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야 큰 개 한 마리가 밖에 있어야" "개 들은 다 묶어 놨는데" 시골집 마당에서 놀던 강아지 3마리를 모두 자신의 자리에 묶어 놓았는데 문 앞에 개가 한 마리 더 있나니 개가 풀리기라도 한 것일까.
엄마를 모시고 시골집에 내려온 지 4일째다. 도시에서 생활할 때는 "시골 가자. 시골 가자" 하시더니 시골집에 내려오니 "불편하다. 불편하다" 하신다. 그래도 적막한 시골집 휑한 마당에 강아지 세 마리가 동반해 주니 외로움이 감해지는지, 오늘아침에만 해도 "개한테 가자"라고 하시더니 마당으로 나가 햇볕에 앉아계신다. 주중에는 매일 묶여 지냈던 강아지들이 풀어놓으니 주어진 자유에 어쩔 줄 몰라하더니 질주를 한다. 마당을 지나 큰길까지 달려갈 판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제 집 앞에 있는 밭의 농장물의 추수를 거의 끝냈다는 것이다.
방 문을 열기라도 하면 강아지들이 졸랑졸랑 꼬리를 흔들어대며 다가온다. 신발을 신고 마당을 나서기라도 하면 나서고 싶은지 나보다 먼저 앞장서 걸어간다. 한 마리가 가까이 오면 나머지 두 마리도 어디선가 나타나 내 곁으로 다가온다. 서로 사랑을 먼저 달라고 고개를 드밀고, 발을 내밀고, 혀로 맨살을 핥아댄다. "엄마 한 마리 데려다 키울까" 강아지를 쓰다듬으며 엄마에게 내가 물었다, "그러자. 너를 엄청 좋아한다." "엄마도 안아볼래" 엄마에게 가장 의젓한 강아지 마루를 안겨주었다. 마루는 긴장을 했는지 엄마의 무릎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착하다는 듯이 예쁘다듯이 엄마는 마루를 쓰다듬었다. 평화로운 풍경이다. 시골집마당에서 치매에 걸린 하얀 머리의 할머니와 3마리의 개들이 가을 햇볕을 유유히 즐기는평화로운 풍경이 펼쳐졌다.
엄마는 강아지를 언제부터 좋아했을까? 시골집에서 혼자 있는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기 시작하면서 일 것이다. 큰오빠가 가져다 놓은 강아지들의 밥을 주기 시작하면서 동물에 대한 애정을 싹틔웠을 것이다. 책임진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인지, 20년 전에 키우던 강아지인데 지금도 밥걱정을 하신다. 이처럼 동물에 대한 애정을 가진 엄마였지만 그것도 자신이 평안할 때뿐이다. 자신의 몸을 강아지들이 귀찮게 하기라도 하면 바로 내팽개쳐 버릴 것을 나는 안다.
큰 개가 어디 있지 하며 유리문을 쳐다보았다. 유리문 속 불빛에 반사된 자신의 모습을 개라고 착각하신 거였다. 그러고 보니 침대에 앉아있는 엄마의 모습이 하얀 큰 개를 닮았다. 엄마는 그 옛날 밥을 주며 사랑을 주던 개를 생각이라도 한 것일까. 백발의 엄마는 변해버린 자신의 모습을 잊어버렸다. 이제는 누군가의 사랑을 받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백발의 어린아이가 되었다. 우리집엔 하얀털을 가진 큰개 한마리가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