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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나빠 Oct 29. 2017

Loving Vincent

당신의 사랑하는 빈센트, 이 가을과 어울리는 영화


산타 클라라에 완연한 가을이 찾아왔다. 이곳에서는 한국에서처럼 고색창연한 단풍이나 낙엽을 볼 수는 없지만 아침저녁으로 느껴지는 선선한 기온이 계절의 변화를 알게 한다. 햇살은 여전히 따스하고 끊임없이 좋은 날씨가 타국에서의 삶을 그나마 외롭지 않게 한다. 


이 계절이 주는 기분 좋은 바람을 맞으며 영화를 한편 보러 나갔다. Loving Vincent. 벌써 몇 년 전인가. 고흐의 영혼을 스크린에 부활시키는, 그것도 가장 고흐다운 방식으로, 영화가 제작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줄곳 기다려온 영화였다. 영화의 트레일러를 보게 된 이후엔 난 단박에 사로잡혔다. 암스테르담에서 본 고흐의 붓터치가 손에 잡힐 듯 아직도 선명한데, 그의 그림이 화면에 살아 움직인다니. 가슴을 충분히 설레게 했다.



작고 아담한 소극장이었다. 오랫동안 기다려온 영화를 대형 스크린에서 만나지 못해 다소 아쉬웠지만, 한편으로 어쩌면 이 영화와 잘 어울리는 곳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지방 소도시의 작은 미술관에서 한적하게 그림을 감상하듯, 화면을 채우는 그의 그림을 조용히 볼 수 있었으니까. 주말이었지만 관객도 그리 많지 않았다. 


영화는 고흐가 죽고 난 일 년 뒤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고흐의 가장 좋은 벗이었던 우체부 조셉 룰랭의 아들 아르망 룰랭의 시선을 따라 흐른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의 부탁으로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내려 했던 마지막 편지를 전해주려 여행을 시작하고, 그 과정에서 고흐에 대해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된다 <후략>.



이 영화가 주는 가장 큰 기쁨은 아르망의 여정에서 드러난다. 파리, 아를, 오베르-쉬아즈를 오가는 아르망의 발길을 따라 그의 배경을 채우는 것은 너무도 익숙한 고흐의 그림들. 밤의 카페테라스, 밤의 카페, 노란 방, 별이 빛나는 밤, 까마귀가 있는 보리밭, 양귀비 들판 등 무수한 고흐의 그림들이 이 예의 그의 붓놀림으로 다가와, 너무도 친숙한 느낌을 선사한다. 또한, 조셉 룰랭, 탕기 영감, 가쉐 박사, 아들린 라부, 라뮤즈 등 고흐가 남긴 초상화 속 인물들을 보는 것도 큰 즐거움이었다. 유성 물감으로만 완성한 이 영화는 그렇게 우리에게 익숙한 고흐의 작품을 빌어 유화 자체가 주는 풍부한 색감을 스크린에 수놓는다. 그 고흐만의 색채가 관객의 눈에 투사되며 비로소 이 영화가 완성된다. 




영화는 최대한 빈센트 반 고흐의 방식을 지키려 노력했다. 영화의 모든 장면을 캔버스에 유화로 그려낸 것. 50 명의 화가 팀이 초당 12 프레임으로 88 분에 걸쳐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기 위해 총 64,000 개의 유화를 만들어 냈다. 엄청난 양. 이를 통해 영화 전체적으로 고흐만의 독특한 느낌을 고스란히 유지하게 되었다. 


블루 스크린에서 배우의 연기 (좌)  고흐의 그림의 배경 합성 (우)
화가에 전달되는 가이드 이미지 (좌)  최종 유화 페인팅 완료된 영상 (우)


물론 모든 영상을 통상의 애니메이션처럼 처음부터 그림으로 그린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장면은 블루 스크린에서 배우가 연기하고, 새로운 배경과 합성시킨 뒤, 화가에게 가이드라인이 되는 영상으로 가공된 후, 이 영상을 기반으로 화가가 유화 작업을 하는 것이다. 화가들은 촬영된 모든 프레임을 색칠하여 최초에는 초당 12 프레임 애니메이션을 생성하고, 마지막으로, CG의 도움을 받아 보간 된 이미지들을 채워 넣어 초당 24 프레임 비율을 달성한다. 



영화의 내용은 이미 많이 알려진 고흐의 죽음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극적인 긴장과 드라마가 있지는 않다. 사실 살짝 지루하기도 하다. 이미 빠른 영상에 익숙해진 우리 눈이 느림을 좀처럼 허락하지 않기 때문일까. 초당 24 프레임의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에 보다 보면 다소 답답한 느낌이 든다. 그럼에도, 빈 센트 반 고흐가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듯, 이 영화는 여전히 사랑스럽다. 그리고, 엔딩 크레딧과 함께 흐르는 Lianne La Havas가 부르는 <Starry Starry Night>가 여운을 가득 채워줄 때 잔잔한 감동을 받게 된다. 


한국에서도 곧 개봉할 텐데 모두들 한 번쯤 보셨으면 좋겠다. 왠지 이 가을의 색채와 참으로 잘 어울리는 영화일 것 같다. 



-예나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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