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밤의 들려오는 소리가 이토록 아름다웠던가? 풀벌레들의 노랫소리가 이토록 영롱했던가? 여름밤 산책을 나갔다가 들려오는 벌레들의 소리가 황홀하다고 친구는 말했다.도시에서의 한낮은 매미소리에 가려 다른 벌레들 소리는 기억이 없다. 가을은 귀뚜라미 소리에 다른 벌레들 소리는 묻혀버리기 일쑤다. 가을인사를 하는 것 처럼 들리는 아름다운 벌레들 소리에 빠져드는 시골의 까만 밤이다.
시골집 책상에 앉아 있는 토요일 밤 텔레비전을 껐다. 잉잉거리는 냉장고 소리 이외에 내 귀에 들리는 소리가 있다. 바로 풀벌레 소리이다. 화장실 문 앞에서 들리는 벌레 소리와 부엌문 앞에서 듣는 벌레 소리가 다르다. 마당에서 들리는 소리는 어떨까 궁금하다. 풀벌레 소리에 이끌려 밖으로 나가 보았다. 문을 열고 나가자 곳곳에 흩어져있던 벌레들의 합주회가 시작되었다.
무대는 시골집 주위 어딘가 나무 위일 수도 있고 땅 아래 풀속일 수도 있다. 벌레들의 모습이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 자연 속에서 음악회는 이미 시작되었다. 그 음악회를 듣는 관객은 감사하게도 오늘도 나 혼자인 듯하다. 가로등 불빛이 벌레들 합창을 하는 내내 무대를 밝히며 스포트라이트를 비추어 주고 있다. 불어오는 가을바람이 벌레들의 음악에 장단을 맞추어 준다. 살랑살랑 사르르르 쏴아아아, 바람소리에 따라 나뭇잎은 춤을 춘다.
자연 교향곡이 흐르는 가을밤, 하늘과 땅과 나무 그리고 풀잎 자연 곳곳이 무대이다. 그리고 그 어딘가 살고 있는 작은 벌레들의 노래가 함께 어우러지자 가장 아름다운 교향곡이 되었다. 적막한 가을밤 벌레들의 노랫소리에 들으며 가을 속으로 깊이 들어간다. 가을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