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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리 AIRY Oct 05. 2021

엄마의 위치가 확인되지 않아

꿈 일기

꿈에서 학창 시절 친구들이 모였다. 우리는 지하 원룸 공간을 통째로 빌렸는데, 벽은 회색이고 가구는 거의 없었다. 결혼한 사람과 함께 참석한 친구들도 있었다. 한 명 한 명 도착했다. G가 남편과 함께 왔다. G는 허리와 팔 윗부분을 고무줄로 잡아주는 하얀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다. 팔 기장이 팔꿈치를 겨우 덮었다. 드러나 있는 팔에 올드 스쿨 타투가 가득했다. 타투가 예뻐서 친구들과 나는 G에게 몰려들었다. 장미 타투가 예뻤다. G는 난감하고 슬픈 표정으로 타투가 잘 안 됐다고 했던가, 괜히 했다고 했던가? '예쁜데...'라고 생각한 나는 왠지 옷에 가려져 있는 내 오른팔 위의 내 바질 타투가 생각났지만 말을 꺼내진 않았다.


G는 어머님 병간호와 남편의 일 이야기를 들어주면 하루가 다 지나가버린다고 했다. 그때 생각났다. 우리 엄마는 아파서 입원 중이었다. 엄마에게 가기로 마음먹었다. 다행히 10분도 안 걸리는 거리였다. 밖에 나와 걷는데 시내와 공원, 바다 풍경이 지나갔다. 사람들도 처음에는 나와 같았다. 그런데 공원을 지나 바다 쪽으로 걷다 보니 나만 빼고 다들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아차! 마스크를 구하려고 근처 낡은 편의점에 들어갔다. 주스가 나오는 기계인지 주유가 나오는 기계인지 기억이 안 나는 기계만 가득했다. 예전에 한번 아빠나 연인과 와본 곳 같았다.


편의점 밖에서 흰 식당 모자를 쓰고 일하고 있는 노년의 여자를 봤다. 엄마의 엄마와 아빠의 엄마 느낌이 났다. "이 편의점에서 마스 팔아요?" "아이구, 나 지금 일 끝났으니까 잠깐만 기다려봐." 순식간에 옷을 갈아입은 여자가 나에게 검은색 천 마스크를 줬다. "엄마가 아파요." 나는 어느덧 노인에게 팔짱을 끼고 한 건물의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엄마 냄새가 나는듯했다. 갑자기 음악가 S가 자신의 친구와 까르르 웃으며 우리 앞에 나타났다. 나는 S에게 인사를 몇 번 했지만 무시당한 적이 있었기에 잠자코 있었는데, S와 S의 친구가 내 옆의 노인에게 인사를 했다. 노인은 반갑게 인사를 받아줬다.


길을 잘못 들었나 싶었는데 내가 노인을 데려다주는 거였다. 우리는 복도를 걷게 됐다. 그런데 이번에도 S와 S의 친구가 나타났다. 용기를 내 손을 들어 인사했다. 그랬더니 S와 S의 친구는 동시에 손을 들어 인사했는데, 눈이 향하는 곳이 달랐다. S는 내 뒤의 누군가에게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S는 이내 나에게 시선을 둔 자신의 친구를 보고 당황해서 나를 보았다. 나는 용기를 내어 말했다. "예전에 몇 번 마주치는 자리에서 인사드린 적이 있는데." S가 멋쩍은 웃음을 짓자마자 내 뒤에서 S와 S 친구의 다른 친구가 둘에게 다가와 내 옆에 섰다. 그 사람 또한 내가 인사했을 때 받아주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나는 또 용기를 내어 말했다. "안녕하세요. 예전에 인사드린 적 있는데." 나의 말에도 내 쪽을 보지 않아 한번 더 말해야 했다.


노인은 없어졌다. 우리 셋만 남았다. 잠깐, 나한테는 인사가 중요한 걸까? 꿈 기록을 하다 보니 이 부분이 인사 못 받아서 죽은 귀신같다. 하지만 결국 나에게 인사는 중요한 것 같다. '-인 것 같다'를 쓰면 글을 잘 못 쓰는 거라는데 난 이 표현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 (후,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라고 쓸 뻔했는 걸.) 나는 어떻다 저쩧다고 확실하게 말하기가 조심스러울 때가 많다. 인사는 중요해,라고 말하면 아니 왜? 아닌 이유도 있는데? 목소리가 들린다. 그냥 나는 수많은 우유부단한 사람들 중에 한 명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 우유부단함이 문제라면 할 말이 없다. 사회적으로 어떻게 우유부단함이 생기고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건 재밌지만.


