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한 추락에 대하여

영화 "어쩔 수가 없다"가 남긴 질문

by 깊고푸른밤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았고, 앞으로 아무런 사전정보 없이 영화를 보시고자 하시는 분이라면 패스하시길.)



영화가 끝났는데도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넷플릭스의 다음 회차 안내가 조용히 화면에 떠 있었지만, 리모컨을 집어 들지 않았다.


잔인한 장면 때문이 아니다.

화면 속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정리된 남자의 얼굴에서,

매일 아침 욕실 거울 앞에 서 있는 나의 표정이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어쩔 수가 없다〉는 제목부터 비겁하다.

주인공 만수는 악당이 아니다.

그는 사이코패스도 아니고, 세상을 파괴하려는 테러리스트도 아니다.

25년간 성실하게 일했고, 가족을 부양했으며, 해고 앞에서도 가장의 무게를 놓지 않으려 애쓴,

그저 평범한 중산층일 뿐이다.


문제는 바로 거기서 시작된다.


그는 자신과 가족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재취업의 잠재적 경쟁자들을 제거하기로 한다.

살인은 끔찍하지만, 그의 논리는 놀라울 만큼 차분하다.

그가 지키려는 것은 단순한 주거 공간이 아니다.

태어나 자란 옛집을 다시 사들여, 가족과 함께 살기 위해 정성껏 고쳐온 집.

도심에서 조금 비켜선 그 공간은 만수에게 삶의 기준이자, 더는 물러설 수 없는 마지막 선이다.


박찬욱 감독은 의도적으로 도심 속 '아파트'라는 공간을 지웠다.

대한민국 중산층의 표준 공간을 비워내고,

대신 손으로 고치고 끝까지 책임져야 하는 집만을 남긴다.

관리비로 유지되는 공간이 아니라, 무너지면 온전히 개인의 실패로 귀속되는 공간.

그래서 이 이야기에서 집은 '배경'이 아니라,

인간이 끝까지 책임져야 하는 '양심'이 된다.


그 집을 지키기 위해, 그는 또 하나의 이유를 꺼내 든다.

세상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딸이다.


영화 속 딸은 첼로를 켠다.

아이는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있다.

만수에게 딸아이의 첼로는 그 아이가 세상과 연결될 수 있는 유일한 끈이자,

부모가 사라진 뒤에도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으리라 믿는 마지막 보루다.

돈이 없으면 레슨도, 악기도,

그리고 아이의 존엄도 지킬 수 없다.


살인 이후의 정리된 얼굴과, 딸이 연주하는 우아한 첼로 선율이 겹쳐질 때

우리는 질식에 가까운 아이러니를 경험한다.

그의 모든 범죄는 ‘부성애’와 가족에 대한 ‘책임’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다.


우리는 흔히 비극이 광기나 비합리적인 충동에서 시작된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믿음을 차갑게 배신한다.

만수의 추락은 계단식이다.

그는 단 한 번도 미친 짓을 하지 않는다.

매 순간, 그 상황에서 가장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선택을 했을 뿐이다.

다만 그 선택의 방향이 타인을 지우는 쪽이었을 뿐이다.


아내 역시 다르지 않다.

그녀는 남편을 적극적으로 말리지도, 돕지도 않는다.

딸을 끌어안은 채 침묵하며, 남편이 가져온 결과를 공유한다.

그 침묵은 낯설지 않다.

시스템의 부조리를 알면서도, 내 몫의 안정을 위해 입을 다물었던 수많은 순간들이 겹쳐 보인다.


이 영화를 보며 가장 불편했던 이유는 주인공이 악인이어서가 아니다.

그가 너무나 성실했기 때문이다.


비극은 판단을 포기했을 때 완성되지 않는다.

잘못된 전제 위에서, 판단을 지나치게 성실히 반복했을 때 완성된다.


사실 그에게도 선택지는 있었다.

조금 더 작은 삶을 받아들이거나,

사회적 추락이라는 얕은 상처를 감수하는 길 말이다.

그러나 그는 그 작은 실패를 견디지 못했다.

그래서 더 큰 지옥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간다.

그때마다 그는 주문처럼 중얼거린다.


"어쩔 수가 없잖아."


어쩔 수 없다는 말은 불가항력의 고백이 아니다.

다른 선택지를 보지 않겠다는 선언이며,

책임으로부터 한 발 물러서기 위해 스스로에게 씌우는 가장 적극적인 '자기기만'이다.


그는 끝까지 합리적이었다.

문제는 그 합리성이 단 한 번도 인간을 기준으로 삼지 않았다는 점이다.


영화는 끝났지만,

그 질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거울 앞에서 묻는다.

이건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까.



Epilogue

이 글은 영화를 핑계 삼아,

내가 얼마나 자주 ‘어쩔 수 없다’는 말을

생각보다 손쉽게 꺼내왔는지를 돌아본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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