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막내다
"막내야~"
목 깊은 곳에서 말이 나오다가 목구멍 입구에서 막힌듯하다. 입안에 고여 있는 침이 가득 묻어 있는 탁한 발음을 내며 입 밖으로 나오면서 새어버린 약간 어눌한 목소리로 나를 부른다.
조금 뻥을 더해서 하루에 100번도 넘게 "막내야"소리를 나는 듣는다 .
내가 우리 부모님의 막내딸로 태어나 막내라는 이름을 하나 더 얻게 된 데에는 나름의 사연이 숨어있다.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16살에 가장이 된 아버지는 시골 말로 뼈가 빠지게 일을 안 해 본 것이 없이열심히 일만 하시며 사신 분이시다.
아버지의 어머니 나의 할머니는 아들 하나 딸 둘을 남겨 놓고 남편이 일찍 세상을 떠나버리자 과부가 되었다. 보릿고개보다 더 심한 일제시대와 6.25를 지내며 자식들과 가난한 살림을 꾸려가며 독한 여자가 되어 살았던 것 같다.
18살에 아버지에게 시집온 엄마의 말을 빌리자면 "너희 한마니 만치 독한 사람 없다.” 할머니를 독하다고 말한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신 할머니의 얼굴을 실제로 뵌 적이 나는 없다. 할머니의 얼굴을 그려놓은 사진을 보니 그림으로 그려진 사진임에도 불구하고 작은 얼굴이 아주 매서워 보였다. 찢어지게 가난한 3대 독자인 아버지에게 시집을 온 엄마는 내 위에 오빠 위로 4남매를 낳았다. 사실 1명의 오빠가 더 태어났지만 태어나자마자 돌림병에 저 하늘로 일찍 떠났다고 한다.
넷째 아들을 해산한 날 엄마는 할머니가 밥을 해주지 않아 남의 집을 일을 끝내고 돌아온 아버지가 밥을 차려주어 그제야 밥을 먹었다고 한다. 그것도 부족했는지 할머니는 아이를 이제 낳은 엄마에게 “밥만 먹고 두러누워있냐? 밥만 축내게 애만 많이 낳는다"며 구박을 했다고 한다.
산모가 해산을 하고 나면 몸조리를 해야 하는데 엄마는 독하고 매정한 시어머니가 있어서 몸조리는 생각도 못 했다고 한다.
출산 후 바로 다음날 일을 했다고 말한 엄마는 "너희 할머니처럼 독한 할머니 없어야 나 산 시상은 말도 못 해야" 라며 한 많은 시집살이 무용담을 한마디로 정리해 버린다.
독한 시어머니의 며느리 구박에 엄마는 넷째 오빠까지 낳고 그만 낳으려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덜컥 다섯째를 임신을 했고 아이를 지우려고 그 당시 장돌뱅이 약장수에게 애 떼는 약을 사서 먹었다. 아주 독한 약이었지만 약보다 더 강한 생명력을 지녔는지 아이는 태어나고 말았다. 바로 내 위에 오빠 우리집안의 막둥이가 태어났다. 그리고 똑같은 방법으로 막내인 내가 태어나게 되었다.
오빠와 나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생명인 것이다. 천덕꾸러기 마냥 어린 시절부터
"안 날라고 그랬는데 났어야"라는 말을 듣기고 했고
"엄마 나를 왜 나았어?"라고 물으면
"다리똑 밑에서 주서왔다"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다리 밑에서 주워온 아이 혹은 안 낳으려고 했는데 태어난 아이인 나는 4남 2녀 6남매의 우리 집 막내가 되었다.
형제들이 도회지로 나가지 않았을 때는 올망 졸망 아들이 많았고 모든 형제가 가운데 이름에 돌림자를 썼기 때문인지 내 이름이 있었지만 나는 막내로 불렸다.
어린 시절 막내들의 특권은 모든 위 형제들이 힘든 일을 할 때 힘든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바로 위의 오빠와 싸우기라도 한다면 더 위의 오빠가 내 편을 들어주기도 한다.
사실 섬마을 오지의 가난한 부부에게서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는데 태어난 막내는 귀여움을 받고 자라지 못했다. 살뜰한 보살핌을 받고 자라지도 않는다. 어리광을 피운 기억도 없다. 그저 스스로 형제들 사이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존재다.
같은 동네에 막내라는 이름을 가진 친구가 있었는데 국민학교에 들어갔을 때 그 친구의 이름이 진짜 '막내'라는 이름이라서 놀란 적이 있다. 키가 가장 작아 가장 앞에 앉거나 줄을 섰던 그 친구는 이름도 막내라서 친구들의 놀림감이 되었다. 지금 시대라면 자신이 좋아하는 예쁜 이름으로 개명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형제들이 한 명 두 명 학업을 위해 되시로 떠나고 집안에 남아 있는 아이들이 몇 명 되지 않자 부모님은 나를 막내라는 이름이 아닌 본명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지났다. 사실 사람들은 나에게 큰딸인지 물어온다. 사람들이 보기에 나는 막내성향이기 보다 큰딸 성향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엄마와 함께 지내면서부터 내 이름은 다시 막내가 되었다.
병원생활을 시작하며 내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엄마를 돌보고 있는 나를 "어떻게 부를 까요?" 물어왔고
나는 "그냥 막내 라고 부르세요" 로 시작했던 호칭 정리 였다.
어떻게 된 일인지 오빠들도 올케언니들도 나를 막내로 부르기 시작했다.
"막내 뭐 필요한 거 없어? 올케언니가 말한다.
"막내 별일 없냐?" 오빠가 물어온다.
“막내야 ~” 엄마 역시 이제는 내 이름을 잊어버린 듯하다
"엄마 내 이름 뭐야?"
"......"
내 이름을 한 번에 대답하지 못하고 한참 생각한 후에야 내 이름을 말하는 엄마가 나는 답답해진다.
"엄마 큰아들 이름이 뭐야?"
엄마는 큰아들 이름에서부터 둘째 아들 셋째 아들 이름까지 부르더니 그 뒤로 생각을 하기 싫으신 듯 입을 다시 다물어 버린다.
여전히 나를"막내야~"로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가 듣기 싫어지기 시작할 무렵
"엄마 내 이름도 몰라? 진짜? 내 이름을 안 부르면 이제 대답 안 할 거야"
답답한 나는 엄마에게 화난 목소리로 한 번은 화를 크게 낸 적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에게 사기를 친 고모의 딸인 사촌언니 이야기를 엄마에게 언성을 높여 한 적이 있다.
"어떻게 나에게 사기를 칠 수가 있냐고?"
그런데 그 뒤로 갑자기 나를 부르는 엄마의 호칭이 이상해 졌다. 내이름을 부르는 것 같은데 들어보면 고모 이름 으로 나를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어떤 날은 사촌언니 이름으로 나를 부르기 시작한다. 다른 날은 엄마의 동생인 이모 이름으로 나를 불러댄다.
"엄마 왜 그래?" 나는 덜 컬 겁이 났다.
그냥 차라리" 막내야~"를 부르게 놔 둘걸 엄마의 뇌를 자극해서 다른 이름을 부르게 한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막내야~"
오늘도 엄마는 몇 번을 불렀는지 셀 수가 없다. 막내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무엇 하나 할 수 없는 병들고 연약해진 엄마이지만 여전히 나는 엄마의 막내딸인 것이다.
내 이름은 막내다. 나의 본명은 잊혀지고 나는 막내로 살아간다. 그래도 막내야~를 부르면 안심이 된다. 마음이 놓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