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함은 어디까지 허용되는가

by 깊고푸른밤

"나는 원래 솔직한 스타일이야."


이 말은 종종
자신을 설명하는 문장처럼 들린다.
하지만 가만히 듣고 있으면
성격 소개라기보다는
일종의 '예고'에 가깝다.


이제부터 나올 말이
조금 거칠 수 있다는 신호.
그 말을 들은 사람은
미리 한 번 긴장하게 된다.


솔직함은 개인의 성향일까,
아니면 관계 안에서 조정되어야 하는 태도일까.


우리는 늘 관계 속에서 말한다.
혼잣말이 아니라면
모든 솔직한 말에는
반드시 도착할 상대가 있다.


그 순간 질문은 이렇게 바뀐다.


내가 쏟아내고 싶은 욕구와
상대가 다치지 않을 권리 사이에서
어디까지가 허용되는가.


"돌려 말하는 건 싫어."
"있는 그대로 말해야 속이 편해."


이 말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말하는 사람의 감정은 분명하지만,
듣는 사람의 자리는 비어 있다는 것.


솔직함이 나를 편하게 만드는 순간,
그 불편함의 총량은
고스란히 상대에게 옮겨간다.
이 이동은
대개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이루어진다.


문제는 솔직함이
아무 조건 없는 권리처럼 쓰일 때다.


"난 솔직할 뿐이야"라는 말 뒤에는
무책임한 전제가 숨어 있다.
내가 뱉은 말의 파편에
누군가가 다치더라도
그건 네 몫이라는 태도.


그 순간 솔직함은
미덕이 아니라
'폭력'에 가까워진다.


관계는 성향이 아니라
조율 위에 세워진다.


사회란
각자의 날 선 솔직함이
정면으로 부딪히지 않도록
속도를 늦추고
각도를 비틀어주는
완충지대에 가깝다.


그래서 다시 묻게 된다.
나의 솔직함은
타인의 기분을 망칠 권리까지
포함하는가.


나는 여전히 솔직한 편이다.
다만 예전처럼
그 말을 서둘러 꺼내지는 않는다.


말하기 전에
한 번쯤 멈춘다.
이 말이 나를 시원하게 할지,
아니면 우리 사이에
금 하나를 더 낼지.


그 필터를 통과하지 못한 말은
굳이 밖으로 나올 필요가 없다.


입술을 달싹이다가
도로 다문다.
혀끝에 맴돌던 말은
삼켜져 식도로 넘어간다.


꿀꺽,
잠깐 목구멍이 뜨겁다.


식어가는 커피 잔 너머로
아무것도 모르는 상대의 얼굴이 있다.
테이블 위에는
미지근한 침묵만 남아 있다.


그걸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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