장면이 바뀌었다. 나는 슬슬 날기로 했다. 나는 꿈을 꿀 때 항상 꿈인 걸 눈치채지 못한다. 오히려 '아, 나 날았었지?' 오랜만이라고 생각한다. 족히 열 블록 넘을 거리를 걸었나 보다. 나는 엄마의 병실에 가기 위해 평소보다 꽤 높이 날았다. 하늘로 날아 아래를 살펴보니 공원과 병원과 주거 건물이 보였다. 오랜만에 나는 것 치고 잘 나는군.


병실에 도착했다. 엄마는 자고 있었다. 아빠는 엄마가 누워있는 널찍한 침대 옆에 창문 쪽으로 붙은 길고 폭이 좁은 책상 앉아있었다. 작은 이모는 엄마와 함께 침대에서 자고 있었다. "지금 당신이 느끼는 고통이 당신이 잠들고 내는 신음 같은 걸까" 조그마한 종이 조각에 아빠의 메모를 봤다. 정말 엄마는 신음을 내고 있었다. 엄마는 자궁암이었다.


꿈에서 깼다. 실제로 돌아가신 큰엄마가 자궁암과 투병하다 돌아가셨다. 살아계신 큰엄마는 그 후 새로 만나게 된 가족이다. 윷놀이에 져서 울던 일곱 살 나를 아빠가 모든 가족 친척 앞에서 큰 소리로 혼냈다. 그 후 다들 짧은 외출을 했는데 큰집에 돌아가신 큰엄마와 나만 남았고, 큰엄마는 나를 부둥부둥 안아주고 달래줬다.  재작년 어느 날은 엄마와 큰엄마, 내가 큰집의 큰방에서 자다가 내가 새벽에 깼다. 엄마도 깼다. 나는 누군가에 대해 말하며 너무 외로워 보였다고 말했다. 엄마는 누구나 외롭다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큰엄마가 나에게 내용과는 다르게 씩씩한 목소리로 "야 누가 더 외로운가 들어볼래?"라고 말했다. 나는 큰엄마들을 사랑한다.


엄마는 위암을 얻어 항암치료를 하고 회복했다. 부모님과 사이가 좋지 않았을 때 나는 당시 애인의 집에 있었다. 자정이 넘어서야 들어가거나 아예 들어가지 않아 아빠는 나를 고삐 풀린 망아지 같은 놈이라고 했다. 애인과 있다가 전화를 받으니 아빠는 화내고 있었다. 엄마가 암이라고. 부랴부랴 집으로 갔다. 아빠 말로는 엄만 우리가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지만 너희들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아빠는 여전히 화를 내고 있었다. 하지만 화내면서 우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나는 안방에 들어가 돌아 누운 엄마를 안았다.


아침 6시 반이었다. 마음이 아직도 저릿했다. 엄마는 출근 준비를 하느라 일찍 일어나니까 깨 있겠지 생각하고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고객의 위치가 확인되지 않아 연결할 수가 없다니. 엄마는 어디 있는 걸까? 엄마는 휴대폰을 잘 놓고 다니니까 휴대폰만 다른 곳에 놓고 잃어버린 걸까? 아니면 내 핸드폰이 잘못된 걸까? 잘 터지고 있는데. 다시 걸어봤지만 같은 안내음이 나왔다.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빠는 받자마자 "어 엄마 바꿔줄까" 했고 난 응. 엄마는 겉절이를 만들고 있었다고 했다. 다시 엄마에게 전화받지 말아 보라고 하고 전화를 거니 이번에는 고객의 위치가 확인되지 않는다는 연결음은 나오지 않았다.


타이밍은 신기하다. 왜 하필이면 엄마를 잃을까 봐 마음이 아픈 꿈을 꾸고 걱정스러워서 전화를 했을 때 그런 안내음이 나왔을까?


가끔 엄마, 아빠, 동생을 잃을 것 같거나 잃은 꿈을 꾼다. 엄마의 위치가 확인되지 않는다는 건 너무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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