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이별 No.2

'가장 내리기 힘든 결정'이라는 가식

by 예나빠


"사랑이란 한숨으로 일으켜지는 연기"
-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A사 입사일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을 때 나는 I사 매니저 척척이와의 면담시간에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지금부터 매우 하기 힘든 이야기를 해야만 해. 사실 내가 얼마 전에 다른 회사로부터 오퍼를 받았거든, 그래서 I사를 떠날 수밖에 없을 것 같아"


담백하게 이야기했지만 듣기에 따라 왠지 비겁하게 들리는 표현이었다. 회사를 떠나려는 것은 본인 의지였으면서, 마치 다른 요인에 의해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으니 말이다. 척척이는 내 생각보다 충격을 받은 듯 말을 잘 잇지 못했다. 그동안 팀을 떠났던 많은 연구원들이 있었기에 충분히 익숙할 텐데.



"아, 저런. 이건 정말 안타까운 소식인데.."


매니저는 이내 정신을 차린 뒤 바로 질문을 던졌다. 이유가 뭔지. 그래. 이유. 모든 이직에는 그럴싸한 이유가 필요하다. 적어도 퇴사를 통보하는 지금 같은 시점에는. 며칠 전부터 고민했다. 뻔히 듣게 될 이 질문에 대한 대답. 아름다운 이별의 명분이 되어줄 이유. 서로에게 상처 없이, 웃으며 헤어질 수 있는 바로 그 이유말이다.



'쥐꼬리 같은 연봉'



본심이었다. 새로운 일에 대한 도전, 경력 향상, 자기 발전 같은 거창한 이유가 아니었다. 바로 그놈의 '돈'이 문제였다. 모기지 상환과 아이들 교육비로 지출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나는 근 1년 동안 매월 적자에 시달렸다. 그런데 I사가 주는 연봉으로는 꽉 막힌 현금 흐름을 도무지 뚫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I사가 주는 주식도 말 그대로 쥐꼬리였다. 그나마 손에 쥐여준 회사 주식도 성장주가 아니라 가치주, 오래 갖고 있어도 차익 실현을 거의 기대할 수 없었다.


그래서 I사는 양가감정을 들게 하는 회사였다. 변방의 엔지니어를 실리콘 밸리로 불러주었고, 비자와 영주권까지 해결해 준 참 고마운 회사였다. 영어가 부족한 내게 개인 튜터까지 붙여주었고, 둘째가 태어났을 땐 물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동종 업계 대비 짜디 짠 연봉으로 불편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애증의 존재였다.


"그동안 I사에서 리서치를 하면서 참 행복했어. 훌륭한 동료와 환경 덕분에 원 없이 연구하고 좋은 논문도 쓸 수 있었어. 다만, 이제부터는 연구가 아닌 실제 제품을 만드는 조직에서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어"


결국 두 번째 이유를 댔다. 내가 대답할 수 있었던 최대한의 그럴싸한, 흔하디 흔한 '경력 향상'이라는 이유였다. 아이러니했다. 내가 S사를 떠나면서 했던 말은 "개발이 아닌 연구가 하고 싶어서"였는데, 이제 난 I사를 떠나며 "연구가 아닌 개발이 하고 싶어서"라고 한다. 이율배반적일까. 아니면 정말 그동안 생각이 바뀐 것일까. 애초에 진짜 이유가 아니었기에 내 대답에 영혼이 담길 리 없었다.


척척이는 답답해했다. 믿기지 않다는 듯 연봉이 문제냐며 연신 물어 댔다. '개발이 하고 싶어'라는 이유라면 '우리도 사업부는 있어. 사내에서 그냥 부서를 옮기면 되잖아?'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차라리 내가 단도직입적으로 '돈이 적어서'라고 이야기해 주면 그에게 이 문제는 간단했을 것이다. 윗선에 이야기해 내 연봉 조정을 시도하면 되니까.


