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보석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꾸미는 일에도 큰 흥미가 없다. 검은 티셔츠 한 장과 구김 간 청바지 하나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고, 어디서든 잠들 수 있다. 나는 그렇게 단순하고 심플한 차림을 좋아한다.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백발이 성성한 나의 노모도 나와 비슷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엄마는 보석으로 몸을 치장하고, 화려한 옷으로 자신을 꾸미는 것을 좋아하셨다. 함께 살면서야 비로소 알게 된 사실이다. 밭을 매고, 논농사를 짓고, 바닷일까지 서슴지 않고 해내던 촌부로서의 삶을 살아온 여인이었지만, 그 마음속에는 자신을 꾸미고 싶어 하는 여성성이 여전히 자리하고 있었다.
얼마 전, 올케언니가 진주 목걸이를 갖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나는 그 말을 기억해 두었다가 엄마에게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엄마가 가진 보석이라야 변변치 않았지만, 단 하나뿐인 진주 목걸이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것은 30년 전, 내가 중국에 머물던 시절 진주시장을 뒤지고 뒤져 어렵게 사온 것이었다. 그래서 엄마가 그 목걸이를 올케언니에게 주셔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엄마는 목에 걸지도 않는 그 목걸이를 내어주지 않으셨다.
늘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내어주시던 엄마의 모습과는 달라 낯설게 느껴졌다. 어쩌면 목에 걸지는 않았어도, 내가 선물하던 순간부터 소중히 간직해온 보석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언젠가 하얀 진주 목걸이를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보관해 두셨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목걸이를 할 기회는 좀처럼 찾아오지 않았다. 밭을 매며 목걸이를 걸고 다닐 수는 없는 일이었으니까.
그러나 몸이 약해지신 뒤로는 상황이 달라졌다. 더 이상 밭일을 하는 촌부가 아니게 되신 것이다. 몇 해 전, 몸에 좋다는 건강 목걸이를 걸어드린 적이 있다. 엄마는 그것이 마음에 드셨는지 늘 목에 걸고 생활하셨다. 나 같으면 무겁다며 금세 벗어버렸을 텐데, 엄마는 달랐다. 건강 팔찌도 채워드리니 그 또한 늘 하고 계셨다. 얼마 전 제주도에서 올케언니가 사온 돌팔찌까지 손목에 더해졌지만, 오른손과 왼손이 주렁주렁해도 전혀 불편해 보이지 않으셨다.
그러다 테무에서 진주 목걸이가 저렴하게 판매된다는 소식을 듣고, 올케언니 몫과 함께 엄마의 것도 주문했다. 사실 어떤 물건이 올지 몰라 여러 개를 장바구니에 담았는데, 예상외로 목걸이는 고급스러웠다. 약간 허술해 보이던 팔찌조차 엄마의 손목에 걸리니 밝고 고급스러운 빛을 냈다. 그렇게 오랫동안 몸의 일부처럼 되어 있던 건강 팔찌와 건강 목걸이가, 드디어 하얀 진주로 바뀌게 된 것이다.
목걸이를 주문하며 옷도 몇 벌 함께 샀다. 물론 내 옷은 아니다. 밝고 화사한 옷들이 눈길을 끌었지만, 혹시 몰라 집에서 편히 입을 만한 옷까지 담았다가 취소를 반복한 끝에 결국 진주 목걸이와 함께 결제했다. 막상 받아본 옷들 가운데 꽃무늬가 화려한 한 벌은 엄마의 마음에 쏙 들었고, 나머지 두 벌은 그럭저럭 입을 만한 정도였다.
며칠 전, 둘째 올케언니가 사다 드린 보드라운 새 옷을 입고 계신 엄마에게 내가 “좋아?” 하고 묻자, 엄마는 아이처럼 “좋아”라고 대답하셨다. 엄마는 옷을 좋아하는 여자였다. 이 점은 나와 닮았다.
그러나 그날, 꽃무늬 옷을 입고 진주 목걸이와 팔찌를 한 채 "맘에 들어?”라는 나의 말에 백발의 노모는 이내 서럽게 울고 말았다. 세월에 지쳐 연약해진 몸으로, 젊은 시절 그토록 꿈꾸던 보석과 화려한 옷을 걸친 자신의 모습이 처량하고 애처롭게 느껴지셨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