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약산진달래 Jun 04. 2024

새 보기

오후의 골목길에는 동네 아이들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로 시끌벅적하던 골목이 개미 새끼 한 마리 없이 조용하다. 아랫집 창길이도 윗집 석종이도 없었다. 또랑을 건너 운모실로 가보았다. 운모실 사는 친구 정순이, 순영까지 보이지 않았다. 나만 빼고 동네 아이들이 모두 사라져 버렸다.

골목에서 같이 놀 친구들을 찾다가 아무도 찾지 못하자 투덜거리며 집으로 돌아오다 샘가에서 머리에는 수건을 모자로 쓰고 손에는 호미를 들고 밭을 매고 돌아온 엄마와 마주쳤다.

"엄마 내가 소띠 끼러 가면 안 돼 오늘만 응? "

아직 어린 내가 큰 소를 감당하기에 버겁다는 것을 알면서도 엄마에게 간청해 보았다. 엄마는 호미를 바닥에 내려놓고 샘에 놓여있는 바가지로 물을 뜨더니 벌컥 들이켰다. 바가지를 제자리에 내려놓고 머리에 쓴 수건을 벗더니 입에 묻은 물기를 닦으며 말했다.

"아이고 소는 느그 오빠가 띠끼러 가야재, 너는 어려서 안 돼야."

당연히 엄마가 들어줄 턱이 없다는 것도 잘 안다. 엄마는 집에서 가장 비싼 귀한 소를 아직 국민학교에 다니는 어린아이에게 맡길 수 없었다.

"그럼 염소만이라도 내가 띠끼러 가면 안 된가?"

"느그 오빠가 염소랑 소랑 다 한꺼번에 보면 돼재 뭐 하러 너까지 가야"

엄마는 어림도 없다는 듯이 말하더니 한마디 던졌다.

"너는 아랫마을 논에 새보러 가라"

괜히 소풀을 먹이러 가겠다고 말했다가 아직은 아무도 새보러 가지 않데 논에 가서 새를 보라는 일거리를 떠맡았다.

"아이 나 혼자 새보라고 아무도 새보는 사람 없던데"

"저 아랫마을 올해 새로 산 우리 논은 일찍 심어서 나락 여물이 들었어야. 오늘 오다 봉께 새들이 있드라 "

벼가 여물어 갈 즈음 논에서 새를 보는 일은 아이들 몫이다. 그러나 오늘은 동네 아이들 중 어느 누구도 새보는 친구는 없었다. 모두 산으로 소와 염소의 꼴을 먹이러 갔다. 나도 당연히 그 무리에 섞여 놀고 싶었지만 소와 염소의 풀을 먹이는 일은 언제나 오빠의 몫이었다.

아무도 없는 넓은 논에서 나 혼자 새를 보는 것이 얼마나 지루한 일인지 알기나 하시는 걸까? 새보러 가기 싫다고 말해봤자 엄마에게 호통이나 들을 것이 뻔했다. 나는 목구멍까지 나오는 말을 입안에서 삼키며 오물거리며 말했다.

"새보기는 진짜 재미없는데"

어쩔 수 없이 새를 보러 아랫마을에 있는 논으로 향했다. 논에는 허수아비가 지난여름 오빠가 입었던 한 옷을 입고 사람처럼 팔을 뻗고 서있었다. 동그란 스티로플 통에 아버지의 구멍 난 메리야스를 입혀 얼굴을 그려놓았지만 참새들도 허수아비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 잘 알았다. 참새들이 허수아비 팔과 머리에 앉아있었다.

논두렁을 한 바퀴 돌며 ​"훠이 훠이" 소리를 질렀지만 마음속에서는 "나도 소 띠끼로 가고 싶은데 " 산에 가서 아이들과 놀고 싶은데라는 마음이 가절했다.

나만 빼고 친구들은 모두 산에 가서 재미있게 놀 것을 생각하면 당장이라고 아이들이 소와 염소의 풀을 먹이고 있을 공동묘지로 달려가고 싶었다. 혼자서 속앓이만 하다 보니 짜증이나 무심한 논두렁의 돌만 발로 툭 찼다가 그만 발을 잘 모 디뎠다. 어떻게든 넘어지지 않으려고 했지만 엉덩방아를 찍고 말았다. 혹시 누가 볼까 좌우를 살피며 재빠르게 일어나 엉덩이를 털면서 아무렇지 않은 척 논둑길을 걸으며 새를 쫓았다.

"훠이 훠이"

나 혼자 논두렁에 앉아 새를 보고 있자니 휑한 벌판에 혼자 버려진 외톨이 기분이 들었다. 혹시 아랫마을 사는 아이들 중 누가 내 모습을 보고 지나가며 흉을 보는 것은 아닐까 어깨만큼 자란 벼뒤에 숨어 얼굴만 내밀고 논두렁에 앉았다. 해는 언제 지려나 시간이 흐르지 않는 것 같아 지루하기 그지없었다. 새가 오든 말든 내버려 두고 잠이나 자야지 하며 논두렁에 누울 자리를 찾던 때였다. 누군가 큰 길가에 우리 논이 있는 길로 걸어 들어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랫동네 사는 경이였다. 큰 목소리로 경이를 불렀다.

"경아 너 새보러 왔어?"

"어 우리 논 여기야. 너네 논도 여기야?"

"어 우리 논이어야. 올해 아부지가 샀어. "

경이가 자기네 논이라고 가리킨 논은 우리 논 옆에 옆에 있었다. 경이를 만나자 갑자기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진짜 잘 됐다. 나 혼자 심심했는데"

"나도"

혼자 있을 때는 새보는 것이 창피해 몸이 움츠러들었다. 새가 날아와도 제대로 쫓아보지 못했는데, 경이와 함께 하니 새가 날아오면 우리 논 이 끝에서 경이네 논 저 끝까지 논두렁을 뛰어다니며 "훠이 훠이" 목 터지게 소리를 질렀댔다. 혼자 있을 땐 깡통 소리에 아랫마을 아이들이라도 볼까 봐 줄에 묶인 깡통도 흔들지 않았다. 둘이 함께 하니 이 논 저 논 뛰어다니며 깡통이 달린 줄이란 줄은 모두 흔들어댔다. 새가 오지 않는데도 내팽개쳐둔 찌끄러진 쟁반을 손에 들고 꽹과리를 치듯 "훠이 훠이" 노래를 부르며 오지 않는 새를 쫓았다.

논두렁에서 부르는 쩌렁쩌렁한 노랫소리에 새들은 화들짝 놀랐는지 어디론가 날아가고, 우리가 뛰어다닌 논두렁엔 자라던 풀들도 짓밟힌 자국에 시들에 버려다. 시간이 언제 간 줄 모르게 해가 뉘엿뉘엿 저물었다. 경이도 나도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 오늘 재미있었지. 나 새 보러 올 때 너도 와야 해 알았지 ?"

"그래 우리 새보며 같이 놀자"

산으로 소띠 끼러 가고 염소 띠끼러 간 친구들이 하나도 부럽지 않은 날이다.

이전 06화 엄마의 잔소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