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그릇에 밥 한 톨 남기지 말아라."

by 약산진달래


"밥 그릇에 밥 한 톨 남기지 말아라."


아버지는 늘 밥상에 앉으면 밥 한 톨 남기지 말라고 하셨다.


1남 2녀의 장손으로 태어나신 아버지는 6.25와 일제시절을 겪으며 성장하셨다. 또한 16살 때 아버지를 여의하셨다고 한다. 그 이후 찢어지게 가난한 시절을 살아내신 아버지는 안해본 없이 다 해보셨다고 하셨다.


논농사 밭농사는 묽론 남의 집에서 종살이도 하셨다. 새끼까기와 변소에서 똥과 오줌을 내는 일은 물론이다. 한겨울에 추운 바다에 나가 김 양식을 하신 것은 돈벌이가 되기 때문에 힘들지만 보람이 있다고 하셨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는 초가집이었는데, 기와집으로 새 집을 지을 때도 목수를 부르지 않고 직접 집을 지을 정도였으니, 아버지는 정말 못하는 일이 없는 분이셨다.


아침부터 부엌에서는 밥상을 차리는 소리로 달그락거린다. 오늘도 나는 밥상을 차릴 때 수저와 젓가락을 놓는 당번이었지만, 여전히 반듯하게 놓지 못해 한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가시내가 그것도 똑 바로 못하고, 뭣해 쓰까이."


솥단지에서 큰 나무주걱으로 그릇에 밥을 퍼 담던 엄마는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한소리 질러댔다.


"가서 김장김치를 좀 꺼내 와라."


엄마의 잔소리와 함께 또 다른 심부름이 맡겨졌다. 이번에는 땅에 묻어 놓은 김장독에서 김치를 퍼와야만 했다. 잘 해낼 수 있을까?


냄비를 들고 김치독에서 김치를 꺼내러 부엌 뒷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김장독을 열고 비닐을 풀며, 땅바닥에 묻어둔 장독 안의 김치를 꺼내는 고된 작업이었다. 손이 너무 시렵지만, 빨간 김치국물이 묻은 손을 찬물에 씻어야 하는 것은 더욱 시려운 일이었다. 손을 씻고도 얼마 동안은 김치국물이 묻은 손이 시뻘게 물들어 있기 때문에, 김장독에서 김치를 꺼내는 일은 내가 하고 싶은 심부름은 아니었다.


그래도 김장독에서 김치를 꺼내며 그 안에 들어 있는 무우를 꺼내, 밥상 위에 오르기 전에 아삭아삭 씹어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은 큰 기쁨이었다.


아그작아극작 무우 씹는 소리가 엄마 귀에까지 들렸던지, 또 잔소리가 들려왔다.


"저것이 크면 뭐가 될라고 그라까이."


아버지와 오빠들은 윗목에 있는 네모난 나무 상 앞에 앉아 밥을 먹고 계시고, 나와 언니, 그리고 엄마는 동그란 양철 상 앞, 부엌 문 앞에서 밥을 먹고 있다. 나는 큰 상쪽으로 고개를 돌려본다. 혹시 더 맛있는 반찬이 놓여있는지 말이다.


오늘도 밥상에는 밥과 김치뿐이다. 그것도 꽁보리밥에 하얀 쌀밥은 숨은 그림 찾기라도 해야 할 판이다. 그런데 엄마는 언제 생선을 구웠는지, 아버지 밥그릇 앞에 놓인 구운 생선의 눈동자와 마주쳐 버렸다.


나는 생선이 먹고 싶어 무의식적으로 숟가락으로 상을 탁탁 쳐대고 말았다. 엄마의 잔소리가 나를 향해 화살처럼 날아왔다.


"밥상 머리에서 복 달아 날라고 숟가락을 쳐대냐?"


"이거, 막내 먹어라."


그때 무뚝뚝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버지가 생선 살을 발라 내게 내미셨다. 나는 아버지가 내민 생선살을 내 밥그릇에 공손이 받아들였다. 얼굴에 웃음이 피었고, 오빠들에게 자랑하듯 보여준 후, 내 자리에 앉았다. 오빠는 그 모습이 부러운듯 생선그릇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하얀 생선살은 짭쪼름한 게 부들부들 입안에서 살살 녹았다.생선살 덕분에 꽁보리밥이 하얀 쌀밥처럼 달콤하고 부드러웠다.


사실 아버지는 말은 하지 않으셨지만, 막내딸을 생각하고 계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밥그릇에 밥 한 톨 남기지 말아라."


다른 날도 밥그릇에 밥 한 톨 남기지 않고 싹싹 긁어 밥을 먹었지만, 오늘따라 내 밥그릇이 유난히 광이 났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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