 더 많은 자유를 갖게 된 것이다.
입체감을 극대화한 현대의 VR 기술은 1시점 원근법에 시점을 추가한 것이다. 다시점에서 바라본 여러 장면을 우리의 뇌가 재구성하듯, 두 개의 눈에서 바라본 장면을 원근법을 적용해 별도로 그려내고, 그 그림들을 우리의 시각 기관이 입체적으로 조립하는 지점까지 끌어온 것뿐이다.
3차원의 성질을 표현하는데 원근법이 사용되었지만 디스플레이 출력장치는 여전히 2차원에 머물고 있다. 그래서, 원근법은 이러한 2차원의 평면에 3차원을 표현하는 일종의 트릭인 셈이다. 궁극의 입체물인 홀로그램이 상용화되면, 우리의 세계가 실제 공간으로 투영되는 세상이 올 것이다. 그때 입체감이란 원근법에서 탈피할 때 일어날지도 모른다. 세잔이나 피카소가 원근법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표현했듯 말이다.
표지 이미지 출처: bernardmar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