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 사진 속의 우리

by 약산진달래

6학년 교실 끝에 옥상이 있었다. 그곳으로 향하는 문은 우리에게 늘 활짝 열려 있었다. 쉬는 시간이 되거나 점심 시간이 되면, 우리는 그곳으로 달려가 춤을 추거나 노래를 부르며 신나게 놀았다. 마치 세상이 모두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듯했던 그곳에서, 하늘은 우리가 춤추면 밝은 조명을 비춰 주고, 저멀리 낮은 산들은 우리의 노래를 따라 부르곤 했다.


긴 단발머리를 한 영숙이는 허스키한 목소리를 가졌고, 커트머리에 눈망울이 초롱초롱한 선애, 그리고 곱슬거리는 커트머리를 한 나. 우리 셋이 늘 함께 학교 옥상에서 조용필의 노래를 부르고, 개그맨들의 흉내를 내며 웃고 또 웃으며 여름을 보내고 가을을 보냈다.

짧은 커트머리에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은 마치 성격을 드러내는 듯 남자아이들에게 인기가 없었다. 동네 남자아이들은 나를 보면 "야, 저기 섬머스마 지나간다!"라며 놀려대곤 했다.


그런데 그해 겨울, 나는 처음으로 단정한 롱코트를 입고 학교에 나갔다. 목에는 복실복실하고 부드러운 솜이 도톰하게 달려 있었고, 밤색 카키무늬의 단정한 코트는 내 마음에 쏙 들었다.

친구들은 나를 부러운 듯 쳐다보았다.


"정아, 너 진짜 딴 사람 같아."


"와, 오늘 정이 너무 예쁘다."


"너 새옷 진짜 멋지다."


새옷을 입고 등장한 나를 보며 친구들은 부러워했고, 목을 감싼 부드러운 털을 만져보려고 하나둘 내 곁으로 다가왔다. 나는 혹시라도 새옷에 때가 묻을까 걱정스러워하며,


"부드럽긴 한데, 그래도 만지지는 마. 보기만 해."


나는 새심떼기처럼 친구들에게 말했다.


"졸업사진 찍는 날이라 예쁘게 입고 왔구나."


영숙이도 오늘이 졸업 앨범 사진을 찍는 날임을 알고 있었지만, 어제 입었던 후질근한 점퍼를 입고 있었다.


"엄마가 사주셨어."


옷을 이리 저리 보여주며 나는 뽐내듯 말했다.


"너무 맘에 든다. 나도 한 번 입어보면 안 될까?"


그말에 내 마음은 복잡해졌지만, 결국 나는 옷을 벗어 영숙이에게 건네주었다.


"와, 나한테도 딱 맞다. 너무 맘에 드는데."


영숙이는 한동안 내 코트를 입고 교실을 돌아다녔다.


"빨리 벗어, 내가 입어야 해."


내가 외치자, 영숙이는 옷을 입고 더 멀리 달아났다. 나는 혹시라도 영숙이가 코트를 빼앗아 달아날까 봐, 폴짝폴짝 뛰며 영숙이를 쫓아가 억지로 옷을 벗겼다. 그리고 먼지라도 묻은 것처럼 옷을 털어 다시 입었다. 사실, 새옷은 아니었다. 어디서 난 옷인지는 알 수 없지만, 엄마가 반 코트를 내밀었고, 나는 그 옷을 입어보니 마음에 쏙 들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졸업식 사진을 찍으러 친구들과 사진관으로 향했다. 삼삼오오 친구들이 사진관으로 갔고, 나도 영숙이와 선애와 함께 학교에서 5분 걸어 사진관에 도착했다. 엄숙하게 우리는 한 명씩 카메라 앞에 앉아 사진을 찍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고, 털이 달린 밤색 코트를 입고 카메라 앞에 앉았다. 어떤 표정을 지을까 고민하며 얼굴에 긴장이 감돌던 그때, 사진관 아저씨가 말했다.


"너, 코트 벗고 찍으면 안 될까?"


"아니요, 입고 찍을래요."


사진관 아저씨가 코트를 벗기려고 다가올까 봐 나는 단추를 더 단단히 채웠다. 내 맘에 쏙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사진을 찍고 일어섰다. 다음 번호는 영숙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영숙이가 내게 말했다.


"현정아, 그 코트 나도 입고 찍으면 안 될까?"


그 말에 나는 마음이 불편해졌다. 코트를 벗어 주고 싶지 않았다.


"내 옷이 너무 맘에 안 들어서, 사진 찍을 때 예쁜 옷을 입고 나도 찍고 싶어."


영숙이의 진심을 느낀 나는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 코트를 벗어 영숙이에게 건넸다. 한 번뿐인 졸업사진에 예쁘게 나오고 싶은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게 웃는 얼굴로 영숙이는 카메라 앞에 앉았고, 밝은 셔터 소리가 터지자 영숙이는 깜짝 놀라 얼굴이 경직되었다.


"눈 감으면 안 된다."


사진관 아저씨의 한 마디가 사진관 안을 울렸다.


우리는 겨울 방학을 맞이하며 국민학교를 졸업하게 되었다. 빛나는 졸업장과 졸업사진 앨범 한 권을 받아들였고,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으로 앨범을 열어 보았다. 나는 어떤 모습으로 나왔을까? 6학년 3반 정현정을 찾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영숙이의 사진이 내 사진 바로 옆에 있었다.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무표정의 얼굴을 한 여자아이가 다른 것을 찾는다면, 커트머리와 긴 단발머리의 차이점뿐이었다. 사진은 개인 사진이지만, 졸업 앨범에 모두 단체로 실린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절대 옷을 빌려주지 않았을 것이다. 후회해도 이미 늦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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