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일 금요일부터 바빴다.
춤 학원 -> 메뉴 한 개밖에 없는데 매일 메뉴가 조금씩 바뀌는 저렴한 동네 백반집에서 아점 -> 카페 -> 장비 수리점 -> 자정까지 과외.
지난주부터 월수금 아침 7시마다 춤을 추러 간다. 바로 동작을 따는 게 어려워서 춤 선생님의 동작을 녹화해 집에서 연습하고 간다. 지금까지 늦은 적이 없다가 금요일에는 하우스메이트가 7시에 깨워줘서 그때서야 일어나 부랴부랴 택시를 타고 학원에 갔다. 전날 거실에 있는 커다란 전신 거울을 보며 2시간 정도 연습을 해갔더니 겨우겨우 따라갈 수 있었다.
장비 수리점에 가서 페달 보드 점검을 맡긴 상태였는데 전날 페달에 전력을 공급해주는 파워가 고장 났다고 연락이 왔다. 급히 데드버튼즈의 디디마르님께 파워를 빌렸다. 장비 수리점에서 디디마르님의 파워를 내 페달 보드와 연결해주는 서비스를 받았다. 딜레이 페달을 켜고 끌 때 나는 퍽퍽 소리는 페달끼리 궁합이 맞지 않아서라고 했다. 임시방편으로 페달 순서를 바꿔 연결하니 페달을 켜고 끌 때 퍽퍽 소리가 나지 않았지만, 소리가 조금 바뀔 거라고 했다. 이 날은 도저히 연습할 시간이 없었다. 공연 당일인 다음 날도 아침 9시부터 과외수업이 있기 때문에 공연 직전에 연습을 하기로 했다.
10월 2일 토요일에는 과외를 하고 3시부터 5시까지 창전동에 있는 합주실에 개인 연습실을 빌려 연습했다. 거의 반년만에 이펙터를 가지고 연습하니 어색했다. 게다가 이펙터 세팅 순서가 바뀌어서 신경도 많이 쓰였다.
몇 년 전에는 일주일에 한 번 이상 공연을 하며 연습도 하고 다른 공연 팀들에게 많은 것을 배우기도 했다. 일부러 관심 있는 음악가들의 공연에 찾아가 느끼고 감동받으며 연구하기도 했다. 이 모든 게 부담으로 다가오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돈 때문이다. 독립 후에 모아놓은 돈이 떨어지면서 관객이 적거나 어떤 이유 때문에 돈을 적당히 받지 못하는 공연은 시간적으로나 체력적으로 부담이 되기 시작했다.
이런 마음을 가져서 항상 와주시는 관객 분들께 감사하고 죄송한 마음이 든다.
이번 <폭력 종식> 공연은 지원을 받아 이루어진 행사였기 때문에 돈 때문에 부담되지는 않았지만, 공연 자체에 부담을 가지게 된 관성이 그대로 가고 있었다. 막상 공연 전에 꽉 들어찬 공연장을 보자 안도감이 들면서 빌리카터와 데드버튼즈, 관객 분들께 감사하고 죄송한 마음이 더 커졌다. 목과 어깨가 좋지 않은 나는 기타를 연주할 때 왼손이 자주 떨린다. 무대에서 연주할 때 이 날도 어김없이 왼손이 떨렸다. 그러면 나는 내가 떨려서 손을 떠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말하고 싶지만, 내 떠는 손을 관객이 보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정말 떨려버린다. 다행히 바로 평정심을 잡을 수 있다. 자신감이 있을 정도다.
데드버튼즈와 빌리카터가 무대에서 음악으로 내뿜는 에너지와 차별금지법, 페미니즘, 동물권 등 모든 생명에 대한 권리와 폭력 종식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며 용기와 위로를 얻었다. 누군가는 생각하는 것을 그냥 말하면 되지 않느냐 하겠지만 나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두 팀에게 고마웠다.
공연이 끝나고 함지박이라는 조그마한 술집에 명학이 있다고 해서 갔다. 공연에 와준 명학이 공연이 좋았다고 해줬지만, 나는 잘 믿지 못하겠다. 명학의 진심을 믿지 못하겠는 게 아니라, 내 공연에 만족을 잘 못 했다. 명학은 독서모임을 함께 한 어진, 희수를 소개해줬다. 10시가 지나 네 명은 우리 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나는 술 한 방울 마시지 않고 새벽 세시 넘게까지 이어진 자리의 분위기에 취했다. 어진과 희수를 앞으로도 더 보고 싶다.
10월 3일 일요일 느지막이 명학과 쌀국수와 볶음밥을 먹었다. 식사를 두둑이 한 후 다시 졸려져서 크루앙빈을 듣다가 낮잠에 들었다. 잠에서 깬 지 얼마 안 됐는데 나비님께 연락이 왔다. 나비 집에 놀러 가기로 한 날이다. 그린님도 오랜만에 봐서 반가웠다. 그런데 가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만 잠이 들어버렸다. 얼마 얘기도 못 나눴는데 저녁 8시에 과외가 있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나비 집을 떠나기 전에 아쉽다면서 과외가 끝나면 다시 나비 집으로 돌아가기로 약속했다. 과외가 끝나고 다시 나비 집으로 갔는데, 이번에도 얼마 얘기 나누지 못하고 잠이 들어버렸다. 나비가 아쉬워하면서도 자리를 펴줬다. 토퍼 매트리스가 무척 편안했다.
10월 4일 월요일 아침 가위에 눌렸다. 내 생각이 목소리로 들렸다. '목소리가 들릴 것 같아' '가위에 눌릴 것 같아' '아, 진짜 눌렸네'라는 말 같은 거였나. 가위에 눌린 채 여러 목소리가 들려서 '시끄러워' 생각하고 다시 잠에 들었다. 오전 10시쯤, 일어나서 먹는 신경정신과 약을 챙겨 먹었다. 배고파서 가려고 나비와 그린의 방을 열어 인사했더니 식사하고 가라고 했다. 그린이 이리 오라고 했다. 나비와 그린의 사이 빈자리를 손으로 치면서 말이다. 나는 두 여자 사이로 가서 누웠다. 두 여자가 애정으로 나를 맞이해줘서 고마웠다.
간짜장을 먹고 다시 잠에 들어버렸다. 잠이 이렇게 부족했나?
한참 잠을 자다가 나비, 그린과 함께 진부책방에 왔다. 명학도 와서 공부한다고 하고 핸드폰을 보고 있다. 곧 과외하러 가야 한다. 정신없이 지나는 10월 초, 매일 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