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나 치매 그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죽음이다.
그렇다면 죽음 이후에 남은 것은 무엇일까? 살아남은 사람이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아픈 이들과 함께 한 기억을 안고 다시 살아가야만 한다. 그들과 함께 살았던 기억이 고통과 슬픔 아픔과 괴로움만 남는다면 어떠할까? 물론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안 좋았던 기억들은 빨리 잊어버리고 자신이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들은 또 잊어버리려고 하지만 말이다.
"막내야 나 치매 걸렸냐?"
한밤중에 엄마가 자다 말고 나를 불러 질문을 했다. 자신이 치매에 걸렸는지 의심스러웠나 보다. 그도 그럴 것이 며칠 전 치매안심센터에 다녀왔던 것이다. 지금까지 진행되어온 상황들로 무언가 의심스러운 것을 감지하셨던 것 같다.
치매 약값을 지원받을까 하여 의사 소견서를 받으러 대학병원에 갔을 때 간호사는 말했다. "우리나라 정말 살기 좋은 나라가 되었어요.치매약값도 지원해주고" 지금껏 주치의 선생님은 엄마의 상태를 경도 인지 장애 정도로 생각하고 머리 좋아지는 약을 처방해 주었다. 치매는 아니라고 진단을 했다. 그런데 계속되는 엄마의 상태가 의심스러웠는지 치매 진단 테스트를 한번 해보라고 권유했다.
그 결과 엄마는 치매 진단 테스트를 할 수도 없는 상태였다. 그리고 치매약 처방을 받았다. 알츠하이머형 치매일 경우에 도움을 준다는 약이었다. 물론 알츠하이머형 치매가 아니라 뇌혈관 치매라는 소견을 받았다. 이미 오래전에 뇌경색으로 엄마의 뇌는 많은 부분이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뇌졸중을 앓은 사람들은 치매에 걸릴 확률이 일반인보다 더 많다. 알츠하이머형 치매약이 엄마의 방황하는 뇌에 도움을 줄지 그렇지 않을지는 불확실하지만 먹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는 의견이었다.
만약 내 주위에 치매에 걸린 사람이 있다면 어떤 방식으로 대해야만 할까? 그 사람이 하는 낯선 행동에 잘 대처할 수 있을까? 지금껏 다른 사람들이 경험하지 못한 경험을 했다고 생각하지만 장기전이 될 수도 있고,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알 수 없는 치매에 잘 대처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오래전 사회복지 실습을 나갔을 때, 매일 4시만 되면 집에 가겠다는 할머니가 있었다. 오전에는 얌전하시고 아무 이상이 없는 것 같은 분이었다. 그런데 오후 4시만 되면 집에 가겠다고 막무가내 떼를 쓰는 할머니의 모습은 이해도 되지 않았고 감당하기도 힘들었다.
한 할머니는 갑자기 욕을 해댔다. 그렇게 친절하고 상냥하게 대하다가 어느 순간 무시무시한 욕을 쏟아냈다. 할머니를 진정시킬수록 더 욕을 해대 상대하기가 무서울 정도가 되었다.
실제 물건이나 지명의 이름을 잊어버리고 모든 것을 학교라고 말하며 거시기 있잖아 처럼 학교 있잖아 라고 말을 하는 분이 있었다.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지 몰라 답답하던 기억이 떠오른다.
자신의 이름도 나이도 자신이 지금 어디 있는지도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는 할머니를 보았다. 오직 살아 움직이지만 타인뿐 아니라 자신의 존재 자체조차 잊어버리는 무서운 병이 치매라는 것을 처음 인식했다.
누구에게 어느 순간 찾아올지 알 수 없는 치매 나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내 가족이라고 해서 비껴갈 거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만 하는가? 인생의 결국 우리는 모두 죽음을 향해 가게 된다. 그 죽음 이후에 남겨진 이들은 삶을 살아가야만 한다.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
장애를 가지고 있는 가족과 함께 산다는 것은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할 수 없다. 타인의 시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 나와 함께 하는 한 사람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때 관심받아야 할 한 사람이 보인다. 그리고 세상의 시선으로부터 자신도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장애나 치매에 걸린 가족들을 감추고 숨기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먼저 내가 부끄럽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람의 현재의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자존감이 해결되지 않으면 상처는 계속 안으로 곪게 되고 자신도 병들어 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오늘은 다시 오지 않을 하루이다. 이 하루를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슬픔과 괴로움으로 잠식당해 세상을 잿빛으로 만들지 않기를 바란다.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자존감을 잋어버리게되고 결국은 나도 함께 하는 이도 병들어 가게 되고 말 것이다.
당당하게 받아들이고 당당하게 세상을 향해 살아가자. 병든 것은 죄가 아니다. 병이 든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가장 존중받아야 할 대상은 타인이 아니라 지금 함께 하는 사람이고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후회 없이, 남김없이, 아낌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