하지만 정말 연봉만 조정되면 나의 떠날 이유가 완벽히 사라졌을까. 내가 I사를 떠나려는 것은 '돈'때문이기는 하지만 그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직 자체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새로운 조직, 새로운 관계를 통해 내 경력에 바람을 불러일으킬 시점. 고인물이 되느냐 청정수가 되느냐가 달린 문제였다. 그래서 '돈'자체는 현실적이지만 부차적이었다.




"이 수석님, 미리 말씀해 주시지 그러셨어요. 저희도 미국 보내드릴 수 있는데.."


한국에서 S사에 퇴사의사를 밝히고 인사과와 의례적 만남을 가졌을 때, 인사과 직원 쿨쿨이는 '우리도 미국에 법인 있다'라는 말로 면담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내가 그간의 사정을 담담히 이야기하는 것을 묵묵히 듣고 있었다. 그건 내가 왜 회사를 떠나는지 이해, 아니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그것은 퇴사자를 배려하기보다, 해당 조직에 문제가 없는지 제대로 알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더 이상의 이탈자를 막기 위해서. 그래서 이 젊은 인사과 직원의 말은 왠지 공허하게 들렸다. 모든 퇴사자들에게 던지는 예의성 회유멘트였을까.




회유를 하려 하는 매니저에게 돈이야기를 꺼내지 않은 이유는 또 있었다. 애초에 카운터 오퍼를 요구하거나 받을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실리콘 밸리에서 카운터 오퍼 사례를 심심치 않게 봐왔다. N사로 이직하려다 I사에서 더 좋은 카운터 오퍼를 제시하는 바람에 남았다는 I사 연구원 잉잉이, 입사할 거라며 I사 오퍼에 사인까지 했다가 A사의 카운터 오퍼를 받고 A사로 돌아간 탈탈이.


철저히 시장 논리로 동작되는 미국의 이직 시장이기에 잉잉이와 탈탈이의 행동은 당연했다. 개인의 가치는 개인이 올려야 하는 법이다. 회사는 목소리 내지 않는 직원에게 반응하지 않는다. 적어도 내가 본 이 동네는 그런 곳이었다.


그런 면에선 난 여전히 동양의 아니 한국적 마인드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1) 카운터 오퍼를 받고 회사에 남았을 때 '언제든 회사를 또 떠날 놈'이라는 시선을 피하기 어려울 거라는 강박, 2) 오퍼를 줬던 회사에 입사를 취소하면 그 회사와 척을 치게 될 수도 있다는 우려. 내가 카운터 오퍼를 주저하는 이 두 가지 이유 그 무엇도 이곳의 사고방식과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난 I사와 A사로 뻗어있는 어떠한 다리도 불태우고 싶지 않았다. 일단 퇴사를 입 밖으로 낸 이상, 가장 이상적인 결과는 아름다운 이별뿐이다. 어떤 식이든 선택을 번복하는 순간, 누군가에겐 증오심을 남긴다. 그래서 퇴사 자체를 잘하는 것이 진리이며 다시 건너게 될지 모르는 다리를 살려놓는 길이다.


이직자에겐 만고의 진리 'Don't burn the bridge' 이미지 출처=예나빠 태블릿


척척이는 내 사정을 이해한 듯, 체념한 듯, 내가 만들어 낸 아름다운 이별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친절하게 퇴사 절차를 알려주었다. 퇴사를 알리는 일종의 레터를 써서 매니저에게 송부하면 공식 프로세스가 진행된다며, 양식을 보내준다고 했다. 그리곤 윗선에 보고하고 향후 절차를 알려주겠다며 면담을 마쳤다. 늘 그렇듯, 그는 나이스한 사람이었다. 절대로 적을 만들지 않는, 그래서 끝까지 미워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깔끔했다. 서로에게 앙금을 남기지 않고 깔끔하게 마무리 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회사 인트라넷을 검색해 퇴직 절차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읽기 시작했다. I사에 입사한 이래 5년 동안 한 번도 열람해 본 적 없던 페이지였다. 그런데 30분 정도 지났을까, 척척이에게 다시 콜이 들어왔다.


