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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약산진달래 Nov 23. 2023

촬영실의 외침

어디선가 할머니 울음소리가 들렸다.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엄마 외에 다른 할머니는 없었다. 바로 그때 깨달았다. 열려있던 촬영실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그리고 혼자 생각했다. '저 안에는 엄마 같은 할머니가 엑스레이를 찍고 있을 것이다. 부러진 곳을 알기 위해 촬영기계 아래 누워 몸을 이리저리 굴려야만 하는데 몸 어딘가가 부러진 할머니는 작은 움직임에도 고통스러워하는 것이다.'라고 말이다.



엑스레일 실안에서 들려오는 엄마의 고통스러워하던 목소리를 자주 들었다. 엄마가 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찍을 때면 긴장을 했다.  엑스레이를  찍을 때마다 엄마는 소리를 질렀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자비하게도 그 소리는 외면당해야만 했다.  할머니의  고통스러움은 아랑곳하지 않고 촬영기사들은 본연의 임무를 완수했다.



엄마의 치료를 기다리는 시간 내내 할머니의 외침은 멈추질 않았다.

" 아야 아이고, 아이야, 아이고 "

비명소리는 병원 안의 사람들의 주의를 끌었지 만 게  모두 각자의 아픔과 고통으로 몰두해 있었다. 그래서인지  할머니의 외침은 병원의 허공에서 메아리칠 뿐이었다. 갑자기 '꽝' 하고 문이 닫혔다. 그때야 비로소 할머니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게 되었다. 촬영실 문이 닫힌 것이다. 그리고 나도 더 이상 그 소리가 주는 과거의 기억을 뇌쇄기고 싶지 않았지만 힘들었던 시간들을 더듬고 있었다..



벌써 엄마의 병원수술은 몇 번째인가? 15년 전즈음
허리수술을 할 때 수술 후 엄마의 병문안을 갔었다. 그때만 해도 엄마는 혼자서 병원에 있을 수 있었다. 10년 전 왼쪽다리 고관절 수술을 할 때 엄마의 병실을 지켰었다.  6년 전 엄마의 뇌출혈,  낙상, 오른쪽 고관절 수술 연이어 고통스러운 시간이 일어났다. 5년 전 낙상 좌측 고관절 재수술, 그리고 허벅지 뼈 부러짐, 2년 좌측 고관절 염증 발생 후 1년 동안 일주일에 2~3일은 병원에 들러 살을 뚫고 염증치료를 해야만 했다. 그리고 1년 전 고관절 수술을 다시 했다. 수술 후 바로 폐에 물이 찼고, 대장인지 소장 어딘가에 출혈에도 엄마는 다행히  살아남았다. 다시는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시 3개월 전 낙상으로 무릎아래 다리뼈의 골절 됐다. 그렇게 깁스를 하고 2개월이 지나고  이제 며칠남지 않았다. 2주 전 기브스의 발가락 부분을 절단하며 기브스를 자른 부위에 상처를 남겼다.



이 많은 시간 동안  엄마는 100번은 넘게 엑스레이를 찍었을 것이다. 엑스레이를 찍는 동안 간혹 약한 외침을 외쳤을 것이다.  어떤 시간은 방금 전 들려오던 할머니의 외침보다 더 고통스러운 외침을 외치며 울부짖었다. 그리고 나는  그 소리를 촬영실 앞에서 눈물 흘리며 마음 졸이며 들었다.​

촬영실의 고통스러운 외침은 그 시간이 지나면 잦아든다.. 그러나 그전에도 있었고 그 뒤로도 견디어야 할 아픔은 남아있다. 병원로비에서 들려온 할머니의 잠깐의 아파하는 외침에 엄마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다시는 그런 고통이 찾아오지 않기를 바라지만 장담할 수 없다. 다시는 사고가 생기지 않기를, 지금보다 더 큰 아픔은 아니길 간절히 기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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