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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리 AIRY Nov 18. 2021

많은 사람들, 모자란 잠

11월 8일 (월) ~ 11월 14일 (일)

11월 8일 월요일

 신경정신과에 가면 보통 15분 상담 시간을 가진다. 그런데 오늘은 최단 시간 상담했다. 10분 안팎이었다. 평소보다 별로 할 말이 없었던 것일 테다. "아침 일찍 춤 가고요, 사람도 많이 만났고, 자려고 할 때는 잠에 잘 들어요. 그런데 잠이 모자라서 피곤하고 졸려요." 정도. 2020년~2021년 상반기 때보다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그때는 코로나라, 일하느라, 여러 이유로 사람들을 많이 못 만났다. 그리고 하반기에 갑자기 사람들을 우르르 만나고 있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 짤막한 꿈 이야기는 꿈모임에서 할만한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주 예전 애인이었던 사람이 꿈에 나와서 나에게 잘해주는 꿈이었다. 그런데 시와 님이 그런 얘기도 해도 된다고 하시자마자 나는 그 꿈을 짧게 말했고 어느새 내 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이미 예전에도 짧은 꿈이라고 하면서 이야기 나눈 적이 몇 번 있다고 했다. 비난받을 것 같은 꿈 이야기도, 너무 짧은 것 같은 꿈 이야기도, 꿈모임에서는 할 수 있다.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춤 - 회사 상사와의 1:1 전화 미팅 - 상담 - 책 일 - 과외 - 꿈모임 으로 달렸더니 너무 졸려서 꿈모임 막판에는 졸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에게서 웃음이 터져 나와 다행이었다. 나는 누군가를 앞에 두고 잠에 잘 든다. 예의가 아닐까 봐 걱정하면서도 그렇게 된다. 그래서 차라리 웃어준다면 감사한 마음이 든다.


11월 9일 화요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사는 유진이가 오랜만에 한국에 왔다. 코로나로 인해 오랫동안 한국에 오지 못하다가 이번에 가능해져서 들어올 수 있었다고 했다. 바쁠 텐데 시간을 쪼개어 지난달 공연에 와준 유진이 고마웠다. 오늘 저녁 7시에 만나 내리 7시간을 계속 함께했다. 중간에 명학도 합류했다.

 유진은 내가 바로 예전에 살던 집도 와본 적이 있다. 2년 전이었다. 예전에 공중캠프가 닫기 전, 공중캠프에서 늦게까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리집에 자러 왔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더 하다가 유진이는 자지도 못하고 아침에 다시 나갔었다. 

 암스테르담에 언제 가볼 수 있을까? 언젠가 가보고 싶다. 당장 지금이라도 가고 싶지만 막상 과외 시간이 걱정이다. 예전에는 돈이 없어서 갈 수 없었는데, 지금은 시간이 없다. 내년이나 내후년에는 가보고 싶다. 유진이 있다고 생각하니 왠지 든든하기도 하다.

 유진이가 암스테르담에서 살게 된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 우연의 우연이 겹치고 모험심까지 더해진 여정이었다. 유진이와 처음 이야기를 진득하게 얘기 나눠본 건 아마 내가 20살-21살 때였던 것 같다. 원하는 것을 하고 싶어서, 원하는 삶을 살고 싶어서 꿈을 꿨던 그때, 유진이와 그런 꿈꾸는 삶과 현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오늘 만난 우리는 그때보다는 현실을 조금 더 알게 되었는데, 여전히 꿈꾸는 삶에 대해서도 대화를 나누기는 했다.

 유진이가 암스테르담으로 가게 된 전후 시기에도 우리가 더 자주 이야기를 나눴다면 유진이에게서 강한 영향을 받았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난 어렸을 때부터 자잘한 활동을 즐기기는 했지만 인생에서 모험이라고 할 수 있었던 건 음악활동을 시작한 때뿐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난 언제나 안전바를 잡고 살아왔다. 

 내 인생은 부모라는 타인에 의해 설계되어 있다는 느낌으로 살았는데, 그 설계를 벗어나고 싶으면서도 벗어나기가 두려웠다. 일단 사랑받고 싶어서 그랬다. 그 설계를 벗어나면 사랑받지 못할 것 같았으니까. 지금은 그 두려움에서 자유롭다.

 다만 이제 돈과 강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돈이 없으면 월세를 못 내, 음악활동도 못 해, 나는 음악을 해야 돼, 해야 되는데 왜 안 해, 같은.

