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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나빠 Aug 11. 2023

아카이브에 공개된 초전도체 논문은 왜 주목을 받았을까?

기술 선점과 완성도 사이에서 타는 외줄


지난 몇 주간 일명 LK-99라는 초전도체 물질로 대한민국이 뜨거웠습니다. 매스컴은 연일 관련 기사를 다뤘죠. 진짜라면 노벨상감이라는 국뽕에 차오른 설레발까지 나돌았습니다. 관련 주가는 요동쳤죠. 국내외 전문가들이 공개된 레시피로 검증을 시도했고 앞다퉈 논평을 냈습니다. 아직 완전히 결론이 난 것은 아니지만, 전반적인 분위기는 회의적으로 돌아서는 것 같습니다. 관련 주가들도 다시 곤두박질 중입니다.


물리학도가 아닌 저로서는 그 연구 결과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할 입장은 아닙니다. 전공도 달라 제가 해온 연구나 실험 방법론이 순수과학에 적용될지 확신할 수도 없죠. 그래서 그 발명의 진위 여부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싶습니다. 전문가들이 알아서 잘해주시겠죠. 다만, 관련 보도를 처음 접했을 때 가졌던 하나의 의문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공식 저널이나 학회를 통해 발표된 것이 아닌, 아카이브(Arxiv)에 올라온 논문하나가 어떻게 이토록 세상을 시끄럽게 했는가?'



아카이브(https://arxiv.org/)는 일종의 문서 저장소입니다. 아무 문서는 아니고 학술 문서를 주로 저장하는 곳이죠. 누구나 무료로 학술 문서를 업로드하고 다운로드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논문 작성을 업으로 하는 대학원생이나 연구소의 연구원들이 애용하죠. 그럼 그들은 작성한 논문을 왜 정식 학회나 학술지에 제출하지 않고 아카이브에 올릴까요? 


초전도체 논문이 올라온 아카이브 사이트 (소스: https://arxiv.org/abs/2307.12008).


답부터 말하자면, 아이디어 보호와 기술 선점을 위해서입니다. 학교나 회사 연구소는 필히 경쟁 연구 기관이 있기 마련입니다. 어떤 연구 분야든 늘 해결해야 할 문제는 있죠. 연구원들은 문제에 대한 해법을 '논문 발표'를 통해 제시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그 해법을 더 개선한 또 다른 방법도 '논문'으로 발표되죠. 그렇게 발표되는 논문과 논문이 서로를 칭찬하기도, 물어뜯기도 하며 그 분야를 계속 발전시키죠.


따라서 '논문'의 첫 번째 필요조건은 1) 무조건 새로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존에 발표된 적 없던 독창적인 방식이어야 하죠. 그래서 연구는 일종의 아이디어 싸움과도 같아요. 어느 날 갑자기 기똥찬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해도 완전히 내 것이 아닙니다. 공인받아야 하죠. 누군가 내것과 같거나 유사한 아이디어를 생각할 수도 있잖아요? 하나의 문제를 놓고 여러 기관에서 고민하는데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성경에 이런 말이 있죠. '하늘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 (전도서 1:9)'.


연구원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공인받는 방법, 즉 '정식 논문'이 되기 위한 두 번째 필요조건은 2) 검증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검증은 아이디어를 실제로 구현하거나 실험을 통해 입증하고, 그 결과를 공신력 있는 사람들을 통해 확인받는 것이죠. 구현 및 실험이 실제 '연구 수행', 결과를 정리하는 것이 '논문 작성', 공신력 있는 사람들에게 확인받는 과정이 일명 동료 평가(Peer Review)라 불리는 '논문 리뷰'입니다. 동료 평가는 논문을 학회나 학술지에 제출하면 필히 거치는 과정입니다. 이 학회, 학술지에서 임명한 선배 연구자들의 까다로운 리뷰를 통과해야 비로소 '니 아이디어는 말이 된다'라며 공인받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논문을 학술지에 제출하고 리뷰 결과를 받는데 꽤 시간이 걸립니다. 요즘은 다소 빨라졌다고 하는데, 그래도 빨라야 3개월 늦으면 6개월 정도 걸리기도 해요 (예전엔 1-2년씩도 걸렸어요. 다 리뷰어의 게으름 때문). 그래서 혹시나 이 기간 동안 같은 아이디어로 누군가 다른 학술지나 학회에 논문을 발표라도 하면, 내 아이디어는 논문으로써의 첫 번째 필요조건인 독창성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뒤늦게 "내가 먼저 생각한 거야!"라고 주장해 봤자 아무도 안 믿어줘요.


말이 길어졌는데, 그래서 결국 연구원들이 아카이브에 논문 초고를 올리는 이유는 이런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입니다. 일단 업로드를 통해 초고를 공개해 두면, 후에라도 독창성 시비가 붙을 때 "내가 먼저 생각한 거야!"라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것이죠. 아카이브가 공신력은 없어도 이제 꽤 인지도가 높아졌어요. 그래서 정식 논문이 아님에도 구글 스콜라 (Google Scholar)같은 논문 검색 사이트에서도 검색이 되고, 정식 논문에서 레퍼런스로 참조하기도 하죠.


