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전원일기

by 약산진달래

엄마의 하루는 늦잠을 편하게 주무시고 일어나 식사를 하신 후 전원일기를 시청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아주 오래전에 방영한 드라마이지만 여전히 전원일기는 엄마가 평생 사신 시골의 분위기와 너무나 흡사하다.


전원일기 배경을 어느 날부터는 시골로 착각을 하시는 것 같다. 어떨 때는 시골로 돌아가 엄마의 뒷밭에서 시간을 보내시는 것 같다.

엄마와 친하게 지냈던 "행자네야~"를 부르기도 하신다.

"엄마 여기 어디야? 여기 시골이야 광주야?"

"내가 모른다냐 나를 바보로 아냐 여기 광주 재 "

라고 하시지만 엄마의 생각 속은 여전히 시골에 머물러있다.

"행자네가 아까 여기 있었어야"

시골을 벗어나서 살아보신 적이 없는 분이니시니 여전히 시골이 그리우신 거다 생각을 해본다.


"관산리 머시마들이 일 잘한다야"

오늘도 남자 배우들이 농사짓는 모습을 보시면서 말씀을 하신다.

전원일기에서 마늘을 심으면

"마늘을 심어야 하는데 어떻게 하나" 말씀하시고

콩을 심으면

"언니 한테 콩 씨 있는지 물어봐라'

말씀을 하신다.


며칠 전에는 전원일기를 보며 거름을 찾으셨다.

"상추밭에 거름 해야 하는데"

"엄마가 할 거야?"

"내가 할란다"

"엄마가 진짜 다해야 해 나는 안 할 거야"

엄마는 여전히 본인이 다 하시겠다고 장담을 하셨다.

현실세계로 돌아오시지 않고 드라마 속에서 계속 거름을 해아 한다고 고집을 하실 것 같아.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내가 수건 개 달라는 것도 힘들다고 다 안 개고 나한테 넘기면서 할 수 있겠어. 나는 거름 못해!"라고 이야기를 건넸다.

그러자 본인이 하시겠다는 말씀이 쏙 들어갔다. 더 이상 거름을 찾지 않으셨다.


사실 상추밭이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베란다에 있기는 하다. 베란다 작은 스티로폼 텃밭에서 겨울을 견디고 상추가 무성한 잎을 자랑하며 관상용으로 잘 자라고 있었다.

며칠 날이 좋아 베란다의 초록이 화분들이라도 보시라고 창문으로 들어로는 볕을 즐기게 해 드렸는데 상추가 눈에 밟히신 것 같다.


전원일기와 함께 이제는 사라진 엄마의 뒷밭이 생각 나신 듯하다. 그날로 관상용이었던 상추는 쌈이 되어 내 입속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엄마의 뒷밭은 시골 아낙네의 온갖 희로애락을 담고 있는 장소였다.


외로움도 서러움도 억장이 무너지는 답답한 일이 생길 때도 뒷밭으로 나가 돌을 줍고 풀을 메고 씨를 뿌리고 열매를 거두고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뒷밭과 함께 하셨다. 온갖 서러움을 버리기 위해 밭을 갈고 삶의 모든 한을 밭에 묻어 두 신 듯하다.


봄비가 내리고 나더니 남쪽에는 이제 봄이 되고 있다.


시골에서는 이제 1년 농사를 시작하기 위해 밭에 거름을 해야 할 시기인가 보다.


농부들의 진짜 전원일기 필름이 돌아가기 시작할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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