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를 마치고 나면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잘 얘기했다는 느낌은 분명히 남아 있는데,
정작 무엇을 합의했는지는 또렷하지 않은 상태.
말은 충분히 오갔고
서로 고개도 여러 번 끄덕였는데
집에 돌아와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는 각자 다른 결론을 들고 흩어진 것 같을 때가 있다.
그날의 대화가 실패였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싸우지도 않았고,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았으며,
어색한 침묵도 없었다.
오히려 매끄러웠다.
그래서 더 이상했다.
같은 언어를 쓰는데도
대화가 어긋난다는 느낌은
대부분 나중에 온다.
그 순간에는
서로 이해했다고 믿는다.
정확히는,
서로 오해하지 않았다고 믿는다.
말은 흘러갔고
상대의 문장은
내가 이미 생각하고 있던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번역되었다.
그 번역이 정확했는지는
그다음 행동에서야 드러난다.
"그게 그런 뜻이었어?"
라는 말이 뒤늦게 튀어나오는 순간,
우리는 그제야 깨닫는다.
아,
우리는 같은 말을 했을 뿐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지는 않았구나.
요즘의 대화는
이해를 목표로 하기보다는
확인을 목표로 하는 경우가 많다.
상대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그 말이 맞는지,
불편하지 않은지,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인지부터 살핀다.
이 과정이 너무 빠르게 일어나서
정작 말의 중심은
귀에 닿기도 전에 지나가버린다.
그래서 대화는 끝났는데
서로의 생각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은 채 남는다.
말은 충분히 했지만
의미는 머물지 않는다.
대화를 하다 보면
정작 중요한 진실은 사라지고,
그 과정에서 생긴 오해와
그로 인한 기분만 남을 때가 있다.
어느새
기분이 태도가 되고,
태도가 대화를 대신한다.
그 순간부터
우리는 무엇을 말하고 있었는지보다
어떻게 느꼈는지를 놓고
말하게 된다.
이런 장면이 반복되다 보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이게 나만의 문제는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
말은 더 또렷해지는데
대화는 이상하게 짧아진다.
모두가 말하고 있는데
정작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 풍경.
그래서 나는 요즘
대화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조금 늦게 안심하려 한다.
우리가 정말 같은 언어로
잠시라도 머물렀는지,
아니면
각자의 생각을 정리하고
조용히 돌아선 것인지를
시간이 지나 확인하게 되더라도
스스로를 속이지는 않기 위해서.
강한 사람은 아닐지 몰라도
적어도
모른 척하면서 조용해지고 싶지는 않다.
이 글은
대화가 어긋나는 순간을
붙잡아 두고 싶어서 적었다.
조용해지는 대신,
나는 한 문장 더 기다려보려 한다.
#대화의감각 #언어의오해 #듣기의태도
#말과사이 #요즘생각
(이미지출처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