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고함소리에 행신역 역사가 떠나갈 것 같았다. 기차를 기다리던 사람들의 시선이 할머니에게 쏠리고 있었다. 기차 출발 시간이 임박하여 플랫폼에 도착한 휠체어를 탄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악을 써대며 발버둥을 치면서 기차에 타지 않으려 했고, 휠체어를 밀고 있던 아들은 어떻게든 할머니를 기차에 태우려고 하고 있었다.
“엄마 한번 가서 있어봐 집보다 훨씬 좋대. 아니면 바로 데리러 갈게 "
”나 죽어도 못 가 안가 가려면 나를 죽이고 가라 안가“
달래는 아들의 소리는 듣지도 않고 할머니는 온몸의 힘을 다 쏟아 내듯 악을 쓰며 소리를 질러 댔고, 기차를 타지 않으려고 휠체어를 단단히 붙잡고 있었다. 기차 출발시간이 다되어 달려온 역무원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할머니와 아들은 KTX에 올라탔다.
3칸 정도 떨어진 차량에 타고 있었던 나는 2시간 내내 할머니의 악쓰는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이제 그만 지칠 법도 한데 할머니의 소리는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할머니가 집을 떠나지 않으려고 악쓰는 소리와 함께 광주로 내려가는 기차 안에서 나의 마음은 내내 무거웠다. 할머니는 어느 역에서 내렸을까? 광주에 도착할 즈음 할머니의 악쓰는 소리는 멈추어 있었다.
4일 만에 간 엄마의 병실에서 오빠와 교대를 했다.
“밤에는 언니가 지키고 있었는데 일하러 가고 내가 교대했다.”
물어보지도 않는 말을 하는 오빠다.
“어머니 저 갔다가 다시 올게요”
엄마에게 인사를 하고 집으로 가는 것 같았던 오빠는 커피 한잔을 들고 다시 나타났다. ‘수고해라’라는 말만 남기고 곧바로 병실을 떠났다. 오빠가 건넨 커피 한잔에 쉬는 날 쉬지도 못하게 하고 멀리 있는 나를 내려오도록 한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느껴졌다.
오빠가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앞자리에 누워있는 할머니 환자의 사위가 공무원인지 은행 직원 인듯해 보이는 사람을 대동해 병실로 들어왔다. 사위와 함께 온 사람이 할머니에게 물었다.
“할머니 따님을 대리인으로 세우시겠어요?”
할머니는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눈만 껌뻑 껌뻑였다. 그 사람은 눈을 껌뻑이는 할머니의 얼굴을 어두운 눈으로 한참을 바라보았다.
“말씀은 못하고 몸은 움직이지 못해도 다 알아들을 수 있어요.”
옆에서 딸이 거들었다
“그러면 할머니가 승낙하는 걸로 알겠어요.”
직원이 이야기를 마치자 딸은 할머니의 손을 끌어다 서류에 손도장을 찍게 했다.
그 직원이 병실을 나가고 한참 뒤 나는 할머니 상태가 궁금하여 보호자인 딸에게 말을 걸었다.
“할머니는 어쩌다가 쓰러지셨대요?”
시골에서 혼자 지내시던 할머니는 언제 쓰러지셨는지 모르게 골든타임의 시간을 넘기고도 훌쩍 넘겨버린 상태에서 이웃에 살고 있는 친척에 의해 발견되었다고 했다. 할머니는 그 후유증으로 언어마비가 오셨고 우측으로 완전 마비가 됐으며, 고개가 한쪽으로 돌아가 움직이지 않은 상태가 되었다.
엄마의 입원 소식을 들은 딸은 제일 먼저 시골집에 들러 집안 구석구석을 뒤져서 꼭꼭 숨겨진 집문서와 땅문서 그리고 통장 두 개를 찾아내었다. 은행에 확인해보니 아직 통장이 2개가 더 있었는데 어디에 있는지 그것을 찾아낼 수가 없었다고 했다.
“할머니는 자녀가 몇이나 되시는데요?
형제가 몇이나 되는지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딸 셋 아들 하나요."
“아들은.....?”
“아들은 지금 중국 출장 중이에요.”
엄마를 끔찍이 생각하는 것은 딸과 사위인데도 엄마는 아들만 생각하시는 분이라고 했다.
“우리 엄마는 아들이 낳은 손주한테는 십 만원씩 용돈을 주면서 우리 애들한테는 십 원 한 푼도 안 줘요.”
나는 ‘그런 할머니도 있구나’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엄마는 언제나 모든 손주에게 구별 없이 똑같이 용돈을 주셨기 때문이다.
“우리 엄마는 아들만 좋아해요. 딸은 안중에도 없는 분이세요. 그 아들은 엄마를 생각하지도 않는데 말이에요.”
“엄마가 쓰러지신 거 출장 중인 아들은 알고 계세요?
“아니요 아직 동생에게 말하지 않았어요.”
형제들이 다 모이지 않은 상황에서 엄마의 금전적인 문제를 마음대로 해도 되나 나는 잠시 생각했다.
“엄마 우리 집으로 가 우리랑 살아.”
딸은 엄마에게 말했다.
”장모님 이제 저희랑 살아요.”
사위도 말했다.
할머니가 어디로 가시는지 궁금했다. 그런데 딸은 나를 바라보더니 동생 이야기를 크게 하던 것과는 반대로 조용히 대답했다.
“저희 집 가까운 요양병원에 마침 자리가 있어서 그곳으로 모시고 가려고요. 집 가까이 있으니 저희가 자주 들러볼 수 있으니까요. 병원에서 내일 퇴원하라고 하네요.”
얼마나 이곳에 입원해 있어야 하는지 나는 갑자기 궁금해졌다.
“입원 후 2주가 되면 바로 퇴원하라고 해요. 저희는 더 치료할 게 없다고 정해진 데가 있으면 퇴원을 바로 해도 된다고 하더라고요.”
“상태가 호전된 것이 없는데 퇴원해도 되나요?”
“그러게요 이 병이 그렇다고 하잖아요. 좋아지지 않는다고~ 그러니 어쩌겠어요. 집 가까운 요양원에 모셔야지. 자주 들여다라도 볼 수 있게요.”
가족들 전체의 합의도 없이, 할머니의 의지와도 상관없이 ‘할머니는 이제 요양병원으로 가시게 되는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불편해진다. 우리 엄마에게도 며칠 있으면 닥쳐올 이야기라고 생각하니, 병실에서 엄마와 지내는 하루 동안 나의 마음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내려앉았다.
늙으면 돈이라도 많아야 한다고 엄마는 늘 말씀하셨다. 그런데 늙어서까지 열심히 모은 돈, 집문서, 땅문서 모두 결국 자식들에게 넘겨진다. 그것도 자신의 동의도 없이 말이다. 그리고 병들면 마지막 머무를 안식처마저도 자신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다. 평생 살았던 고향을 떠나 낯선 지역으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가야 할 수도 있다. 병든 노모의 인생 마지막 종착역, 자식들의 선택지가 요양원일 수도 있는 것이다.
오빠와 다시 교대를 하고 광주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 안! "나 안가 나 못가 나 죽이고 데려가라" 악을 쓰며 저항하던 할머니의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