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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약산진달래 Apr 30. 2024

총각선생님과 모나미 볼펜

등장인물

반장 효정

담임선생님

그 외 학생들



담임 선생님이 사라지셨다. 아무리 기다려도 선생님은 교실로 돌아오지 않았다.

 "너희들에게 실망이다"

2학기 중간고사 성적이 발표되던 날 자율학습 시간에 , 반 아이들에게 한마디를 남기고 삐그덕 거리는 문을 열고  나가신 선생님은 종례 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반 아이들이 웅성 거리고, 맘이 여린 여자아이들은 울기도 했다.

"반장 선생님 찾으러 가봐야 하는 거 아냐?"

선생님이 걱정되었는지 반 아이 중 한 명이 말했다.

"정말 어떻게 해서라도 성적을 올려야겠다.

"그래 선생님이 너무 불쌍해"

시험을 잘 못 본 것보다 교장선생님께 혼나는 선생님이 안돼 보여서 우리 반 아이들은 모두 한 마디씩 했다.


"쩡아"

반장인 효정이가 나를 불렀다.

"선생님이  찾으러 가보자"

"선생님 어디 가셨는지 알 것 같니?"

내가 반장에게 물었다.

"갈 데가 어디 있겠어. 학교 근처에 계시겠지"

2층짜리 학교 건물을 나와 운동장을 내려다보았다. 넓은 운동장을 둘러보았지만  선생님은 보이지 않았다. 운동장으로 내려가는 계단 왼편으로 이순신 장군 동상이 학교를 지키고 있고. 중앙에는 책 읽는 소녀 동상만이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교실 건물 오른편에 있는 재래식 화장실 건물 방향으로 가면서 내가 말했다.

"선생님이 변소에 갔다가 빠진 것은 아니겠지"

 냄새나는 변소에 선생님이 숨어 있지 않을 걸 알면서도 들어가 보았다. 문이 모두 닫혀있었지만 재래식 화장실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가 코를 찔렀다.

"우리 반이 꼴찌를 해서 선생님이 많이 삐졌나 봐"

반장이 말했다.

"그러게 우리 반이 계속 꼴찌를 해서 교장선생님한테 많이 혼났겠지.

선생님이 사라진 이유를  반장도 나도  우리 반 아이들도 모두 알고 있었다. 학교 뒤편 저수지 방향을 올려다보았다. 그곳에 쓸쓸하게 앉아있는 선생님의 뒷모습이 보였다.


우리 섬에는 3개의 국민학교가 있다. 북쪽에 위치한 구암, 동쪽에 위치한 해동, 그리고 면소제지에  약산 국민학교이다.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중학생이 되면 섬에 있는 모든 아이들은 약산 중학교에 다니게 된다. 중학생이 된다는 설렘도 있지만 새로운 학생들을 만난다는 기대감도 컸다.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막 군대를 제대한 총각 선생님이 부임해 오셨다. 모든  여학생들의 관심은 총각 선생님에게  쏠렸다. 군악대에서 트럼펫 불었다는 선생님은 음악을 가르쳤다.  그 총각 선생님이 우리 반 담임 선생님이 되셨다. 곱슬머리에 키가 훤칠했고 말을 할때 살짝 뻐드렁니가 보였다. 투박한 사투리가 아닌 부드럽고 도회적인 말을 사용하는 총각 선생님은 친구처럼 친근한 분이었다.


다른 반 선생님은 나이가 많거나, 무서운 선생님이었지만 우리 반은 도시에서 오신 총각선생님 그것도 음악선생님, 중학교 생활은 마냥 즐거웠다. 그런데 우리 반 성적이 문제였다. 1학기 중간고사도, 기말고사도 전교 꼴찌는 우리 반 차지였다.  3학년까지 모두 합해야 12반 정도밖에 안되는데  전교 꼴찌라니 선생님도 암담했을 것이다.


반장과 나는 사라진 선생님을 찾아 저수지로 올라갔다. 학생들이 모아 온 잔디씨를 뿌려서 인지  저수지의 잔디는 반들 반들 했다. 황량한 저수지 끝자락에 앞산을 바라보며 선생님이  앉아 있었다. 나와 반장이 선생님 곁으로 다가가자 앉아 있던 선생님이 일어났다.

"선생님 죄송해요. 다음에는 꼭 꼴찌를 면하도록 하겠습니다"

반장이 말했다.

"열심히 공부할게요 죄송해요 선생님. 이제 그만 돌아가요"

나도 한마디 거들었다.

 반 아이들에게 실망하고, 자신에게 실망했는지 선생님의 얼굴은 일그러져 있었다. 여전히 반으로 가고 싶어 하지 않는 선생님을 모시고  반장과 나는 교실로 돌아왔다.


선생님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우리 반 아이들은 열심히 공부했다. 그리고 1학년  2학기 기말고사를 치렀다. 다행히 우리 반은 전교꼴찌에서 벗어났다.

"정말 수고했다. 너희에게 주는 선물이야"

선생님은 우리 반 아이들에게 도시에서 직접 주문 제작한  모나미 153 볼펜을 선물로 나누어 주셨다. 아이들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부르며 교단에서  볼펜을 한 자루씩 나눠주시던 선생님의  얼굴에는  함박 미소가 지어졌다.  담임선생님이  선물로 주신 볼펜에는 약산 중학교 1학년 4반이 새겨져 있었다. 그 어떤 선물보다 소중한 볼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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