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들어가는 길, 밭의 풀을 메러 나가던 엄마는 나에게 말했다.
"감 따놨으니 떨어진 감 다 줏어놔라."
며칠 전, 바람이 많이 불던 날에도 엄마는 떨어진 감을 주워 장독에 삭혀 두었다.
우리 집 마당으로 들어서면 집을 가운데 두고 오른쪽 끝에 감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그 감나무는 아랫집 고롱 나무와 비슷한 나이를 가진 듯했다. 아주 큰 나무지만, 아주 작은 열매가 열리는 땡감나무였다. 내가 태어나기 전, 초가집이었던 시절부터 우리 집에 있던 나무였다. 감나무에는 감이 주렁주렁 열렸고, 마당에는 땡감이 우수수 떨어져 있었다. 하나 주워 입에 배어 물었지만, 아직 익지 않은 땡감은 떫어서 먹기 힘들었다. 떫은 맛이 너무 강해 간식으로 삼기엔 부족했다. 그래도 홍시가 될 때까지 기다리기 힘들어 한 입 베어 물곤 했지만, 늘 떫은 맛에 금세 포기하곤 했다. 작은 땡감은 씨가 커서 먹을 것도 별로 없었다.
봄이 되면 땡감나무에 감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감꽃은 그때 나에게 가장 좋은 장난감이자 간식거리였다. 감꽃이 떨어질 때면 감나무 아래에서 꽃목걸이를 만드느라 정신이 없었다. 긴 실을 가져다가 꽃잎을 하나하나 꿰어 긴 꽃목걸이를 만들었다. 그 목걸이를 걸고 동네 친구들에게 자랑하며 돌아다녔다. 감꽃을 하나씩 떼어 먹기도 했다. 소꿉놀이를 할 때면 감꽃 밥과 반찬으로 풍성한 식탁을 차려놓고 엄마 아빠 놀이를 하며 놀았다.
집을 가운데 두고 감나무가 오른쪽에 있다면, 왼쪽 끝에는 장독대가 자리 잡고 있었다. 떫고 떫은 땡감도 엄마의 장독대에 들어가면 맛있는 단감으로 변신해 나왔다. 땡감이 노란빛을 띠며 물렁물렁 익기 전에 엄마는 된장을 풀어 장독에 담가 두었다. 바람에 떨어진 감도 마찬가지였다. 장독대 안에서 며칠이 지나면 떫던 감은 달달한 맛있는 간식이 되었다.
떨어진 감을 바구니에 담아놓고 보니, 엄마가 며칠 전 담가 둔 땡감이 떠올랐다. 장독 뚜껑을 열고 손을 넣어 꺼내 보니, 초록색이던 땡감이 밤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완전히 맛이 들겠구나 싶었다.
"한 개만 꺼내 먹으면 들키지 않겠지."
그러나 그만 사고를 치고 말았다. 열어 둔 장독 뚜껑을 다시 닫으려다가 그만 손에서 미끄러지고 말았다. 장독 뚜껑의 귀퉁이가 깨져 버렸다. 어린 내가 들기엔 장독 뚜껑이 너무 무거웠던 탓이었다. 엄마에게 혼날 생각을 하니 걱정이 앞섰다. 몰래 넘어가 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엄마는 키가 크고 늘 뽀글뽀글한 아줌마 파마머리를 하고 다녔다. 억척스러웠던 엄마는 화가 나면 무시무시한 말투로 혼을 냈다. 밭일을 마치고 돌아온 엄마는 저녁 준비에 바빴고, 그때까지만 해도 장독대에는 가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된장을 뜨러 간 엄마는 늘 반들반들 닦아 놓았던 장독 뚜껑이 깨진 것을 발견하고 말았다.
"누가 장독을 깼냐!"
엄마의 목소리가 마당을 쩌렁쩌렁 울렸다. 방 안에서 숨죽이고 있던 나는 마당으로 나왔다. 여차하면 아랫집으로 도망칠 생각이었다.
"저 가시내가 미치고 환장했냐! 묵을 귀신이 씌었냐~ 장독을 깨게. 오늘 저녁밥은 없어야!"
"잉~ 잉~"
나는 혼나는 게 무서웠지만, 저녁밥을 먹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말이 더 서러워 울음을 터뜨렸다.
"뭐가 잘했다고 울기는!"
울고 있는 나를 향해 다가오는 엄마를 보고 나는 잽싸게 도망쳤다. 싸리문 근처에 숨어 집안의 동태를 살피며 식구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저녁밥 먹을 시간이 되자, 중학교에 다니던 언니가 집으로 돌아왔다. 싸리문 앞에 쪼그려 앉아 있던 나를 발견한 언니는 내 이름을 부르며 방으로 들어가자고 손짓했다. 쭈뼛거리며 방 안으로 들어와 밥상 앞에 앉은 나는 엄마 눈치를 살폈다. 다행히 엄마는 더 이상 혼을 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