 하우스메이트에게 허락을 받고 유진이를 내 방에서 재웠다. 


11월 10일 수요일

 아침 6시에 일어나 춤 - 회사교육 - 과외 일정을 소화하고 집에 돌아오니 밤 10시가 넘었다. 운동을 시작한 건 좋은데, 사람들을 만나 좋은데, 잠이 모자라서 피곤하다. 운동을 포기해야 하나, 사람들을 포기해야 하나, 잠을 포기해야 하나? 지금은 잠을 약간 희생하고 있는데 너무 피곤해서 곧 다른 걸 포기해야 할 듯싶다.

 춤 학원에 다녀오니 유진이가 잠에서 깼다. 줌으로 하는 회사교육이 시작하기 직전에 유진이가 우리집을 나섰다. 다음 주 수요일에 또 만나기로 했다.

 회사교육과 과외 일정 중간에 한 시간 쉬는 시간이 있었는데, 명학이 김밥을 사주었다. 그리고 나는 짧은 쪽잠을 잤다.


11월 11일 목요일

 보틀라운지에서 텀블벅 관련 업무를 보니 시간이 금방 갔다. 음악이 아닌 글로 텀블벅을 열게 되다니. 앞으로의 인생도 어디로 가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재밌다.

 과외 시작 전에 명학이 오늘 빼빼로 데이라고 빼빼로를 줬다. 살 빼고 싶다고 말했는데. 아니, 고맙다.

 오후 내내 과외를 하고 이번 주에 못 봤던 <스우파 갈라쇼>를 보며 히히 거리다가 잠에 들었다.


11월 12일 금요일

 춤 학원에서 처음으로 춤 선생님과 투샷으로 영상을 찍어봤다. 다 같이 찍을 때는 잘했는데, 둘이 찍게 되니 긴장됐다. 동작을 마구 틀렸다. 매주 노래가 달라지고, 금요일마다 영상을 찍는다. 그러느라 조금 늦게 끝난다. 그래도 뿌듯하다. 잘하려고 하기보다 즐거워서 한다는 마음이다. 즐거운 마음이 언제까지 갈지는 몰라도, 지금은 즐겁다.

지향의 식탁 무늬가 예뻐서

 여러 절차와 서류 준비, 일정에 맞추는 것 때문에 텀블벅을 2주 동안만 열게 될 예정이다. 텀블벅은 보통 3주 이상 연다기에 조금 걱정은 되지만 '어쩔 수 있나'다. '어쩔 수 있나'는 누군가에게는 힘이 빠지는 말일 수도 있지만 나에게 힘을 준다. '어쩔 도리가 없다'는 내 고민과 갈등을 금방 끝낸다.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다음 스텝을 나갈 수 있게 해 준다.

 일기집 2차 편집본 확인을 거의 다 봤다. 분량이 조금 남았을 때, 지향에게 연락이 왔다. 지향이 보고 싶어 지향 집으로 갔다. 지향과 대화를 하는 시간이 좋다. 중간에 Abi도 왔다. 둘은 저녁에 공연 파티에 가기로 했다. 나는 과외를 하러 집으로 돌아왔다. 과외를 하고 잤다.


11월 13일 토요일

 과외 - 음피아 - 과외 - 팝업스토어 - 파티 - 파티

 랏밴뮤의 주파수 서울에서 '음피아'라는 기획에 시민으로 참여했다. 마피아 게임과 같은 형식이었다. 누군가의 전 애인, 뉴욕 유학으로 이별을 고함, 졸업 후 한국으로 돌아와 최근 애인이었던 사람에게 연락함 등의 설정은 이미 정해져 있었고, 그 외의 설정은 내가 만들었다.

 학창 시절에 마피아 게임을 아주 못했다. 못했다? 왜지? 딱히 눈에 띄지 않는 시민인 상황이 많았는데, 그 상황에서 내가 별로 잘한다는 느낌은 못 받았다. 그리고 학창 시절 친구들은 내가 거짓말을 잘 못한다며 당연히 마피아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는 말을 했다. 나는 시민이기에 무작정 시민이라고 말하고, 나는 시민이기에 마피아로 지목받으면 무작정 억울해했다. 그런 무작정 나를 보고 다들 찐이란 걸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언젠가 마피아가 됐다. 그리고 나는 (당연히) 시민인 척 연기를 했는데, 나중에 내가 마피아란 것이 알려졌을 때 친구들이 '정말 배신감 느낀다'라고 했다. 그제야 나는 내가 마피아 게임을 잘한다고 느꼈던 것이다.

