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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약산진달래 Apr 07. 2024

나비를 찾아서

그리운 나의 집

나는 학교에서 집에 도착하자마자 어깨에 맨 무거운 책가방을 벗어 마루에 아무렇게나 던져 놓았다.


"나비야"


작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나비를 부르며  있을 만한 곳을 찾아 나섰다. 보통 때는 부엌문을 열면 부뚜막 위에 흰색에  까만 점박이 고양이가 학교에서 돌아온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며칠째 나비를 보지 못했다.


부엌문의 빗장이 잠겨있지 않았다. 나무로 된 부엌문을 살며시 열었을 뿐인데 삐그덕 소리가 요란하게 났다. 무쇠솥에 삶은 보리를 바구니에 담고 있던 엄마가 못마땅한 눈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그런 엄마의 시선을 무시하고 기역 자 모양의 부엌을 매의 눈으로 훑었다. 나무를 넣어 방에 불을 지피는 아궁이가  안방 벽 쪽으로 2개, 작은방 벽 쪽으로 1개 있다.  커다란 스텐 솥에 아침밥을 하고 숭늉까지 데워지고 나면 나비는 따스한  안방  부뚜막에 앉아있었고, 뜨거운 물을 끓이는 저녁이면 커다란 쇠솥이 걸려있는 작은방 부뚜막에서  웅크리고 잠을 잤다. 그런데 나비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엄마 오늘도 나비가 안 보이는데 나비 못 봤는가?"

"쥐새끼도 안 잡고 밥만 축내는 개대기(고양이의 전라도 방언)는 뭐 하러 찾아 쌌냐?"


엄마는 나무주걱으로 삶은 보리를 뒤적이는  손을 멈추지 않고  맘에 들지 않은 듯 말했다. 엄마는 고양이가 쥐는 안 잡고 몰래 음식을 훔쳐 먹는다며 부뚜막에서 잠을 자는 나비를 좋아하지 않았다.


엄마에게 쫓겨난 나비가 뒷밭으로 도망간 것은 아닌지 밭으로 연결된 문을 열어보았다. 뒷문을 열자 밭에 심어놓은 보리가 푸른 숲이 되었다.


"나비가 보리밭 속으로 들어간 것은 아닐까 "


미로 같은 보리밭 속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매다 뱀이라도 만난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됐다. 내 마음을 아는 듯 엄마가 말했다.


"뒷밭에 있지는 않을 거다"

"그럼 안방에 있나 봐야겠다."


나는 부엌과 연결된 안방의 쇠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방안에는 뿌연 안개가 자욱했다. 아버지가 아랫목에 앉아 담배를 태우고 계셨다.


 "켁 켁 아부지 나비 못 봤어요?"

"학교 갔다 왔냐?. 몰겠다. 어디 쥐 잡으러 갔겄재"


입을 손으로 막고 방안을 두리번거리니 매운 연기에 눈물이 찔끔 났다. 아버지가 방안에 떡 버티고 계시니 나비가 있을 리는 없었다. 아버지를 피해 천장 아래에 숨었을 수도 있다. 넓은 방안에 가구라고는 벽에 딸린  미닫이  옷장과 아버지의 양복과 중요한 문서가 담긴  옷장이 전부다. 그 옷장 문도 꽉 닫혀있었다.   나비가 옷장을 타고  올라가 천장 아래 빈 공간에 숨을 수도 없었다. 천장 벽지에 덕지덕지 지도가 그려져 있었다. 쥐 오줌일 게 분명하다.


고양이를 키우는 이유는 쥐 때문이다.  우리 안방 천장에는 쥐들이 많았다. 낮에는 아무 소리 없다가 저녁에 잠을 자려고 누우면 천장 위로 쥐들이 걸어 다니는 소리가 들렸다. 어떨 때는 달리기 대회가 열린다. 쥐들이 달리기 시합이 끝나면  쥐똥이 데구루루 굴러가는 소리도 들렸다.


