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P와 매니저

에필로그

by 예나빠




최종 보스 앙앙이


어렵사리 매니저 척척이와 퇴사 이야기를 끝냈을 때, 묵은 숙제를 힘겹게 끝낸 기분이었다. 홀가분한 마음에 퇴사를 위한 행정 절차를 숙지하려 "Leaving I사" 페이지를 다시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아웃룩에 새로운 미팅 스케줄이 잡혔다는 팝업이 떴다. 응, 뭐지?


'앙앙이:예나빠 일대일 미팅'


연구 조직의 VP인 앙앙이가 1:1 미팅을 잡은 것이다. 그것도 한 시간. 역시 메인 빌런은 최후에 등장한다. 내가 꿈꿨던 아름다운 이별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봐.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고. 이미지 출처=예나빠 태블릿


'나는 액션 영화의 주인공이 아니야. 최종 빌런을 상대할 필살기 따윈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고'. 그렇게 매니저와 상대하며 소진한 내 필살기를 다시 써야 할 상황이 아니길 바랐다. VP가 퇴사자를 형식상 한번 챙기는 만남이길. 그동안 고마웠다. 무운을 빈다. 네 앞날을 축복한다. 이렇게 좋은 것이 좋은 대화, 이런 상황이길 간절히 염원하며 예약된 VP와의 미팅룸에 들어갔다.


척척이가 나이스 가이라면, 사실 앙앙이는 쿨 가이였다. 임원답지 않게 농담도 잘하고, 친근하고, 소탈하며, 격식을 차리지 않았기에 연구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앙앙이가 VP가 되기 전부터 그와 친분이 있었다. 그가 FAANG 중 한 회사의 연구팀 매니저였던 시절 난 학회에서 그를 만났다. 그런데 그가 FAANG을 떠나 I사에 VP로 합류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매우 놀랐다. '그 좋은 회사를 두고 왜?'와 '근데, A가 VP가 될만한 경력자였던가?'라는 의문 때문에.


앙앙이는 FAANG 이전에도 여러 회사를 거치며 업계에 큰 반향을 일으킨 천재 연구원이었다. 그렇기에 연구원 경력으로는 그 누구도 의문을 표하지 았았다. 하지만, 그에게는 한 조직을 이끌 VP 경력은 전무했기에 많은 이들이 의심했던 것이다.


하지만, 회사에 합류한 뒤 그가 보여준 행보는 실로 놀라웠다. 그는 FAANG에서의 경험을 살려 경영진에 굵직한 연구 테마들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당위성을 인정받아 팀 확장을 시도했다. 빠르게 사내 인물들을 포섭했고, 기존 조직을 자신의 밑으로 합류시키며 그만의 연구 조직을 꾸려냈다.


그 과정에서 10명도 안되었던 연구팀은 30명이 넘는 연구 그룹으로 변모했다. 그런데, 야심 차게 꾸려진 새로운 연구 조직에 내가 첫 번째 이탈자가 된 것이다.


역시 그저 좋은 게 좋은 만남은 아니었다. 앙앙이는 척척이보다 훨씬 많은 질문을 내게 던졌다. 언제부터 이직을 준비했는지, I사에 아쉬웠던 게 많았는지, 왜 이직을 결심했는지, 현재 매니저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도 물었다. 그리고, '빈말이 아니라 넌 I사에서 정말 중요한 인재'라고 힘주어 강조했다.




'이 수석이 지금까지 한 일은 회사에 큰 기여였다고 생각합니다'


S사를 떠나기 며칠 전, 그룹장이었던 '왕공감' 상무는 그룹 전체에 보내는 메일에 그렇게 한마디를 첨부했다. 그가 정말 그렇게 생각했는지, 아니면 퇴사자에게 남기는 형식적 덕담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미국이라고 뭐 특별할 것 같니?' '거기 간다고 네가 성공할 것 같아?'라며 퇴사자들에게 빈정대는 임원들이 즐비한 회사에서, 그는 퇴사자 앞길을 기쁘게 축하해 주는 보기 드문 임원이었다. 덕분에 나는 좋은 감정만 남기고 S사를 떠날 수 있었고, 그를 내가 만난 좋은 상사 리스트 중 첫 번째로 기억하게 되었다.


왕공감 상무는 이후 S사를 퇴직한 후 한 스타트업의 CEO가 되었고, 그가 일 때문에 산호세에 출장 왔을 때 나는 그와 반갑게 해후했다. 반대로 내가 한국에 방문했을 때 나는 먼저 왕공감 상무에게 연락해 그의 회사를 찾기도 했다.




