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때문'이라는 말로는 충분하지 않은.
"신입을 안 뽑는다."
"엔트리 레벨이 사라졌다."
요즘 가장 많이 듣는 말일 것이다. 사정은 미국도 다르지 않다. 미국의 노동시장 연구기관인 Burning Glass Institute(BGI)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1], 미국의 20–24세 학사 이상 청년의 실업률은 2018–19년 5.2%에서 2023–25년 6.2%로 증가했고, 대학 졸업생들의 전통적 취업 우위는 30년 만에 가장 좁혀졌다고 한다. 즉 대학 졸업장이 더 이상 취업에 유리하지 않은 시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 현상의 원인을 단순하게 설명한다. "AI 때문이다." "경기가 안 좋아서다." "요즘 기업들이 욕심이 많아졌다." 틀리지는 않지만 절반만 맞는 말이다. 그 진짜 이유는 AI 하나로만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건 기술, 조직, 비용과 책임의 방식이 동시에 바뀐 결과다.
기술 변화 속도가 지금보다 훨씬 느렸던 과거엔, 신입을 뽑는 것이 일종의 투자였다. 신입은 처음에 생산성이 낮을 수밖에 없다. 실수도 한다. 코드를 망치고, 설계를 잘못 이해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조직은 기다려 주었고, 몇 년 후를 보고 조직에 맞게 키웠다.
이유는 단순했다. 단순 버그 잡기, 간단한 기능 추가, API 연결, 테스트 코드 작성, 리팩토링 보조, 검증용 테스트벤치 작성, 실험 구동 및 결과 정리, 로그 정리, 스펙 문서 따라 구현.... 이러한 정형화된, 반복적이며, 연습용인 업무를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했기 때문이다. 신입은 이 '실무의 바닥'을 떠받치며 성장했고, 조직은 이 그 시간을 투자해 '쓸만한 인력'이라는 결과를 회수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이 일들의 상당수가 사라진 게 아니라, 다른 주체에게 흡수된 것이다. 반복적인 구현은 자동화 도구와 AI, 테스트 코드 작성은 생성 모델, 로그 분석 자동 분석 시스템, 그리고 간단한 수정은 시니어가 직접 처리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엔트리가 하던 일이 사라진 게 아니라 엔트리가 설 자리가 사라졌다는 점이다.
AI는 지시를 잘 따르며, 반복을 싫어하지 않으며, 비용도 거의 들지 않는다. 심지어 "이걸요? 제가요? 왜요?"라고 반문하지도 않는다. 결국 기업 입장에서는 "엔트리를 뽑아 가르칠 이유" 자체가 줄어든 것이다.
결과적으로 기업의 생각하는 가치 체계 그 근본이 바뀐다. 신입 교육은 비용으로만 잡히고, 성장의 과실은 다른 회사가 가져가며, 인재는 오래 머물지도 않는다. 결과적으로 기업 입장에서 "신입을 키우는 게 합리적이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래서 엔트리 레벨은 없어진 게 아니라, 구조적으로 밀려난 것이다.
이 현상의 본질을 바꿔 말하면, '기업이 더 이상 설명 가능한 실패를 감당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엔트리는 원래 "실패해도 되는 사람"이었다. 실수해도, 느려도, 잘못 만들어도, 그 과정자체가 학습이 되었다. 즉, 그 실패를 '설명'만 할 수 있다면 조직은 그 실패를 이해해 주었고, 개인은 다음에 더 나아갈 수 있었다. 그래서 엔트리가 비용이 아니라 투자였던 것이다.
나 역시 커리어 초반에는 실수 투성이였다. 대학원 석사시절 설계를 잘못 이해해 며칠을 날린 적도 있고, 선배와의 리뷰 자리에서 "이건 다시 짜야 한다"는 말을 듣고 멍해진 적도 많았다. 그때는 누군가가 이렇게 말해주었다. '지금 틀리는 건 괜찮다. 대신, 왜 틀렸는지만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그러나 AI 이후 그 시스템 구조가 바뀐 현재, 코드는 너무 복잡해졌고, 기술 스택은 너무 깊어졌으며, 의존성은 너무 많아졌다. 그리고 결과는 즉각 사업에 영향을 준다. 이 복잡한 상황에서 엔트리가 실수하면,
"왜 이렇게 되었는지 설명할 수 없게 된다."
시니어가 된 지금 이 말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 체감한다. 코드 한 줄의 문제가 아니라, 그 코드가 놓인 맥락 전체를 설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시스템은 너무 크고, 너무 자동화되어 있고, 너무 많은 부분이 블랙박스다. 누군가의 실수를 "이해해 줄 여지"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
이게 핵심이다. 버그는 AI가 만든 코드에서 발생하고, 시스템은 분산되어 있고, 책임의 경계는 흐릿해져 있다. 실패의 원인을 추적하는 비용이 엔트리를 키우는 비용보다 더 커져 버린 것이다. 그래서 기업은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차라리 실패하지 않을 사람을 뽑자."