다만 아직 검증되지 않은 초고들이기 때문에 논문으로서의 완성도는 천차만별입니다. 완성도 있는 논문 초고가 학술지, 학회에 제출되면서 동시에 아카이브에 선공개되는 경우도 있지만, 기술 과학 논문의 구성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수준 낮은 초고들도 아주 많죠. 문법 틀린 영어로 작성된 것들도 많아요. 따라서, 아카이브의 초고들을 읽을 때는 꽤 비판적이 되어야 합니다. 저자가 주장하는 바는 전혀 검증이 안된 것이니까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연구원으로 지낼 때 신뢰성 문제로 아카이브 초고들은 잘 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가끔 예외가 있었는데,


학계에 이미 뛰어난 연구 실적(Track Record)을 달성한 기관에서 올린 초고

위 조건이 아니지만, 난제를 풀었다거나, 신박한 아이디어가 제목에서 드러난 초고


저자 이름이나 소속기관으로 이미 연구 결과의 신뢰성, 초고의 완성도가 예상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평소 유심히 지켜보던 기관이나 연구원이 아카이브에 초고를 올리면, 일단 '믿고 보는' 거죠. 그들이 해오던 연구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니, 연구 트렌드를 쫓아가기 위해서라도 읽게 됩니다.


반대로 유명 기관에서 올리지 않은 초고라 하더라도 '제목'만 보고 내려받고 읽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니 이 문제를 풀었단 말이야? 이걸 했다고?'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것들이죠. 학계의 어그로라고나 할까요? 미국에서 5년간 연구원으로 지내면서 딱 한번 이런 경우가 있었습니다. 평소에 관심 있던 문제를 떠올리고 방법을 찾던 중에, 똑같은 문제를 해결했다는 아카이브 논문 초고를 우연히 발견했죠. 미국 한 주립대 석사과정이 올린 초고였는데 완성도는 높지 않았지만 신묘한 발상이 참 인상 깊었습니다. 후일 우리는 그 친구에게 직접 연락해서 인턴으로 채용했습니다.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초전도체 논문은 아마도 두 번째 경우가 아닌가 싶습니다. 해당 기관(고려대, 퀀텀에너지연구소)이 관련 학계에서 얼마큼 저명한지는 알 수 없어 단언할 수는 없지만요. 그래서, 온갖 잡다한 논문 초고가 올라오기 때문에 묻히기 쉬운 아카이브지만, 곧바로 주목을 받게 된 것이겠죠. 저자들 말대로 대대적인 홍보를 한 것도 아니고, 통상의 학자들처럼 연구하고, 논문 쓰고, 아카이브에 공개한 것이 다인데 말이죠.


역사적 난제를 해결했다는 제목이 해외의 어떤 물리학도의 어그로를 끌었고, 이 물리학도는 즉시 SNS에 링크를 공유했습니다. 링크는 짧은 시간에 널리 퍼졌고 곧 미디어도 주목하게 되었죠. 한국 언론도 앞다투어 기사로 다루었고, 국뽕이 한 숟가락 더해지고 인터넷 밈과 함께 퍼져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지게 된 것입니다.




LK-99 저자들 인터뷰, 관련 기사들, 해외 석학들의 반응에 대해 정리된 문서들을 찾아보면서 다소 씁쓸함이 들었습니다. 실험 조건이 부실하다, 재현이 안된다, 토대가 되는 이론은 이미 사장되었다는 전문가들의 부정적인 의견이 더 많은 상황. 아직 해당 논문이 검증이 안된 초고라는 점 등으로 점점 한때의 해프닝으로 끝나가고 있기 때문이죠.


연구원으로 오래 살아온 입장에서, 명확하고 객관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한 이론과 철저한 검증을 거쳐야만 새로운 발견으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생각은 변함없습니다. 저자들이 과거에 어떠한 노력을 했던지는 둘째 문제겠지요. 국뽕이 끼어들 영역이 아닙니다.


다만, 이번에 알게 된 저자들의 이력을 보며 한 인간으로서 응원의 마음이 생깁니다. 비주류 연구기관에서 비주류 이론으로 세계적 난제를 해결하겠다고 오랜 기간 싸워왔던 그들의 도전정신만큼은 높이 사고 싶어요. 왠지 언더독에 마음이 더 가곤 하니까요. 저도 비주류였던 적이 많아서 일까요?


그들이 논문을 아카이브에 선공개하지 않고, 우선 정식 논문으로 제대로 검증을 받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바탕이 되는 이론을 정립한 저자들 스승의 유훈이기도 했죠). 전문가의 리뷰를 통해 부족한 점을 지적받을 수 있고 보완을 계속해나갈 수 있었을 겁니다.


사실 아이디어 보호는 그들이 이미 출원한 특허로 방어할 수도 있으니까요 (물론 얼마든지 청구항을 피해 가며 아이디어를 도용할 방법은 있긴 합니다). 공저자의 소속기관이 민간 기업이다 보니 실적에 대한 압박이 컸겠죠. 펀딩을 위해 국가 과제를 따내거나 민간 투자처를 설득하기 위해서라도 당장 실적은 필요했을 거예요.


하지만 아이디어 보호 차원에서 아카이브에 논문을 선공개하고, 비공식적인 리뷰나 피드백을 받으며 완성도를 높여가는 통상의 연구 방법을 사용하기엔, '초전도체'는 너무나 거대한 과학사적 난제였습니다. 순식간에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고, 검증 실패 시 그만큼 감당해야 할 후폭풍이 심한 주제였죠. 낙인 효과 때문에 학계 평판도 나빠질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더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기술 선점과 완성도' 사이에서 고민하는 한국의 많은 기초 과학자들에게 마음으로 응원을 보냅니다.





표지 이미지 출처: wikimedia commons, 노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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