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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약산진달래 Jun 22. 2023

오디 서리

6월의 태양 아래 검붉게 익어 가는 오디를 발견했다. 시골집에서 큰 도로로 올라가다 보면 길가에 오디나무가 몇 그루 있다. 오디나무의 주인아저씨는 이미 할아버지가 되었고 주중에는 노인복지관을 다니고 계신다. 그래서인지 더 이상 오디 열매에 관심이 없으시다. 오디가 익어가는 것을 눈여겨보다가 결국 지난주에는 오디 서리를 하고 말았다.


가끔 한대씩 지나가는 차량 이외에는 지나가는 사람이라고는 개미 새끼 한 마리 없었다. 멀리 고추밭에서 풀을 메는 아저씨 외에는 말이다. 붉은 오디 한 잎을 입에 물었더니 아직은 덜 익었는지 쌉싸름했다. 몇 개 따지 않았는데 손은 벌써 핏물 자욱이 가득했다. 한 움큼 오디를 따서 들고 시골집으로 들어왔다. 그때까지 내가 오디 서리를 해가는지 본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싱싱한 오디를 씻어 엄마에게 드렸다. 작년에 이 오디를 정말 맛있게 드셨던 분이셨다. 그런데 아직 오디가 설익어서 인지 몇 알 드시다가 안 드시겠다고 하셨다. 오디 서리까지 해왔는데 헛수고인 셈이다. 다 익으려면 며칠은 더 기다려야 하지만 내 입으로는 몸에 좋은 과일이라 그런지 잘 도 들어갔다.


월요일 아침 노인복지관을 가기 위해 차를 기다리는 오디나무 주인아저씨를 볼 수 있었다. 큰 소리로 아저씨를 불렀다. 귀가 잘 안 들려서 인지 인사만 하신 줄 아셨나 보다.

나는 오디를 맡겨라도 놓은 사람처럼 말했다."오디 좀 따 먹어도 돼요?" "따 먹어라"

당연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돌아온 대답에 허락도 받았으니 다음 주에는 마음껏 오디를 따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십 년 전 즈음일 것이다. 오디나무를 심던 건강한 아저씨를 만난 적이 있다.

열매가 열릴 때 즈음이면 연세가 많이 드실 거라는 생각에 내가 물었다.

"이거 열릴때는 안계실 수도 있는데 누구 먹으라고 심으세요?"

"나도 먹고 자식들 먹으라고 심재 너도 먹어라"

나무를 심으며 하시던 아저씨 말씀이 생각이 났다. 그래서인지 오디 서리도 당당하게 했으리라.


이번 주말에 시골에 내려갔을 때는 오디 서리가 아니었다. 따 먹어도 된다는 허락도 맡았겠다 그릇을 들고 오디를 따러 갔다. 지나주에 아직 익지 않았던 오디들이 이제 검게 익어있었다. 땅바닥에 따주지 않아 햇볕에 말라버린 오디들이 아깝게 떨어져 있었다. 아무도 오디를 따지 않았던 것이다. 가지고 간 그릇 가득 잘 익은 오디를 따서 돌아왔다. 엄마에게 씻어서 드렸더니 이번에는 아주 맛있게 드셨다.


주말을 시골에서 보내고 광주로 올라왔다. 냉장고에 넣어둔 오디를 꺼내 먹을 때마다 뭐라도 좀 사드리고 따먹으라던 오라버니 말이 맴돌았다. 이번 주 시골에 내려갈 때는 맛있는 음료수라도 사들고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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