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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약산진달래 Apr 14. 2024

고목 나무아래 놀던 아이들

"가마니는 가마니인데 못 담는 "


얼굴이 작고 갸름한 영순이가 수수께끼를 냈다.


"산가마니"


영순이가 문제를 다 내기도 전에 내가 소리쳤다.


"가마니는 ?...정답"


순영이가 너무 빨리 맞춰 싱겁다는 듯 정답을 외쳤다.
조약도에 사는 아이들이 수수께끼를 낼 때면 언제나 나오는 문제였다.
산가마니는  마을에서 올려다보면 섬 중앙에 우뚝 솟은 산 이름이다.  산가마니 정상에서부터 아래로 흐르는 물은  모두 마을 위에 위치한 저수지로  모여들었다. 그 저수지 둑에는 커다란 고목나무 한 그루가 서있다. 얼마나 오랫동안 그곳에 있었는지 나무 이름이 무엇인지 아이들은  몰랐다.

"누가 더 높이 올라가는지 내기할까"


아랫집 창길이와 옆집 영순이에게  내가 말했다. 창길이는 나보다 키가 작고, 늘 코를 질질 흘리고 다닌다. 창길이가  흐르는 콧물을 옷소매로  쓱 닦으며 영순이에게 다가가자  순영이는 눈살을 찌푸리며  뒷걸음질 쳤다.


"야 너 저리 떨어져 "


영순이도 나도 콧물이 나오면 옷소매로 닦았지만, 창길이의 옷소매는 때 국물에 절여진 것처럼 시커맸다.


"내가 먼저 올라갈게"


창길이는 콧물이 묻은 옷쯤이야 아무렇지 않다는 듯  침을 손바닥에 툭 뱉었다.  침 뱉은 손바닥을 오른쪽 왼쪽으로 번갈아가며 손뼉 치듯 탁탁 소리를 내더니 나무를 타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팔을 벌려 안으면  두 배 넘는  고목의  움푹 파인 곳에 발을 올리더니 나무를 껴안고 가뿐히 나무 위로 올라갔다.


"나는 너보다 더 높이 올라갈 수 있어"


나도 질세라  창길이가 밟고 올라간 곳을 따라 나무를 탔다. 창길이 보다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해  나뭇가지 위로 올라갔다.  영순이도  나무 위로 올라왔다. 고목나무 위에 올라가니 산 아래로 펼쳐진  동네가 내려다보였다.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멀리 마을 앞바다 너머 또 다른 섬도 보였다.


"야 내가 더 높이 올라갔지. 창길이 너가 그네 밀어줘"


제일 높이 올라갔다가 흔들리는 나뭇가지에 다리가 후들거려 재빠르게 내려온 내가 말했다. 나무 아래로 내려온 우리는 그네를 타기 시작했다. 고목 나뭇가지에  묶어놓은 밧줄로 만든 그네에 내가 먼저 올라탔다.


"너 타고 그다음 나야"


영순이도 그네를 타겠다고 했다. 창길이가 그네에 올라선 나를 뒤에서 한 손으로 힘없이 밀었다.


"야 너는 힘도 없냐 머시매가.더 세게 밀어"


나는 골목대장처럼 창길이에게 명령했고  창길이는 부하처럼  내 말을 들었다. 그네가 점점  높이 뛰기 시작했다.


"여기 저수지에서 수영하다가 애기가 빠져 죽었대. "


저수지 물은 아주 깊었다. 고목나무 아래서 놀다가 심심할 때면 우리는  물수제비 던지기 내기를  했다. 여름이면 가끔  중학생 오빠들이 저수지에서  수영을 했지만 나도 영순이도 수영은 할 줄 몰랐다.


"여기 물귀신이 사는데 우리 또래 아이들을 잡아간데"


영순이가 하는 말을 들으며 나는 무릎을 굽혀 반동의 힘으로 더 높이 그네를 띄웠다. 삼면이  낮은 언덕 같은 야산으로 둘러싸여 포근한 엄마품 같은 마을 관산리가 보였다.


" 저 아래 공동묘지에서 밤에는 불이 빛나잖아. 그것은  귀신이 잡아간 아이들의 영혼이래"


 영순이가 공동묘지를 가리키며 겁을 주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더 높이 그네를 탔다. 저수지 아래 왼편에 위치한 마을 공동묘지위까지 그네가 올라갔다. 앞으로는 바다가 펼쳐져 있고,  그 위로 둥둥 떠다니는 섬들이 보였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동네 아이들은 목동이 되어 소와 염소를 몰고 산으로 올라왔다. 소와 염소는 산 가마니 아래 푸른 초장에서  꼴을 뜯어먹었고,  저수지 근처에서 물을 마셨다.


 어린 목동들은 고목나무를 기둥 삼아 말뚝박기 놀이를 했고, 제기차기, 자치기, 묘뚱 잡기, 콩집개 놀이에  해지는 줄 모르고 신나게 놀았다.


저수지에 아이가 빠져 죽었다는 이야기가 있고,  물귀신이 나온다는 무서운 이야기도 공동묘지에 아이들의 영혼이 돌아다닌 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한낮의 고목나무 아래는 무서울 곳이 없는 아이들의 천국이었다.


#동화

#창작동화

#어린날의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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