앙앙이의 끈질김은 척척이 못지않았다. 그는 내 연봉이 문제라면 자신이 해결해 줄 것이라고 큰소리쳤다. VP가 하는 말이라 살짝 흔들렸다. 'I사가 A사 연봉을 맞춰주고, 익숙해진 지금의 일을 계속하는 상황이면 그야말로 꿀 빠는 거 아냐?'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카운터오퍼를 받지 않겠다는 애초의 다짐을 다시 되새겼다. 척척이와의 대화 때처럼 '경력 향상'이라는 이유를 대며 회피술을 구사했지만, 그는 그런 이유라면 I사의 다른 조직을 소개해주겠다고 맞섰다.


'야. 너도 꿈을 찾아 FAANG에서 I사로 이직해 왔잖아. 그럼 내가 어떤 마음인지 알 거 야냐!'


마음속으로 몇 번이고 앙앙이에게 소리쳤다. 하지만, 난 모든 생각을 말로 옮길 만큼 어리석지 않았다. 슬기로운 퇴사생활을 위해 입꾹닫. 나이스하고 프로훼셔널하게 응수했다.


"제안 정말 고맙다. 인상적이다. 이렇게 나를 붙잡으려는 네 노력 때문에, 내가 I사에서 인정받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받은 기분이다"


"그건 정말 사실이야. 넌 I사에서 정말 중요한 인물이야"


'중요한 인물'이라니, S사의 왕공감 상무의 말과 겹쳤다. 앙앙이가 이런 낯간지러운 말을 할 줄이야. 짐작 가는 바는 있었다. A사로의 이직을 조금씩 준비하면서 나는 I사에서 하던 프로젝트를 잘 마무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인터뷰를 보면서도 연구에 집중했고, 막바지에 오랫동안 풀리지 않던 문제를 극적으로 해결했다.


이 결과는 VP였던 앙앙이에게 즉시 보고되었고 그는 반색했다. 그는 학회나 외부행사를 돌면서 내 연구 결과를 I사 차세대 제품의 주요 셀링 포인트(Selling Point)로 홍보하고 다녔다.


아마도 그의 과장 섞인 칭찬은 내 마지막 연구 결과 때문이 아니었을까. 덕분에 애초 결심대로 '마무리는 잘했다'라고 스스로 인정하고 홀가분하게 I사를 떠날 수 있었다. 앙앙이가 마지막날 내게 남긴 메일은 그 마음을 더 가볍게 해 주었다.


"굿바이. 예나빠. 너와 심도 있게 연구를 같이 할 기회를 갖지 못했지만, I사에 네가 남긴 기여에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고 싶어. 내 개인 메일계정은 xxxxxxx@gmail.com야. 앞으로도 계속 연락하자고. 네 새로운 행보에 행운이 깃들길 빌며, 미래의 어느 날 너와 또다시 함께 일할 수 있길 기대할게!"



슬픈 매니저 척척이


A사에 합류한 뒤 새로운 회사에 적응하느라 한동안 바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이직 한 달 즈음 뒤 매체를 통해 I사에서 대대적인 정리해고를 한다는 기사를 접했다. 코로나가 끝나며 반도체/PC 시장이 직격탄을 맞을 때였다.


변화를 대비한 N사나 A사는 상대적으로 충격을 최소화했지만, 상대적으로 재고율이 높았던 I사의 영업이익이 곤두박질쳤다. I사는 비용 절감을 위해 극약 처방을 내렸다. 전 직원 월급 삭감, 주식 지급 취소, 그리고 대대적인 정리해고. I사의 이러한 결정은 실리콘 밸리 빅테크들의 레이오프 열풍의 신호탄이 되었다. 이후 메타, 구글, 아마존 등이 줄줄이 레이오프를 발표했다.


사람들은 나를 만날 때마다 "어떻게 알고 사전에 I사를 귀신같이 빠져나왔냐"며 말을 건넸지만, 나는 그 농담에 웃지 않았다. 안도감이라기보다 착잡함이었다. I사가 이 정도에 쓰러질 회사는 아니지만, 상황이 안 좋다는 것은 누구에게도 반가운 소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혹시나 아는 이들에게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는지 걱정되었다. 그렇다고 전 직장 동료에게 연락해 '괜찮냐?'라고 물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로부터 몇 달 뒤 친했던 전 직장 동료 골골이의 제안으로 전현직 I사 연구원들이 함께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다. 골골이, 나의 I사 매니저였던 척척이, 그리고 나보다 먼저 I사를 떠나 N사로 이직했던 칼칼이가 함께 했다. 모임 시간과 장소를 문자로 알려주던 골골이는 한 가지 슬픈 소식을 전했다.


"사실 우리 매니저였던 척척이가 이번주를 마지막으로 I사를 떠나. 이번 정리해고에 영향을 받았어. 오늘 척척이를 만나게 될 텐데, 네가 놀라게 될 것 같아 미리 알려주는 거야."