"방금 연구소 VP인 '앙앙이'에게 네 퇴사 이야기를 했어. 앙앙이는 너를 강하게 붙잡고 싶어 해. 그래서 네가 다시 생각해 봤으면 좋겠어. I사는 이제 공식적으로 너와 테이블을 차릴 거야"


테이블을 차린다(set the table). 협상을 한다는 영어 표현이 이렇게 쉽고 간결했다니. 미묘한 순간에 새로운 표현을 알게 되었다. 당황스러웠다. 이 표현만큼 쉽고 간결하지 않은 것이 지금의 내 상황이었다. 이 정도의 반응은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I사에 그 정도 일리는 없을 텐데.


"아, 나가는 마당에 회사에 그런 수고를 끼치고 싶지는 않아"


어떻게든 좋게 무마하려고 던졌지만, 내가 생각해도 어설픈 대답이었다. 협상하자는 상대에게 '그런 수고를 끼치고 싶지 않다'라니. 상대의 노력을 무시하고 고도로 멕이는 멘트였다. 물론 그럴 의도는 없었지만.


"아니야, 네가 테이블에 앉아 준다면, 그건 수고도 아니지. 회사가 더 바라는 일이야"


그는 끈질겼다.


"아, 사실 그 회사 오퍼에 이미 사인을 했어. 그래서 도리상 되돌리기 어려워"


끈질긴 상대를 단념시키기 위해, 나는 상도덕과 강호의 도리까지 언급해야만 했다.


"아냐, 그거 아무런 효력 없어. 우리한테 오려고 오퍼에 사인까지 했다가 A사로 돌아간 탈탈이 너도 알지? 괜찮아 괜찮아. 그건 아주 흔한 일이야."


탈탈이의 이야기까지 언급하며 그는 여전히 끈질겼다. 할 수 있는 말은 이제 더 이상 없었다. "정말 미안해. 난 정말 이거 원하지 않아"외에는. 끝까지 하고 싶지 않은 말이었다. 매니저를 단념시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척척이는 크게 한숨을 쉬며 아쉬워했다.




"이 전문님, 죄송해요. B팀으로 가고 싶어요."


S사 연구소 시절, 팀원이었던 '졸졸이'는 어느 날 내게 면담을 요청해 급작스레 이런 말을 던졌다. 그는 나와 나이도 비슷했고 직급도 같았다. 그래서 상호 존대를 하던 관계. 놀란 나는 그에게 그 이유를 물었지만, 그는 시원스레 답하지 않았다. 그저 '이 팀, 그리고 전문님이랑 잘 안 맞는 것 같아요'라는 말밖에는. 그리곤 이미 B팀의 팀장과 이야기를 끝내 놓았다고 했다.


'괘씸하다'라고 생각하기 앞서 답답함이 앞섰다. 정확한 이유를 모르니 말이다. 결국 다른 팀원을 통해 그 이유를 건너들을 수밖에 없었다. 졸졸이는 오래전부터 내게 서운한 게 참 많았다고 했다. 이미 감정적으로 내게 기분이 상해있었다. 내게 미움을 받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소한 내 말, 행동 하나하나가 그에게 상처가 되었다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가 그동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나는 그를 미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적어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말대로 내 마음 한편에선 난 그를 못마땅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능력은 최고였지만 철저히 이기적이었던 그가. 하지만 난 그걸 제대로 짚어주지 않은 채 피드백에 내 감정을 담았다. 그렇게 나는 비겁했다.


그렇게 한순간에 팀원이 등을 돌리려 할 때 들었던 마음은 '답답함'이었다. 서운함이 있었을 때 차라리 나를 들이받거나 허심탄회하게 말해주었다면, 오해가 커지기 전에 어떻게든 대화로 풀었을 텐데 말이다. 혼자 결정하고 마지막에 결과만 통보하는 것은 관리자에게 문제를 해결할 단 한 번의 기회를 차단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누구를 탓할 수 있을까. 졸졸이의 말처럼 난 그와 맞지 않았다. 그것은 역설적이게도 서로가 같은 성향의 인간이었기 때문이었다. 갈등이 생겼을 때 회피하고 표출하지 않는다. 대신 마음에 차곡차곡 담아두고 어느 순간 손절을 쳐버린다. 갈등을 봉합하려는 노력은 '구차함'일뿐이다. 나도 그도 그랬다. 그래서 오해는 쌓여갔고, 나는 최악의 관리자가 되었다.




