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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약도였던 내 고향 약산

by 약산진달래

어린시절 수첩 제일 뒷장의 작은 지도를 보면 조약도라는 섬을 찾아볼 수 있었다. 보통 완도에 위치한 다도해의 섬을 부를 때 '생일면은 생일도', '고금면은 고금도', '신지면은 신지도' 이렇게 이름들로 불리는데 우리 섬만 '조약도'라고 할까 궁금해하곤 했다. 왜냐하면 우리섬은 '약산면'이기 때문이었다.


자료를 찾아보니 1916년 이전에 우리 섬의 본 이름은 '조약도'라는 이름이었다. 우리 섬 옆 섬의 이름은 '고금도'이다.' 조약도'가 고금면으로 속해 있다가 '조약도'에 국민학교가 생기며 그 이름을 약산 국민학교라고 명칭을 정하였다고 한다. 산에 약초가 많이 나는 섬이었기에 고금도에서 분리되어 나오자 약산면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이었다. 하나의 섬이며 두 개의 섬 이름을 갖게 된 것이다. 약산도이기도 하고 조약도 이기도 하다. 도를 붙여 섬으로 부를 때는 조약도를 보통 붙이고 면으로 부를 때는 약산면으로 우리 섬사람들은 부른다. 그런데 요즘은 조약도라는 이름은 거의 잊힌 듯하다. 약산도라고 불리는 것을 종종 방송을 통해서 듣게 되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섬의 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고금도와 다시 합치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고 한다. 약산 사람들은 반대를 하지 않는다. 그러나 고금도 사람들은 반대를 했다. 이제 약산에는 병원도 약국도 떠나버렸다. 그런데 고금도에는 편의점도 여러 개가 있다.

고금도에 있는 하나로 마트는 완도군에서 장사가 가장 잘된다고 하니 고금도의 활기찬 분위기가 약산 사람으로서는 부러울 뿐이다. 시골집으로 내려올 때면 도시에서 물건을 사 오던 것을 이제는 고금도 하나로 마트에 들러 물건을 구입하게 된다. 아마 그 길을 자가용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은 모두 나와 같지 않을까 싶다.


처음 고금도와 다리가 연결되지 않았을 때는 마량 선착장에서 약 40분 정도 배를 타고 약산까지 들어왔다.

그 시절에는 배를 타는 마량 선착장과 배에서 내리는 약산의 천동 선착장은 상권의 중심지였다.

약산의 상권이 죽기 시작 한때는 고금도까지 약산 대교가 연결되고 마량에서 고금도까지 5분 정도 배를 타고 고금도 선착장에 내려서 약산까지 들어가는 버스를 타기 시작할 때부터이다. 이제 더 이상 천동 선착장에는 들릴 필요가 없어지자 천동의 상권은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지금은 고금도와 마량까지 고금대교가 연결되어 마량 선착장도 고금 선착장도 들리지 않는다.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야만 고향 집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 이제는 차를 타고 약산까지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서울에서 약산까지의 여정은 멀고도 먼 여정이다. 과거에는 정말 멀고도 먼 여정이었다.

아직 섬을 연결하는 다리가 준공되기 전에는 서울에 사는 언니 오빠들은 명절이 되면 시골까지 내려오기 위해 관광버스를 마량까지 대절했다. 나도 가끔 그 버스를 이용해 명절이 되면 시골에 내려오곤 했었다.

마량까지 대절버스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데 차가 고장이 났다. 거의 두 시간 이상을 걸어서 바리바리 싸들고 온 물건들을 들고 마량 선착장까지 도시로 상경한 동네 언니 오빠들과 걸어서 갔던 기억이 난다.

어떤 날은 폭풍이 불어 마량에서 시골로 들어가는 배가 출항하지 못해 마량 여인숙에서 함께 잤던 시간도 있었다.

눈이 엄청나게 내리는 대절버스에서 서울 톨게이트를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차가 움직이지 않아 몸과 마음이 애타 하던 기억도 떠오른다. 그러나 그 시간들은 이제 추억의 저편으로 지나갔다.

혼자서 시골을 내려올 때는 서울에서 시골에 한번 내려오려면 시간을 벌기 위해 밤 12시에 고속버스를 타고 광주에 내려 새벽 첫차를 타고 시골로 내려갔었다. 차를 타고 다니는 시간뿐만 아니라 중간중간 갈아타는 곳에서 기다리는 시간도 많이 소요됐다. 그 시간들이 참 길게만 느껴졌다.

지금은 광주에 내려오니 시골까지 내려가는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는다. 자가용이 있으니 주말이면 한 번씩 아침에 갔다가 오후에 올라올 수 도 있게 되었다. 이렇게 기록하고 보니 시골 가는 것이 세상 참 편리해졌다.


도로가 어떻게 놓이느냐는 그 지역의 상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듯하다. 한때는 번화했던 곳이 큰 도로가 연결되고 그냥 스치는 곳이 되어 버리고, 어떤 곳은 스쳐 지나가는 곳이지만 모두 들렀다 가는 곳이 되어 유독 그곳만 상권이 번창하기도 한다.

도로가 연결되며 편리한 점이 너무 많지만 조약도 약산 섬이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점점 죽어가는 것처럼 느껴져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섬에서 도시로 먼저 나간 나에게 시골에 남아 있던 친구들은 편지의 마지막을 이렇게 남겼다.

조약도에서 너를 그리워하는 친구가

내 고향 약산 조약도 여전히 섬을 떠난 아이들을 그리워하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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