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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다운 유나 Nov 03. 2023

카이로스의 시간을 걸으며

메타쉐콰이어 길을 걸으며

생각지도 않게  갑자기 이루어진 만남에 담양 메타세쿼이아 길로 향했다.


먼 옛날  한자리에서  한 곳을 바라보며 달렸던 우리가 이제는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삶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사람을 느긋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는 것일까? 우리는 고민도 아픔도 끝없는 목마름도 내려놓은 것 같다. 그저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살아가는 삶 속의 그리스도인일 뿐이다. 그 자리가 평신도이든, 선교사이듯, 사역자이든.


처음 걸어 본 담양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이다. 새롭게 황톳길을 조성해 맨발 걷기의 열풍을 체험할 수 있었다. 멀리서 온 두 분과는 달리 맨발의 자유를 알아버린 나는 신발을 벗고 가을로 물들어가는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을 걸었다. 가을이  햇빛에 반사되어 빛나는 날이다. 드라마 명대사처럼 온도. 습도. 분위기. 공기까지 모두 좋았다. 우리는 충분히 여유롭게 천천히 가을을 누렸다. 이어지는 나눔 속에 우리의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은 메타세쿼이아를 닮아있었다.  


봄은 연한 잎사귀처럼 여리고 불안했지만  수많은 꿈들로 싹을 튀었다. 여름 푸르렀던 청춘은 태양을 향해 마주하며 열정으로 하늘까지 뻗어갔다. 이제 가을을 맞이한 우리들이 자신만의 빛깔로 물들어 있다. 우리의 서있는 자리가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처럼 사람들이 발걸음 가볍게 찾아오는 곳이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곳에서 잠시라도 모든 것을 품어주는 대지에 발을 디디고 설 수 있기를, 하늘을 우러러보며 나뭇잎 그 사위로 내리쬐는 햇살을 맞이할 수 있기를 바란다. 겨울이 되면 내가 돌아온 곳으로 자연스럽게 돌아가 미래의 싹을 틔울 수 있는 작은 거름이 될 수 있기를.


메타세쿼이아 뿌리처럼 우리는 떨어져 있어도 여전히 서로의 삶을  지지하고 있다. 삶의 비바람도 이겨내고 모진 역경도 견디어 내며 하늘을 향해 바로 설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땅 속에서 뿌리로 연결되어 서로를 응원하고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인생의 크로노스 시간은 흘러가고 있다. 각자의 자리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가지를 세상으로 뻗어 살다가 우연히 만난 오늘, 메타세쿼이아 길에서 함께 카이로스의 시간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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