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겨운 우리 마을 이름
기억하고 싶은 정다운 마을 이름들이 있다. 그리고 그 마을과 관련된 전설 같은 이야기들이 있다. 세월과 함께 기억도 희미해졌다. 어린시절 함께 마을에서 뛰어놀던 동네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함께 놀던 마을 이름을 기억해 내려고 무던히도 애를 쓴다. 그러나 잘 생각이 나지 않아 안타까울 때가 얼마나 많은가
얼마 전 시골집에 내려갔다가 전화기 옆에 놓여 있던 책 한권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오래전 아버지가 족보를 만든 적이 있었기에 족보려니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전화기 옆에 있던 책은 1998년 약산면에서 발행한 약산(조약도) 50년 사였다. 놀라운 발견이었다. 사실 시골 이야기를 한번 써봐야지 하는 무모한 도전을 한 것도 약산(조약도) 50년 사 자료집 덕분이다. 약산면 자료집을 살펴보니 기억나지 않던 마을 이름과 그곳에 얽힌 이야기들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기록은 기억보다 언제나 진리다. 기억은 잊히지만 기록은 남아있기 때문이다.
전설의 고향 같은 마을 이름은 기억이 가물 가물한 내가 살던 마을을 중심으로 다섯 개 부락의 이야기다. 그중에 내려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몇 가지 있다. 모두 마을 이름과 관계된 것인데 구전처럼 내려오던 이야기들이다.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도 재미있지만 마을 이름이 더 재미있다. 과거 우리 선조들은 지역 이름을 참 잘 지었다. 정겹고 그립고 기억하고 기록해 놓고 싶은 지역 이름들이다.
관산리의 지명유래를 보면 중 떨어진대라는 곳이 있다. 바로 중리이다. 중심에 있는 마을이어서 중리라고 하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었다. '중리는 원래 대나무가 많은 마을이라 죽리라고 했는데 중이 떨어져 죽었기 때문에 중리라는 이름으로 더 각인되어 사람들에게 불리게 되었다.'
우리 마을에서 바라보면 만봉이라는 정상이 있는 삼문산 있다. 그냥 만봉이라고 우리는 불렀다. 그곳에서 날씨가 좋은 날은 멀리 제주도까지 보인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졌다. 그러나 어린 시절에는 한 번도 올라가 본 적이 없다. 산은 오르는 곳이 아니었다. 그냥 소와 염소의 풀을 먹이는 곳이며 나무를 하러 가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만봉 밑에 불당골이라는 곳이 있다. 어린 시절에는 불당골로 염소 풀을 먹이러 간 적이 몇 번 있다. 큰 돌들이 많은 곳이며 그곳에서 멀리 섬이 보이는 바다를 바라보던 여름날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불당골에서 반듯한 바위를 찾아 공기놀이를 하며 놀았다. 특별히 산딸기가 많이 열리는 지역이어서 산딸기를 따러 가기도 했다. 불당골에도 아주 먼 옛날에는 사람이 살았다고 한다. 그곳에 절이 있었다고 하는데 빈대가 많아 살지 못했다는 구전이 내려오고 있다. 그러나 그곳에 절이 있었던 터가 남아있지 않은 것 같다.
불당골 이외에도 구터, 밤낭골, 덤밭골, 간대골 이라는 이름이 있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에 사람들이 살았던 마을이름 같다. 구터나 밤낭골등은 잊힌 이름이지만 덤바, 간대골, 등은 계속 불리고 있다.
웃모실, 포랜나리, 등너메, 통셈거리, 도청, 야중죽리, 간대골, 새터
일제시대 때 형성된 촌의 이름과 지금까지 그 지역 동네 어르신들이 부르는 이름은 비슷하다
[상촌]웃모실, 태동[포랜나리] 등촌[ 등너메] 도청[ 통셈거리]
섬마을의 마을 이름은 사투리 처럼 투박하다 그러나 구수하다. 친숙하고 정겹다.
새태라고 불렀던 마을이 있다. 새터라는 이름으로 새로 터를 잡은 곳이라는 뜻이다. 지금은 신기리라는 이름이 있다. 꾸둘바라고 불리는 마을도 있다. 꾸둘바에는 우리 논이 있었기에 그 먼 곳까지 심부름을 다녔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구암리라는 마을이름으로 불리며 그곳에 바다를 바라보며 전망 좋은 한옥마을이 조성되어 있다. 물맞이골이 있다. 지금도 물맞이골이 어디쯤 있는지 궁금하다. 물맞이골에서 물을 맞으면 병이 치료된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 번쯤 찾아가 물을 맞아보고 싶다.
지역의 이름 변천사 자료를 읽어보니 옛날스러운 동네 이름이 일제강점기에 현재의 이름으로 비슷하게 정해졌다. 고금면에서 약산면으로 분면을 하면서 개명이 되기도 했다고 한다.
과거의 마을 이름은 동네 어르신들 입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러나 어르신들이 돌아가시면 마을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이 있을까 생각된다. 자료집에 나와 있지 않은 곳도 있다. 내가 살던 꼬랑갓이라는 마을 이름이다. 마을이 형성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잊힌 이름 중에 언건네라는 곳도 있다.
어린 시절에는 친숙했던 이름들인데 지금 들어보니 우리 마을의 이름들은 참 옛날스럽다. 전설의 고향에서나 불릴만한 이름이다. 우리 민족 과거의 소리를 찾아서 라는 방송을 들은 적이 있다. 소리를 녹음해 자료를 후손들도 알 수 있도록 남겨둔 것처럼 기록된 자료들은 잊힌 기억들을 다시 되돌려 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시간이다.
오래전 마을의 역사를 연구하며 자료를 모아 남겨놓은 어르신들이 참 귀한 일을 했다는 생각을 한다. 소중한 내 삶의 일부분인 아름다운 내 고향 약산 조약도이다. 전설의 고향에 나올법한 고향 마을 이름을 소생해 준 약산(조약도) 50년 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