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약산진달래 May 26. 2024

엄마의 잔소리

밭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온 엄마가 들어가시는지 부엌문이 '삐그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집안에 없는 척 나는 숨을 죽였다. 엄마는 나를 보면무언가 또 일을 시킬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막내야"

나를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가 커졌다. 안방에 있던 나는 엄마가 언제 방으로 들어올지 몰라 안절 부절 방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좋아하는 만화 방송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엄마가 제발 만화가 끝나고 나서 방안으로 들어오기를 간절히 바라며 텔레비전의 소리를 최대한 줄였다. 

"아야 청소 다했냐? 다했으면 안 나오고  방에서 뭐 하냐?"

나를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가 더 커졌다. 엄마가 밭으로 일하러 가시면서 방 청소를 해 놓으라고 하셨는데 딱 그 시간에 재미있는 만화를 하는 시간이어서 그만 정신줄을 놓고 말았다. 빗자루로 방을 대충 쓸고,  방 윗목에 쓰레기 받기에 쓰레기들을 모아놓기만 했던 것이다.

여전히 방 안에서 아무 기척이 없자 엄마는 부엌으로 난 작은  방문을 열어젖혔다. 나는 재빨리 텔레비전을 껐다. 그리고 엉거주춤 걸레를 집어 들었다.  엄마의 두 눈이 눈 깜짝할 사이 전체를 둘러보았다. 엄마의 시선이 정리하지 않고 그대로 둔 쓰레받기와 빗자루에 머물렀다. 

내 손에 들려있는 걸레가 엄마의 눈에 들어왔다.

"방안에 있으면서 뭐 한다고 대답을 안 했냐? 방 청소 해놓으라고 그렇게 말했는디 방만 대충 치어놓고 아직  방도 안 닦았냐"

"텔레비전 보고 끝나면 하려고 그랬지"

"텔레비 귀신이 붙었나 만화만 하면 정신을 못 차려야 가시내가"

"지금 방 닦으면 되잖아"

잘 못할 수도 있지 이 정도 하면 됐지 엄마는 다 알면서 괜히 더 소리를 지른다는 생각에 괜스레 부아가 치밀어 투덜거리며 대답했다. 

" 방 청소 끝나면 걸레 빨아다가  말래까지  깨깟히 닦아놔라"

"알았어"

나는 문을 닫는 엄마의 뒤통수를 보고 건성으로 대답하고 방문을 꼭 닫았다. 그리고 다시 텔레비전을 틀었다.  텔레비전 볼륨을 완전히 껐다. 손은 방바닥에 걸레질을 하면서 눈은 텔레비전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그러다 보니 다른 곳은 건성으로 대충 닦고  계속 텔레비전 앞만 걸레질을 하는 꼴이 되었다. 이제 곧 만화는 끝나갈 판이었다. 그때 부엌 쪽문이 다시 열리면서 엄마가 앙칼지게 말했다. 

"텔레비전 안 끄냐. 가시나가 뭐가 될라고 그라까이"

"텔레비전 끄면 되잖아. 조금만 더 보면 되는데"

좋아하는 만화가 끝나기까지 다 보지 못한  나는 애가 탔다.

"얼른 샘에 가서 물 좀 길러와라"

"방 닦고 있었는데"

짜증 섞인 목소리로 방문을 세게 열었다. 방문을 나오면서 마루에 걸레를 집어던졌다가 다시 집어 들며 찡찡거리며 말했다. 

"샘에 가서 걸레도 빨아오고"

"엄마는 맨날 나만 시켜"

 부엌에 있던 엄마의 손에 부지깽이가 들려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잽싸게 마당에 있는 양동이를 들고 집 밖으로 뛰어나갔다. 

"물 떠오면 되잖아"

투덜거리는 목소리처럼 양철바께스가  달랑달랑 손에서 흔들거렸다. 

나를 쫓아오려던 엄마는 몸을 도려 부엌으로 들어가  아궁이에 나무를 밀어 넣고 부지깽이로 쑤셔댔다. 엄마의 잔소리가 물을 뜨러 샘으로 향하는 내 등 뒤로 들려오는 듯했다.

"가시내가 뭐가 될라고 그라까이"

이전 05화 우수상을 받은 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