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물의 시간

먹을 수 있게 만들었던 음식에 대하여

by 깊고푸른밤

(이미지출처 : pixabay)


어릴 때는

나물에 젓가락이 잘 가지 않았다.


밥상에 올라와도

항상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반찬이었다.

맛이 없다고 생각했고,

굳이 먹어야 할 이유도 알지 못했다.


그땐

왜 그런 걸 먹는지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았다.

설명해 줘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언제부터였을까.

밥상에 나물이 없으면

조금 허전해진 게.


고기나 국이 없어도

나물 몇 가지가 있으면

밥을 먹은 느낌이 들었다.

이유는 분명하지 않다.

몸이 먼저 안 것 같기도 하고,

그냥 오래 보다 보니

익숙해진 것 같기도 하다.


나물은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간다.


같은 고사리라도

얼마나 삶았는지,

얼마나 우려냈는지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두릅도 마찬가지다.

조금만 성급하면

쓴맛이 앞서고,

조금만 서두르면

몸이 먼저 반응한다.


그래서 나물은

대충 만들 수가 없다.


먹을 게 귀했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농사가 한 번만 어긋나도

밥상은 바로 흔들렸을 것이고,

가뭄이나 전란 같은 일은

설명 없이 찾아왔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들이나 산으로

향했을지도 모른다.

이유는 단순했을 것이다.

그날 먹어야 했기 때문이다.


나물은

그 선택의 흔적처럼 남아 있다.


그래서 나물의 조리법은

맛을 내기 위한 기술이라기보다

먼저 먹을 수 있게 만드는 방법에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불은 세지 않고,

양념은 과하지 않다.

많이 넣지 않고,

티 나게 꾸미지도 않는다.


검소하지만 대충은 아니고,

소박하지만 무지는 아니다.


괜히 오래 남은 음식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나물이 싫지 않다.


여전히 화려하지 않고,

여전히 말이 없다.


다만

왜 그렇게 만들어졌는지는

조금 알 것 같다.


나이가 들었다기보다는,

이해할 수 있는 음식이

하나 늘어난 것에 가깝다.



Epilogue

이 글은 나물을 미화하려는 것도,

어떤 교훈을 꺼내려는 것도 아니다.

그저 밥상 위에 남아 있던

조용한 반찬 하나를

조금 오래 바라보다가

스쳐간 생각을 적어두었을 뿐이다.



#나물 #밥상의기억 #먹는다는것 #검이불루화이불치

#나이가든다는것


(이미지출처 :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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