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으로 이주하고 2년 뒤, 꿈에 그려왔던 첫 집을 샀다. 그리 크진 않지만 앞뒤 마당이 아담한 단독 주택이었다. 이사 후엔 바로 정원 공사를 시작했다. 온갖 잡목과 식물을 다 걷어내고 잔디를 새로 깔았다. 잔디 위에서 아이들과 함께 뛰어노는 모습을 늘 꿈꿔왔기에 정원을 꾸미는 내내 마음이 설렜다.
그러나 잔디 위에서 뛰노는 아이들을 보며 행복을 느낀 건 잠깐이었다. 막상 잔디를 길러보니 적당히 짧고 생기 있게 유지하기란 꽤 손이 많이 가는 일이었다. 잔디는 생각보다 빨리 자랐다. 덕분에 일주일에 한 번은 깎아주고 물도 자주 줘야 했다. 처음엔 의욕이 넘쳐 전용 기계를 사서 수시로 깎고 비료를 뿌리고 잡초 제거도 했는데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었다. 결국 우리 부부는 주기적으로 방문해 잔디를 관리해주는 전문 업체를 고용했다.
미국의 가장 일반적인 주거 형태인 단독주택은 기본적으로 마당에 잔디가 깔려 있다. 그 탓에 잔디 관리는 중요한 일과 중 하나다. 매달 인건비, 수도세, 비료, 제초제 등의 비용이 수없이 들어간다. 그래서 아이들을 다 키운 가정에서는 잔디를 걷어내고 ‘드라이 가든(Xeriscaping)’으로 바꾸는 경우가 많다. 선인장처럼 가뭄에 강한 식물을 심고, 자갈이나 모래 등으로 조경해 물 소비를 최소화하도록 가꾸는 것이다.
특히 내가 살고 있는 캘리포니아에서는 최근 몇 년간 가뭄이 심해 주 정부 차원에서 급수제한을 하고 있다. 일반 가정에서 물을 가장 많이 쓰는 용도가 바로 잔디 관리인데, 이를 일주일에 1, 2회로 제한하고 어길 시 벌금까지 부과한다. 최근엔 천연 잔디를 드라이 가든이나 인공 잔디로 바꾸는 지인들도 심심치 않게 본다.
캘리포니아와 달리 급수가 원활한 타주에서는 잔디를 방치하면 이웃이 정부에 신고해 벌금까지 물리기도 한다고 한다. 마르거나 죽은 잔디, 잡초가 무성해진 마당이 동네 경관을 해쳐 집값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에서 단독주택의 마당은 개인 재산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때때로 공동의 이익에 영향을 주니 말이다.
앞마당을 잘 활용하기 위해 이웃들이 머리를 맞댈 때도 있다. 12월이면 부지런한 이들은 자신의 앞마당을 다양한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꾸미곤 한다. 형형색색의 전등으로 1년에 한 번 오는 성탄절 분위기를 직접 연출한다. 특히 동네마다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유명한 거리들이 있는데, 이곳의 이웃들은 시즌마다 장식의 주제도 함께 결정한다. 그리고 가족을 동반한 많은 사람들을 저녁 식사에 초대한다. 마치 관광지처럼. 덕분에 나같이 게으른 사람들도 가족들에게 좋은 크리스마스 추억을 선물할 수 있다.
깔끔하게 관리된 앞마당과 화려하게 꾸며진 크리스마스 장식은 얼핏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적잖은 돈을 들여 정원을 관리하고, 크리스마스 장식을 꾸며 사람들을 초대할 '재력'이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성향이 강한 미국인들이지만, 타인에게 자신의 부유함을 드러내는 데는 거리낌 없는 그들의 모습이 때로는 아이러니하게 다가온다.
-예나빠
이글은 월간 샘터 8월호에 기고된 글의 초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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