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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약산진달래 Jun 10. 2024

우리 복심이

잠에서 일어나 제일 먼저 조카아이를  찾았지만 어디에도 아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무슨일이 일어났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가만히 집에 있을 수 없었다. 나는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신작로 내리막길을 이를 향해 무장적 뛰었다.  나의  발걸음이 향한 곳은 교회였다. 달리는 내내 얼굴에서는  눈물이 쏟아졌지만 손으로 훔칠 생각도  하지 못했다. 올려다본  하늘은 왜 그렇게 흐렸던지 마음이 찢어지는 듯 아파졌다. 교회 장의자에 앉아 십자가를 바라보는 나는 숨이 헉헉 막혀왔다. 가슴을 부여잡아보기도 하고 가슴을 툭툭 쳐보아도 조여드는 심장의  통증은 가시질 않았다.

 "하나님 우리 복심이 데려가지 마세요. 아직 아기잖아요.  제발 살려주세요"


큰오빠가 결혼을 했다. 엄마의 고향인  신지면의 가인리에서 우리 섬으로 시집 온 새언니는 키가 작았다.  볼이 통통했으며 눈이 가늘었다. 그러나 말투는 작은 키에 비해  다부졌고  똑 부러진 성격의 소유자였다.

첫재 아이가 태어났다. 여자아이였다. 아이의 이름은 복심이다.

"아버지 이름이 촌스럽게 복심이가 뭐예요?"

"복이 많은 아이로 자라라고 복심이라고 지었다."

아버지의 말에도 이름이 너무 촌스러웠다. 첫 손녀의 이름을 무엇으로 지을까 밤새 고민하시던 아버지는 손녀의 이름에  복 복자와 마음 심자 두 글자를 생각해 내셨다.

"다른 이름 없을까? 세련된 이름이면 좋은데"

이 이름 저 이름 생각했지만 생각나지 않았다.

"연화 어때"

서울에 사는 사춘언니가 지어준 복심이의 새 이름 연화가  참 예뻤다.

"복심아 이제부터 너 이름은 연화야"

작은 아기 복심이는 연화라는 새 이름을 갖게 되었다.  


농사일이 바쁠 때면 나는 아기 보기가 되었다.

"아가씨 애기 떨어트리면 안 돼요"

 덜렁대는 나를 보며 새언니는 마음이 안 놓였는지 아이를 맡기지 않으려고 했다.

"어머니 아가씨한테 복심이  맡기면 안 되겠어요. 그냥 제가 볼게요"·

내가 아기를 안으려고 하면  새언니는 내 손길을 뿌리치며 아기를 안았다. 그럴 때면 나도 지지 않으려고  연화를 내 옆으로 끌어당기고는 했다.  복심이를 놓고 새언니와 나의 쟁탈전은 종종 일어났다.


"복심이봐라"

밭일을 나가며 엄마는  내 등에 복심이를 업혀주었다. 새언니는 걱정스러운 눈길로 나를 쳐다보며 단호한 말로 당부했다.

"애기 떨어뜨리면 안 돼요"

아무것도 모르는 복심이는  생글생글 내 등 뒤에서도 등에 고개를 숙이고 잘 잤다. 고개를 돌려 돌아다본 복심이의  오동 통통 두 볼이 토실토실한 게 복스러웠다. 나는  복심이를 업고 동네 마실을 나갔다.

운모실로 내려가니 동네 또래 아이들이 모두 모여있었다. 순영이가 비사치기를 하다가 나를 보더니 반갑게 말했다.

"정아 같이 놀자"

"나 애기 봐야해"

비석을 머리에 이고 손을 뒤로하고 걸어가던 순영이가 고개를 숙이자 비석이 떨어지며 아래 놓인 비석을 쓰러뜨렸다.

" 나도 잘할 수 있는데"

친구들과 같이 놀고 싶지만 복심이를 업고서 비사치기는 무리였다.  친구들이 재미있게 노는 모습을 보며 복심이를 나에게 맡긴 엄마가 야속하고, 등 뒤에 엎여있는 복심이가 괸시리 얄미워졌다.

 "야  너 때문에 친구들이랑 놀지도 못하잖아"

짜증이 난 내가 발을 동동 구르자 잠을 자다가  깜짝 놀란  복심이가 크게 울었다.

"앙 앙앙앙"


여름이 시작되는 어느 날이었다. 복심이는 이제 12개월 남짓 자랐을 뿐이었다. 작은방에서 새언니가 나오며 부엌에 있는  엄마에게 하는 말이 들렸다.

"어머니 복심이가 열이 나요. 울기만 하고 먹는 것도 다 토하고 어디가 아픈 걸까요?"

"약방에 가서 우위사한테 물어보고 약을 지어와라"

새언니에게 약방에 갈 준비를 하며 방안에 있는 복심이를 돌아다보았다.

복심이가 아픈 것일까? 걱정이 된 내가 마당을 기웃거리며 말했다.

"새언니 내가 좀 업어줄까요?

"업고 바람이라도 쐬면 좀 나으려나"

새언니는 약을 사러 가며  내 등에 복심이를 업혀주었다. 내 등 뒤에 업힌 복심이는 여전히 칭얼거렸다.

"복심아 어디 아파 울지 마"

복심이를 업고 두 손을 복심이 엉덩이에 받친 후 복심이를 달래기 위해 몸을 옆으로 흔들며 신작로까지 나갔다. 신작로 옆 동순이네 집으로 들어갔다. 동순이가  방에서 나오며 말했다

"복심이 마실 나왔네"

"우리 복심이가 아파 어떻게 해"

동순이가 포대기에 업혀 복심이의 힘없는 얼굴을 보며 안타까운 듯 말했다. 동순이 집에서 나와 다시 집으로 방향을 돌렸다.

"엄마가 섬 그늘에 굴따러 가면"

내 노랫소리에 복심이가 칭얼대다 지쳤는지  잠이 든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와  엄마에게 복심이를 맡겼다. 할머니 품에 안긴 복심이는 이제 울 힘마저  없는지  온몸이 힘 없이 축 늘어졌다.


엄마는 끓인 보리차를 먹이고,  숟가락으로 배를 갈아 즙을 먹였다. 약을 가루로 만들어 꿀물에 타  입어 넣어 주었지만 여리고 작은 아기는 먹은 것은 바로 토하고 바로 설사해 버렸다. 밤새 아이의  작은 심음 소리는 그치지 않았다.

"복심아 울지 마 어디가 아픈데"

아이가 아팠지만 식구들이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아이를 걱정하던  내 눈꺼풀도 내려앉았다.  잠결에 아버지와 엄마가 하는 이야기 소리가 들렸다.

"요새 돌림병이 돈다던데 도시에 있는 병원에 데려가야 하는 것은 아닌지 "

"점쟁이를 불러다가 굿이라도 해야겠어요"

아이를 살리고 싶은 안타까운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침이 되어 일어났지만  복심이를 볼 수 없었다. 복심이는 그날로 무덤도 없이 산  어딘에게 묻히게 되었다. 아버지는 복심이를 묻은 자리에 돌 하나를 올려놓았다고 한다.  복심이가 보고 싶을 때면 산으로 가 복심이가 있을 돌무덤을  찾아보았다.  그러나 그곳은  쉽게 찾을 수 없었다.


그 해 고등어를  먹은 사람들이 토하고 설사를 하는 돌림병이 돌았다.  병원에 가는 것이 쉽지 않았던 그시절 돌림병을 이기지 못하고 죽은 아이들이 여러 명 있었다. 그중에 한 명이 아기 천사가된 우리 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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