쥐를 잡기 위해  고양이를 키우기 시작했다.  어느 날 아버지는 고양이 한 마리를 데리고 오더니 도끼로 꼬리를 잘랐다. 꼬리가 잘려버린 고양이는 고통 때문에 멀리 도망갈 수 없었다. 그 후 집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쥐를 잡아먹고 생활했다. 그런 나비가 불쌍하기도 하고 쓰다듬으면 맨드러운 털 감촉이 좋았다. 내가 "나비야'하고 부르며  먹다 남은  생선 뼈다귀를 던져 주면 어딘가에서  언제나 나타났다. 그런데 요 며칠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매일 부뚜막 위에서 잠을 자던 녀석이 어디로 갔을까 걱정이 됐다.


"저기 말래에서 개댁이 소리가 나는 것 같기는 하드라"


내가 고양이를 애타게 찾는 것을 눈치챘는지 아버지는  담뱃재를 재떨이에 툭툭 털더니 무뚝뚝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안 방과 연결된 말래(창고의 전라도 사투리)로 들어가는 방문은  절대 열지 않는다. 그곳은 귀신이 사는 방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귀신을 무서워할 때가 아니었다.  귀신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오늘은 제사를 지내는 날이 아니기 때문이다. 안 방과 연결된 창고 문을  살짝 열어보았다. 스산한 기운이 감돌아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냄새도 쾌쾌했다. 창고에는 쌀과 보리 깨와 콩 등 씨앗으로 쓸 곡식들을 모아두거나, 제사 때나 쓰는 그릇을 담은 상자와 나무 사이 벽에 걸려있다. 창고 안으로 얼굴만 내밀었을 뿐인데 등골이 오싹해졌다. 나비가 이곳에 없다는 것을 알고 빨리 문을 닫으려고 할 때였다. "야옹"소리가 희미하게 애처롭게 들렸다.


창고 안으로 들어가기 무서웠지만 나는 용기를 내어 창고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창고 안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었다.  창고  바닥에서 나는 소리였다. 창고 문을 닫고 마루로 나왔다. 마루에 잠시 앉았다가 일어났다. 나비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됐다. 빨리 나비가 보고 싶었다. 그러나 마루 밑을 기어들어가야 하는 것은 용기가 필요했다.


"나비야 나야.  빨리 나와. "


나비는 밖으로 나올 생각이 없었다. 고개를 숙여 마루 밑을 훑여보았다. 빛이 들어오지 않아서 잘 보이지 않았다.  나비를 데리고 나와야겠다는 생각에  용기를 내어 마루 밑바닥에 납작하게 옆 드렸다. 바닥을 기어서 앞으로 조금씩 전진해 나갔다. 어둑한 마루 밑에서 반짝이는 두 눈이 보였다. 나비였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나비 혼자가 아니었다. 나비 옆에는 작은 꼬물이들이 있었다. 나비가 새끼를 낳은 것이다.  나비의 노란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나를 보자 새끼를 보호하려는 여린 목소리로 말했다.


 "야옹"


나는 다시 그대로 기어서 마루 밑을 빠져나왔다. 놀라움과 흥분을 감추지 못해 심장이 두근거렸다. 마루 밑을 급하게 빠져나온 나는 모습을 신경 쓸 여유도 없이 어서 빨리 이 소식을 엄마와 아버지에게 알리고 싶었다. 그때 학교에서 돌아온 오빠가 가방을 흔들며 마당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오빠 나비 나비가 말래(창고) 밑에 새끼를 낳았어"

"너는 이제 죽었다"


오빠는 나비가 새끼를 낳았다는 말에는 관심 없다는 듯 내 모습을 보더니 큰일이 난 듯 말했다. 그제야 나는 온몸에 흙먼지와 머리에는 거미줄을 뒤집어쓰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엄마가 입학 기념으로 사준  하얀색 레이스 원피스가 먼지투성이가 되어있었다.


 "나는 이제 진짜 죽었다"

#창작동화

#동화쓰기

#어린날의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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