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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약산진달래 Sep 16. 2023

풍선초 식멍

식물이 좋다. 바라보는 것만으로 마음까지 깨끗하게 만들어 주는 듯하다. 식멍 뭔가 먹방같은 느낌도 나고  그 모습이 멍해 보이지만 가끔씩 식물을 아무생각없이 바라본다.  


아쉽게도 내 손은 식물을 살리기 보다 많이 죽이는 편이다.

집을 비운 두 달 사이  이웃집 식물 집사의 돌봄으로 우리 집 식물들은 아주 잘 자라있었다. 그런 것을 집에 돌아온 내가 잘 키워놓은 커피나무를 그만 화분 갈이를 하다가 퇴비로 돌아가시게 만들었다.  잘 자라주었던 커피나무를 생각만 해도 아쉽기만 하다. 커피나무뿐만 아니라 삽목을 하고 이제 자리 잡은 허브도  화분 갈이를 했더니  시들어 가고 있다.


이것과는 달리 시골에 뿌려놓은 식물의 씨앗들은 기대 이상으로 잘 자라주어 기쁨이 되어 주었다. 코스모스는  지난가을  코스모스 단지에서 엄마와 함께 씨앗을 받아온 것을 뿌린 것이다. 해바라기도 엘로우 시티 장성의 해바라기 씨앗이다. 백일홍도  친구로부터 씨앗을  받았다. 한여름으로 접어들며  집주변을 잡초들과 채소들과 더불어 꽃이 피어 알록달록 총천연색으로 물들여 주고 있다.  


그리고 풍선초다. 이 풍선초는 제주에서 물 건너 온 것이다. 블로그 이웃님의 풍선초 나눔을 받은 것이다. 작년에 아파트 베란다에서 줄을 타고 끝없이 넝쿨을 만들며 올라가는 풍선초의 모습을 바라보며 매일매일  식멍의 즐거움을 누렸었다. 그런데 풍선초 열매가 맺히는 것까지는 볼 수 없었다. 베란다에서 키우는 식물이어서 인지 부족한 무엇인가가 있었다.   


그때 받은 남은 씨앗을 시골집 뿌렸다. 어린 시절 돼지막이었던 입구 쪽에 한 줄로 나란히 씨앗을 뿌려두었다. 그것을 모르는 털보 아저씨는 그곳에 강낭콩 씨앗을 또 심었다. 그 이후 좁은 땅속에서  풍선초와 강낭콩이 서로 힘겨루기가 시작되었다.  

 초반전은 강낭콩의 승리였다. 강낭콩의 잎사귀가 자랄 때까지 풍선초 씨앗은 싹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강낭콩이 열매를 맺기 시작할 즈음 풍선초의 싹은 서서히 올라왔다. 그러나 강낭콩의 무성한 잎사귀에 가리어 기를 펴지 못했다.

폭풍우가 치고 난 후  풍선초의  덩굴이 잘 자랄 수 있도록 대를 지붕과 몇 개 연결해 놓았다. 그때부터 풍선초의 역전이 시작되었다. 강낭콩은 비를 맞고 시들어 버렸고 풍선초는 대를 타고 넝쿨을 뻗어 가기  시작했다. 이번 주에 보니 어느새 지붕까지 올라갈 만큼 덩굴이 자라있다.  

작은 풍선초 꽃이 피더니 이제 풍선초 열매가 맺히고 있다. 중앙에 하트 모양을 가진 둥근 모양의  풍선초 씨앗이 꼬투리 안에서 자리 잡고 있다. 풍선 초가 넝쿨을 뻗어가며 자라는 것을 보니 한여름을 잘 보내고 씨앗을 받아 풍선초 나눔을 해볼까 생각이 든다.

풍선초 꽃말이 어린 시절 재미라고 한다. 어린 시절 돼지밥을 주러 가던 곳에 풍선 초가 자라고 있다.  풍선초 식멍을 하다 보니 어린 시절 돼지막에서 내가 나타나면 코를 킁킁 되면  꿀꿀대던 먹방 돼지 한 마리가 떠오른다.


삭막했던 시골집 앞에 해바라기 꽃밭이 생긴 것처럼 내년에는 접시꽃밭이 생길 것 같다. 접시꽃 씨앗을 받고 싶단 말 한마디에 집까지 우편으로 보내주신 맘씨 좋은 이웃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내년에는 접시꽃이 활짝 피어나 접시꽃당신같은  패랭이꽃님을 생각하며 웃고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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