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 문을 열고 나오면, 늘 마실을 다니시던 윗집 할머니가 보이곤 했다.
마당에서 혼잣말을 하시거나, 동네에 사람이 보이면 밭을 가로질러 바삐 걸어가시기도 하고,
신작로를 내려다보며 하염없이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앉아 계시기도 했다.
노인정에서 어르신들과 시간을 보내시다가 돌아오시는 모습도 익숙했고,
요즘은 아랫집 찬 오빠네 고롱나무 아래서
술을 마시는 동네 아저씨들 무리에 홀로 섞여, 무언가 참견하시는 모습도 보였다.
하지만 오늘, 그런 할머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윗집 할머니는 집으로 들어오는 길가의 잡초를 그냥 두지 않으셨다.
우리 집 앞을 지나칠 때마다,
무성한 잡초를 왜 그냥 두냐며 뿌리째 뽑는 법을 알려주셨다.
그런데도, 여전히 우리 집 마당은 물론, 작은 텃밭도 잡초 투성이다.
그런 할머니 덕분인지, 할머니 댁 마당은 언제나 깨끗했다.
잡초 한 포기도, 지푸라기 하나도 허락되지 않는 곳이었다.
밤나무 잎사귀가 담 너머 뒷마당에 떨어지는 것도 그냥 두지 않으셨다.
몇 해 전, 그 문제로 결국 밤나무 세 그루의 밑둥을 잘라냈고,
지난 가을에는 윗집 할머니네 창고 지붕 위로 뻗은 밤나무 가지를 가지치기해 두었다.
시골집에 내려가다 할머니가 보이면,
가끔 먹을 것을 나눠 드리곤 했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막내야, 깨 있냐? 깨 좀 줄까? 갖고 가라."
"막내야, 유자차 있냐? 유자차 좀 줄게. 갖고 가서 엄마 줘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양파 농사를 지으시던 건강한 분이셨다.
하지만, 나이 앞에서 건강도 이길 수 없었는지,
이제는 양파 농사는 물론, 다른 일들도 모두 내려놓으신 듯했다.
지난 가을, 할머니 댁 감나무에는 감이 주렁주렁 열려 있었다.
손 닿는 감만 몇 개 따셨고,
나뭇가지에 매달린 감들은 홍시가 되도록 바라보기만 하셨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장대로 감을 따 드렸다.
할머니는 자식들에게 주겠다며,
떨어져 으깨진 감까지 주워 모으셨다.
그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강아지들과 산책을 하며 할머니 댁 텃밭을 자주 보곤 했다.
늦가을까지도 도라지꽃은 화사한 보랏빛으로 물들어 있었고,
노란 유자도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혼자서는 감도 따지 못하셨던 할머니.
아마 유자도 그대로 두셨겠지.
그날, 할머니가 보이지 않는 것은
그저 집에 계시거나, 내가 나온 시간대가 맞지 않아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도,
이틀이 지나도,
할머니의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할머니, 자식 집에 다니러 가셨나 보네."
올케언니와 나는 지레 짐작으로 할머니의 겨울 행보를 예측했다.
그런데, 친구의 말에 가슴 한켠이 쿵 내려앉았다.
"해*이네 엄마, 요양원 가셨대. 자식들 집 가까운 곳에 모셨나 봐. 치매가 심해지셔서 혼자 있으면 안된대"
먼지 하나 나뭇잎 하나 날아다니는 것 없이 깨끗하게 쓸어놓으셨던 마당.
나는 조용히 할머니 댁 마당을 바라보았다.
마당은 여전히 잡초 하나 없이 정갈했다.
하지만, 땔감으로 주워놓은 나뭇가지들이 세찬 바람에 나뒹굴고 있었다.
"할머니가 보셨다면, 얼마나 애타하셨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나뭇가지들을 주워 다시 제자리에 쌓아 올렸다.
하나님께 할머니의 인생을 맡겨드린다.
더 이상 외롭지 않기를. 건강이 더 나빠지지 않기를. 남은 생애, 자식들의 사랑을 많이 받으시기를.
텅 빈 마당을 바라보며, 내 마음도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도라지꽃이 환창일때 도라지꽃 씨앗을 받아가도 되냐고 여쭈어 봤던 것이 기억났다.
"마음대로 받아가라" 하시던 할머니와의 약속을 떠올리며,
주인도 없는 할머니 댁 텃밭에서 도라지 씨앗을 받았다.
텅 빈 텃밭은 봄이 되었지만, 겨울 그대로 멈춰 있는 듯했다.
나는 마당 한켠에 도라지 꽃씨를 뿌렸다.
도라지 꽃이 피면, 나는 그 꽃 속에서 할머니를 다시 만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