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진단을 받은 지 1년이 되었다. 신경과 병원 외래를 갔을 때 치매검사를 다시 받아야 한다고 했다.
엄마를 모시고 검사실안으로 들어갔으나 침묵으로 일관하는 엄마로 인해 대답하라고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검사를 방해했는지 나는 검사실 밖으로 쫓겨났다. 분명 엄마는 대답을 잘 못할 것이다. 정말 몰라서 못하는 것인지 대답을 안 하는 것인지 답답하기만 하다. 어떨 땐 잘 기억하는 것 같은데 어떨 땐 정말 모두 다 잊어버린다.
분명 지남력에서는 아는 것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올해가 몇 년인지 몇 월인지 며칠인지 요일도 계절도 잊고 살아가신다. 우리나라 이름도,살고 있는 도시도, 현재 장소도, 몇 층에 살고 있는지 엄마는 잊었다.
기억력은 어떨까.따라 말하기는 할수있을 것이다. 비행기 연필 소나무 이세단어는 언제나 물어보는 단어이니 바로 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주의집중력은 어떠실까 1,2,3,4 세는 것도 잊어버렸는데 빼기가 가당키나 하겠는가. 대답을 하나도 못하실 것이다. 기억회상 역시 어렵지 않을까 기억했던 소나무 연필 비행기를 기억해서 말할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이름 대기는 아마 가능할것이다.시계볼펜
명령한 것을 할 수 있을까? 종이를 뒤집고 반으로 접은 다음 저에게 주세요. ㅎㅎ 여기서 저에게 주세요만 가능할 것이다.
따라 말하기는 가능할 수 있으나나 읽기 쓰기 도형은 못하신다.
K-MMSE척도 검사지 질문은 매해 같은 내용이지만 해마다 조금씩 더 어려운 문제가 된다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할머니 어디사세요?"
신경과 교수님 질문에 고개숙인채모르쇠로 고개숙인 엄마를 대신해 내가 대답했다.
"요즘 말을 안해요.대답도 잘 안 하시고요."
엄마를 살펴보시던 신경과 의사 선생님은 "우울증에 걸리셨네요"라고 말씀하셨다.
"우울증 약을 처방해 드릴까요?"
"우울증은 아닐거에요"
한 번도 엄마가 우울증에 걸렸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단호히 부인했다. 우울증 약을 드시면 신경이 안정되어 저녁에 잠을 더 잘 잘 거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더 많은 약을 먹게 하고 싶지 않았다. 치매검사결과지를 보더니 지남력에 대한 부분이 현저하게 낮아졌다며 치매약의 종류만 바꿔주셨다. 아침에 먹던 치매약도 저녁에 먹는 약으로 변경 되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잠시 엄마의 상황을 돌아보았다. '우울증은 아니냐'에서 '우울증에 걸릴 만도 하겠구나'로 '우울증일 수밖에 없겠구나' 결론 내렸다. 지녁 한 해 동안은 매일 살을 파는 고통 속에 보냈다. 그리고 수술 후도 죽을 고비를 간신히 넘겼다. 돌아가실 수도 있었는데 다행히 생명의 줄을 놓지 않으셨다. 그런데 또 다리가 부러져 3개월을 꼼짝 못하고 누워서 보냈으니 초 긍정의 사람이라도 우울해질 수밖에 없겠다.자신 스스로 몸을 돌보지 못하는 사람은 누군가에게 자신의 몸을 의탁해야만 하는데 아무리 잘 돌본다고 해도 받아들이기 힘들었으리라.
우울증이라고 생각하니 말이라도 더 시켜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이름이 뭐야 "
눈물약을 넣어달라는 엄마에게 이름을 가르쳐 주지 않으면 눈물약을 안 넣어주겠다고 억지를 써본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엄마에게 다시 물어봤다.
"엄마 남편이름이 뭐야?"
남편이름도 잊어버렸는지 대답이 없다.
"엄마 큰아들 이름이 뭐야?"
"핸식이"
자신의 이름이나 남편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아도 엄마의 마음에 가장 큰 애증으로 자리 잡은 큰아들의 이름은 바로 기억해 내신다.
"오늘 뭐 했는가?"
"잠잤재"
"잠자고 또 뭐 했는데"
"모른다."
"오줌 싸고, 밥 먹고 했지"
"엄마 딸이 잘 돌봐주는가?"
" 잘 돌봐 준다."
다행인 것일까. 치매에 걸려도 우울증에 걸려도 생각나지 않은 것들이 많아도 싸고 먹고 자고 마지막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는 해결하고 사시니 말이다. 다행이다 그래도 더이상 욕구불만은 없으시니 말이다.
결국은 아무것도 필요 없이 인생의 마지막엔 먹고 싸고 자는 것 밖에 남지 않은 인생인데 무얼 그리 아등바등 걱정하며 살고있을까... 우울증 때문인지는 몰라도 단순한 엄마의 하루에 생각이 많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