 오늘은 시민인데도 왠지 내가 게임을 잘하고 있다고 느꼈다. 애인 사이였는데 헤어진 사람 설정이 왜 이렇게 재미있을까?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네.

 지난주에 영남과 만났을 때 영남이 에코 서울이란 곳에서 파티가 있다며 오라고 했었다. 아는 사람이 없을 것 같다고 걱정하는 나에게 영남은 예전에 전시를 보러 온 사람이랑 같이 오면 되지 않냐고 했다. 예전에 명학과 영남의 전시를 보러 갔었다. 그래서 명학에게 물어보고 파티에 같이 가기로 했다.

 파티에 가기 전에 해방촌에 들렀다. 명학의 친구가 하는 '페일 커피'라는 카페에서 명학의 또 다른 친구가 하는 팝업스토어를 열고 있었다. 음료를 시키고, 쿠키를 얻어먹었다. 눈여겨보게 된 치마가 있는데 고무줄이 아니라 고민하다가 결국 안 샀다. 너무 슬픈 이야기인데, 예전에 입던 바지가 이제 너무 꽉 껴서 잘 안 잠긴다. 내게도 이런 날이 올 줄이야. 주말에 본가에 갔을 때, 엄마가 나보고 살쪘다며 더 이상 찌지 말라고 했다.

 에코 서울에 가서 진을 약하게 탄 음료인 진 피즈를 시켰다. 바이닐 바라서 dj들이 바이닐로만 음악을 틀었다. 명학과 적당히 몸을 흔들다가 아는 사람에게 인사하기도 했다. 그런데 영다이 님이 있었다. 그래서 인사했는데 너무 반갑게 맞아주었다. (애리, "쓸 말이 생각 안 나." 명학, "인프피 셋이 모여서 mbti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야기도 나누고 몸도 흔들었다. 배고파서 에코 서울 아래에 있는 애시드 서울에서 파스타를 먹으려고 했는데 자리가 오랫동안 안 났다. 오래 기다려서 겨우 바 자리에 앉았다. 영남이 레몬 들기름 파스타를 강추했었다. 명학과 나는 레몬 들기름 파스타와 안초비 라임 페퍼 파스타를 시켰다. 레몬 들기름 파스타가 먼저 나와서 먹으니 딱 맞춰 안초비 라임 페퍼 파스타가 나왔다. 애시드 서울의 파스타 데이라 파스타가 10,000원인 날이었다. 집 근처에 있었다면 자주 갔을 것 같다. 자주 먹고 싶었다.

 Abi네 집에서는 포트럭 파티가 열리고 있었다. 음식이 이미 많다고 해서 명학과 나는 와인을 사 갔다. 오랜만에 보는 사람들이 있어서 반가웠다. 한 시간 정도 있다가 오전부터 계속 말하는 활동을 해서 그런지 피곤해져서 나왔다. 피곤하다면서 명학과 일렉클을 탔다. 그런데 5천 원 넘게 나왔다. 이럴 거면 택시를 타는 게 낫지 않았을까 싶다.

  

11월 14일 일요일

 집에서 상수 슬런치 팩토리로 가는 거리는 아주 멀지 않지만 교통이 불편하다. 지도 어플을 보니 40~50분이나 걸리게 나왔다. 요즘 너무 피곤해서 택시를 타려고 했는데 택시가 계속 안 잡혔다. 피곤하다면서 또 일렉클을 타고 슬런치 팩토리에 갔다. 키라라와 각자 할 일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명학도 왔다.

 키라라는 촬영을 하러 가고, 나는 명학과 루미큐브를 했다. 키라라가 촬영을 끝내고 돌아와서 우리 셋은 식사를 하러 당인동 국수공장에 갔다. 나는 당인온면을 시켰는데 함께 먹는 사람들 사이에서 내 메뉴가 인기가 많았다.

 명학 친구들이 왔다. 원래 가려던 곳에 6명이 앉을자리가 없어서 다른 곳으로 갔다. 그다음 자리로 옮길 때 키라라는 집에 갔고, 나는 다음 자리로 옮겼다. 명학에게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사람들이라 반가웠다. 다음으로는 만평으로 간다고 했다. 나는 잠이 모자란 몸이 피곤해져서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아침에 춤추러도 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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