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오래 남는 날을
설명할 수 있는 사건에서 찾는다.
합격, 계약, 이직, 이별.
날짜를 말할 수 있고
사진을 꺼낼 수 있는 날들.
그런데
오래 남아 있는 장면은
대부분 기록이 없다.
비 오는 날,
지하철 출구 자동문이 열렸다 닫히는 사이
서로 모르는 두 사람이
같은 박자로 한 발씩 물러난다.
계단 끝은 이미 젖어 있고
우산을 펴기엔 공간이 모자라다.
앞사람은 휴대폰 화면을 다시 켜보고
나는 우산 끝에서 떨어지는 물을 본다.
말은 없다.
눈도 마주치지 않는다.
몇 초 뒤
자동문이 닫히고
각자의 방향으로 흩어진다.
바닥에 번진 물이
천천히 퍼진다.
현관에 벗어 둔 신발이
한쪽만 살짝 돌아가 있다.
가방을 내려놓고
외투를 벗지 않은 채
잠시 서 있다.
불은 켜지지 않는다.
창밖 간판 불빛이
벽 한쪽을 스친다.
씻고,
휴대폰을 뒤집어 놓고,
알람을 맞추고,
이불을 덮는다.
그날은 그대로 끝난다.
다음 날은
그 위에 얹힌다.
지하철은 다시 멈추고
자동문은 같은 속도로 열린다.
계단은 젖어 있고
누군가는 우산을 접는다.
나는 한 발 물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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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