예상밖의 매니저의 태도를 접하며, 이쯤 되면 카운터 오퍼를 받지 않더라도 테이블에 앉아줘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I사에게, 척척이에게 '한 번의 기회'는 줘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내가 한국에서는 받지 못했던, 관리자로서 문제를 해결할 기회를.


어쩌면 나는 졸졸이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그동안 서운한 것이 있었다면 매니저에게 말을 해줬어야 했다. 아니, 했었다. 내 연봉에 대해 서운함을. 하지만 내 본심은 언어장벽을 통과하며 한번 왜곡되었고 그의 마음에 다다르지 못했다. 난 그 뒤로 연봉에 대한 아쉬움을 그에게 다시 꺼내지 않았다. 구차했다.


그래서 카운터 오퍼를 받지도 않을 것이면서, 상대에게 여지를 남기는 것도 예의가 아니라 생각했다. 그것이야 말로 또 다른 '희망 고문'일지 모른다. 그들에겐 그 '희망'을 위해서라면 '고문'따위는 아무렇지 않을지 모르지만.


한편으로 고마웠다. 그가 이렇게 끝까지 붙잡아줬기에, 내가 적어도 I사에 무쓸모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안한 마음이 참 컸다. 상사와의 갈등, 인간관계, 정치질, 업무 스트레스와 같은 극단적인 이유가 아닌, 순수히 자본주의의 흐름에 의한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니저의 손길을 뿌리치면서 마음이 편할 수가 없었다. 어쩌면 미국에서는 절대로 생기지 않을 것 같았던 감정, '인간적인 정'이라는 것이 5년간의 세월 동안 어느새 자리 잡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나는 I사를 떠났다. 퇴직 통보가 받아들여지고 한 달의 시간 동안 최대한 매끄럽게 업무를 팀원들에게 인계했다. 연구소 특성상 연구원들은 개개인 또는 소수가 각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래서 퇴사자가 발생하면 해당 프로젝트는 정리수순을 밟거나, 프로젝트를 함께 하던 동료가 인수받곤 한다.


내 프로젝트에 부캐로 동참하던 '골골이'에게 코드리뷰 및 문서화로 말끔히 업무를 인계했다. 그리고 마지막 전체 팀 미팅시간에서 5년간 내가 해온 일들을 정리해 발표했다. 혹시나 내가 남긴 아이디어를 발전시킬 누군가를 위해서.


발표 마지막 슬라이드에 팀원 모두의 사진을 담았다. 그리고 한 명 한 명을 언급하며 그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같은 업계에 남아있는 한 언젠가 또다시 만날 사람들, 허투루 할 수 없는 소중한 인연들이었다.


마지막 날, I사의 모든 인연에게 퇴사의 변을 알리는 전체 메일을 돌렸다. 메일에는 오늘부로 I사를 떠나게 되었다, 모두 그동안 고마웠다는 말로 시작해서, '이는 가장 내리기 힘들었던 결정이었다'라는 상투적인 말을 담았다.


남들의 퇴사 메일을 읽을 때, 이 말이야 말로 가식이라 생각했다. 이직 결정은 손쉽지 않은가. 과정이 어려울 뿐이지. 하지만, 막상 내가 겪어보니 비로소 알게 되었다. 떠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많은 이들이 축하와 격려 답장을 보내주었다. 한 명 한 명에게 감사와 고마움을 담은 개별 답장을 보낼 때, 미국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을 것 같던 복잡한 감정이 쏟아졌다. 타인보다 내가 앞서는 가장 개인적인 나라에서 동료애라니.


아름다운 이별은 그렇게 완성되었다.




미국 이직 시장의 희망 고문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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