정리하면 이렇다. 엔트리 레벨이 사라진 이유는 일을 못 해서가 아니라, 실패를 설명할 수 없는 환경이 되어버렸기 때문인 것이다.
결국 AI는 엔트리를 대체한 것이 아니라, 실패를 대체한 셈이다. 물론 AI도 실수를 한다. 환각을 내고, 말도 안 되는 코드를 그럴듯하게 만들고, 같은 논리적 오류를 다른 표현으로 반복한다. 심지어 틀린 답을 확신에 차서 말한다.
다만 AI는 기업이 감당할 수 있는 방식으로 실수한다. 같은 입력에는 같은 출력을 내기에, 재현이 쉽고, 로그가 남고, 수정 비용이 낮다. 결정적으로 '누가 왜 그랬는지'를 따질 필요가 없다. 왜 그렇게 했는지 설명이 길고, 맥락 이해 부족에서 나오고, 재현이 어렵고, 동료의 시간을 잡아먹는 엔트리의 실수와 달리, AI의 실수는 그래서 관리가 가능한 영역에 있다. 짜증은 나지만 말이다.
그래서 요즘 채용 공고를 보면 이상하다. 엔트리인데 3~5년의 경력을 요구하거나, 신입인데 시스템 이해를 요구한다, 주니어인데 주도성을 요구한다. 이런 말이 안 돼 보이는 공고를 올리는 기업이 원하는 건, 결국 이거다.
“이 사람이 내린 판단의 결과를 스스로 설명하고 책임질 수 있는가.”
엔트리 레벨에게 요구되는 최소 조건이 바뀌어 버린 것이다. 이제 엔트리는 배우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 작은 영역에서는 판단해 본 사람이어야 한다. 그래서 기업은 말하지 않지만, 사실 이렇게 채용하고 있다.
"엔트리 중에서 이미 도메인을 가진 사람."
스스로 판단하고, 책임질 수 있는 능력. 이것이 바로 도메인이고 엔트리, 아니 향후 모든 엔지니어가 갖춰야 할 능력이다. 그래서 이 시대가 지금 세대에게 더욱 잔인하다. 실패할 기회 없이, 바로 판단을 요구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세대의 불안은 게으름도, 능력 부족이 아니라 실패할 수 없는 구조에 처음부터 던져진 세대의 불안인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 역시 가끔 안도한다. 내가 커리어를 쌓을 수 있었던 시기에 이런 구조가 오지 않아서 말이다. 그리고 바로 그 안도감 때문에, 지금 세대의 불안이 더 크게 느껴진다.
이건 개인 문제가 아니라, 시대의 문제다. 그리고 이 구조는 나라에 따라 다른 속도로, 다른 방식으로 나타난다. 특히 한국에서는 이 문제가 더 빠르고, 더 거칠게 드러난다. 그 이야기는 다음 꼭지에서 조금 더 정면으로 다뤄보려 한다.
향후 예상 목차 (변할 수 있습니다)
PART 1.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 엔트리 레벨이 사라진 진짜 이유
* 이번 변화가 유독 잔인한 이유
PART 2. 왜 기존의 ‘스킬셋 전략’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가
* 왜 열심히 공부해도 불안한가
* “코드를 잘 짜는 사람”의 시대는 끝났는가
PART 3. 도메인 전문성이란 무엇인가
* 도메인 전문성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 도메인은 ‘지식’이 아니라 ‘구조 이해’다
* 설계자와 작업자의 결정적 차이
PART 4. AI는 HW도, SW도 바꾸고 있다
* SW 엔지니어의 자리는 정말 사라질까
“ 소프트웨어의 종말”이라는 오해
PART 5. 도메인 전문성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 왜 ‘기초만 잘하면 된다’는 말이 위험해졌는가
* 엔트리가 없는 시대의 성장 경로
PART 6.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문제
* 이전 세대와의 구조적 격차
* 경쟁이 아니라 입구가 사라진 시대
* 비난도 위로도 아닌, ‘해석’
PART 7. 도메인 전문가로 살아간다는 것
* 도메인 전문가는 어떤 커리어를 갖는가
* 이직이 쉬운 사람들의 비밀
* 평생 현역으로 일할 수 있는 조건
<에필로그> 그럼에도 엔지니어로 산다는 것
- 예나빠.
*참고문헌
[1] Levanon, G., Sigelman, M., Mamertino, M., de Zeeuw, M., & Guilford, G. (2025, July). No country for young grads: The structural forces that are reshaping entry-level employment. Burning Glass Institute. https://static1.squarespace.com/static/6197797102be715f55c0e0a1/t/68fa5bb9f727046443900bc4/1761237945960/No%2BCountry%2Bfor%2BYoung%2BGrads%2BV_Final7.29.25%2B%281%29.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