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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나빠 Aug 02. 2023

미국 어느 집의 넘어진 담장

얼마 전 집의 담장을 보수했다. 올봄에 담장이 통째로 넘어져 버린 일이 있었는데, 고치는 것을 차일피일 미루다가 이제야 손을 본 것이다. 이곳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1년 내내 날씨가 화창한데, 한차례 예외 기간이 있다. 연말-연초 잠시 찾아오는 우기가 그 때다. 특히 올해 우기에는 좀 심한 강풍을 동반했는데 나무로 된 낡은 담벼락이 그만 세찬 바람을 이기지 못했던 것이다. 


미국의 단독 주택은 기본적으로 건축 후 50년 이상 된 노후한 집들이 많다. 그래서, 집을 사고파는 과정에서 새로 입주하는 사람이 집 여기저기를 수리하거나 리모델링을 하곤 한다. 전기, 바닥, 부엌, 화장실 인테리어부터, 때로는 벽을 트거나 구조를 변경하는 확장 공사까지. 우리 가족도 집을 산 뒤 ‘헌집 줄게, 새집 다오’하는 마음으로 크게 리모델링을 했고, 입주 후에는 앞 뒷마당 정원공사까지 했다. 그런데 이 공사 범위에서 빠진 부분이 바로 지붕과 펜스(담장)였다. 아니나 다를까, 손을 대지 않았던 담장에서 문제가 생겼던 것이다. 


넘어진 담장을 볼 때마다 ‘고쳐야 되는데..’라고 마음만 먹을 뿐 몇 달을 차일피일 미뤘다. 선천적 게으름 탓이다. 한국에서 아파트에 살 때는 게을러도 별 문제가 없었다. 살면서 귀찮은 일은 고작 쓰레기 분리수거 정도였다. 하지만 미국으로 이민한 뒤 싱글 홈(단독주택)에 살기 시작하면서, 한국에서는 겪지 않았던 일들이 내게 하나둘씩 찾아왔다. 


싱크대가 막히고, 비가 올 때 지붕에서 물이 새고, 여름이면 집안에 개미가 출몰하고, 다락에 쥐가 똥을 싸질러 놓고 간 것을 발견할 때면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시간과 돈이 드는 것은 둘째 치고, 역시나 수고스럽고 귀찮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것뿐인가, 마당 잔디를 깎거나 물을 주고, 낙엽을 쓸고, 차고를 정리하는 등 주기적으로 해야 할 일은 왜 이리도 많은지. 미국살이 6년 차에 접어들었지만 아직까지도 적응이 안 된다. 내가 왜 이런 잡스러운 일까지 해야 할까? 하지만 당연한 일이다. 나 밖에 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미국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예쁜 집은 알고 보면 누군가의 부지런한 수고가 뒤따른 결과물이다. 그 누구가 집주인이든 집주인이 돈을 써서 고용한 사람이든 말이다. 그래서 미국 첫 내 집에 이사하며 상상했던 모습은 현실에서 좀처럼 이뤄지지 않았다. 마당에는 예쁜 꽃들이 만발하고, 잘 조경된 푸른 잔디에서 아이들과 뛰어놀고, 뒷마당에서 가족들과 바비큐 홈 파티를 하는 아름다운 장면들말이다. 


조경공사가 끝난 날, 뒷마당에 조명을 달고 라운지를 잘 꾸미자고, 그리고 그 옆에 텃밭을 가꾸고 예쁜 꽃을 심자고 아내에게 말했다. 그 말을 한지 일 년이 넘었지만 뒷마당은 여전히 아무것도 없이 허전하다. 역시 현실과 이상의 간극은 크다. 아니 그 간극을 벌린 장본인이 게으른 아빠일지도 모르겠다. 


사람을 불러 담장을 수리하면서 해묵은 숙제 하나를 끝낸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미뤄둔 일들을 하나둘씩 끝내다 보면, 온전히 미국 싱글홈 라이프에 적응하게 될는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큰 맘먹고 홈디포(미국 자재, 인테리어매장)에 가서 바비큐 그릴을 사 왔다. 그리고 그 휑한 뒷마당에 그릴을 조립해 설치했다. 이게 뭐라고 아직까지도 안 하고 있던 걸까. 시험 삼아 그릴에 불을 붙이면서 생각했다. 방학을 맞아 한국에 방문한 아내와 아이가 돌아오면 맛있게 고기를 구워주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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