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로를 이탈했습니다

by 깊고푸른밤

띠링.


익숙한 경고음이 울린다.


"경로를 이탈하여 재탐색합니다."


예전에는
이 소리가 이상하게 싫었다.
도착 예정 시간이 5분 늘어나는 게
내 하루가 5분 어긋난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어떻게든 끼어들고,
앞차를 바짝 따라붙으며
기계가 그려준 파란 선을
벗어나지 않으려 애썼다.


최적 경로가 아니면
틀린 길이라고 믿었으니까.


운전은 고칠 수 있다.
지나치면 돌아가고,
잘못 들면 새 길이 나온다.
기계는 늘 말이 없다.


사는 건 다르다.
어디서부터 잘못 들어왔는지 아는데
차를 돌릴 공간이 없다.
뒤에서는 계속 밀고,
출구는 아직 멀다.


멈출 자리도,
핸들을 넘길 사람도 없다.


그럴 땐
그냥 흘러가는 수밖에 없다.
내가 고른 속도가 아니어도,
내가 정한 목적지가 아니어도.


요즘은 가끔
일부러 핸들을 틀어
모르는 길로 들어선다.
내비게이션이 돌아가라 보채면
아예 꺼버린다.


가다 보면
생각보다 괜찮은 국도가 나오고,
이름 모를 저수지가 보이고,
줄 서지 않아도 되는
기사식당을 만난다.


빠르진 않다.
하지만 이상하지도 않다.


도착 시간은
조금 늦어질지 모르겠다.
그래도 상관없다.


나는 지금
속도를 줄인 채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길 위에 있다.



#경로이탈 #재탐색 #삶의속도 #낯선길


(이미지출처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