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끝에 닿는 허영

우리는 맛보다 이미지를 먼저 삼킨다

by 깊고푸른밤


차가운 아이스크림을 한 숟갈 떠 넣다가

문득 멈췄다.


하겐다즈.

Häagen-Dazs.


이름이 이상했다.

특히 'a' 위에 찍힌

움라우트 점 두 개.


나는 오래도록

아무 의심 없이 믿고 있었다.


이 아이스크림의 고향이

움라우트를 쓰는 독일이거나,

낙농업이 발달한 덴마크이거나,

적어도 유럽 어딘가 일 거라고.


미국산일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하겐다즈는

독일이나 덴마크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하겐다즈'라는 말은

독일어, 덴마크어에는 없는,

그럴듯해 보이도록 만들어진 조어(造語)다.


덴마크나 유럽 유제품이 가진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빌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설계된 이름이었다.


이 아이스크림의 시작은

유럽의 초원이 아니라

뉴욕 브롱크스의 삭막한 공장지대였다.


나는 그 사실을 모른 채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아니,

맛보다 먼저

이미지를 삼켰다.


생각해 보면

식탁 위에서는 늘 이런 일이 벌어진다.


포장이 그럴듯하면 안심하고,

이름이 낯설면 정통이라 믿는다.


혀보다

눈과 귀가 먼저 판단한다.


결국 브롱크스산이면 어떻고,

덴마크산이면 또 어떤가 싶다.


입안은 차갑고 달았고,

기분은 잠깐이나마 괜찮아졌다.


다만

조금 씁쓸한 생각이 남았다.


선입견이라는 것은

대개

혀에 닿기 전에

머리에 먼저 자리를 잡는다는 것.


그리고 우리는

그게 내 취향인지,

주입된 이미지인지도 모른 채

오늘도 무언가를 먹는다.


가장 자본주의적인 맛을,

가장 유럽적인 척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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