"이 수석님. 왕공감 상무님 오늘 집에 가셨어요"


S사에서 I사로 이직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한국에서 톡이 하나 날아왔다. S사 퇴사 전에 내가 소속된 연구소의 부서가 통째로 사업부로 전배를 갔는데, 그곳에는 나를 잘 따르던 책임 연구원이 한 명 있었다. 그가 톡을 통해 왕공감 상무가 오늘 회사로부터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는 사실상의 해고 통보를 받았다는 소식을 전한 것이다.


연구소에서 왕공감 상무는 누구보다도 뛰어난 관리자였다. 특히 사람의 마음을 얻는 스킬이 뛰어났다. 상사들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고 사내 외에 많은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이를 통해 안 되는 일도 되게 만드는 재주가 비상했다.


덕분에 그는 40대 중반이란 비교적 젊은 나이에 임원이 될 수 있었다. 그랬던 그도 연구소에서 진행하던 대형 과제가 한번 비끗하고 그룹이 쫓기듯 사업부로 전배를 가면서 새로운 조직에서 점차 영향력을 잃어갔다. 결국 상무 4년 차에 짐을 쌌다.


그는 재계약 불가라는 연락을 받고, 급하게 전 그룹원을 소집해 인사말을 전했다고 한다. 규칙상 연락을 받은 날 바로 짐을 빼야 했기 때문이었다. 인사말을 하며 눈물을 훔쳤다고 했다. 대기업의 별이 되기 위해 누구보다 많은 시간을 쏟았지만, 별이 그 빛을 잃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I사 지인들 중 누군가는 레이오프에 영향을 받을 수도 있겠다 생각했지만, 그게 척척이가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통상 레이오프 시즌에도 상대적으로 매니저들은 그 영향권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자신의 팀에서 레이오프 대상자들을 어렵게 선별하는 것이 그들의 역할이니까.


알고 보니 내가 퇴사한 직후 연구 조직은 소규모 조직개편을 단행했고, 척척이는 보직을 TPM(Technical Program Manager)로 옮겼다고 했다. 팀들은 뒤섞였고 이 과정에서 그는 특정 팀을 더 이상 맡지 않지 않게 되었다. 대신 연구팀들과 사업부와의 관계를 조율하는 새로운 역할을 자원하게 된 것이다.


I사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척척이는 사내 여러 부서의 다양한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래서 TPM에 적임자였다. 하지만, 척척이조차도 회사에 급작스레 레이오프가 불어닥칠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지원업무의 성격이 강한 TPM은 회사가 어려운 시기에는 오버헤드로 간주되기 쉬운 보직이었다.


다행히 저녁 자리에서 만난 척척이의 얼굴은 의외로 밝아 보였다. 그는 이미 나이가 지긋했기 때문에, 혹시나 이번일을 계기로 은퇴라도 생각할까 궁금했다.


"척척아. 앞으로 계획이 뭐야? 당분간 쉬면서 다음을 준비할 거야?"


"아니. 나 일해야 돼. 쉴 생각 없어!"


척척이는 단호했다. 저 질문을 던진 내가 미안해 질정도로. 그랬다. 그의 주택 대출 모기지는 끝나지 않았고, 막내가 이제 막 대학에 들어갔기에 아직 은퇴할 준비가 안되어 있었다. 그는 I사에서 다른 반도체 회사로 이직한 VP, 디렉터들에게 열심히 전화를 돌리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요즘 집에서 프로그래밍을 다시 공부한다고도 했다. '그동안 내가 손을 놓은 동안 C++ 이 엄청 바뀌었더라'라며 해맑게 웃던 이 백발의 백인의 모습에서 왠지 모를 쓸쓸함이 느껴졌다. 내 미래 모습이 아니리라 누가 보장하겠는가.

재취업 의지를 불태우던 매니저 척척이. 이미지출처=예나빠 태블릿


A사에서 일하면서 그 뒤로도 I사 지인들의 탈출 러시를 목격했다. I사의 사정이 악화된 이후 많은 이들이 회사를 떠났고, 그중 일부는 A사로 합류했다. 그래서 A사에서 다시 만난 지인들도 꽤 되었다. 그리고, 다른 경로를 통해 입사를 타진하는 I사 인력들에 대해서 레퍼런스를 하기도, 아니면 직접 인터뷰에 참석하기도 했다.

모두 가라앉는 배에서 탈출하려는 이들이었다.


하지만, 반도체 시장이 일시에 경직되었기에 A사도 사람을 채용할 여유는 그리 많지 않았다. 채용의 문은 더 좁아졌다. 레이오프를 안 하는 것만 해도 다행인 상황이었다. 그즈음 나는 아내에게 우스갯소리를 했다.


"예나 엄마. 나 A사에 문 닫고 들어간 것 같아. 지금이었다면 입사 못했을 걸?"


아내는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 모든 것이 은혜야. 딴생각 말고 열심히 해"




미국 이직 시장의 희망 고문 (에필로그)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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