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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_날이 더워지면

by 슈슈

중요한 시험이 있어서 잠시 공부에 집중을 했는데 잘 마무리하고 드디어 다시 브런치로 컴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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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따뜻해지면서 선풍기도 꺼내서 세팅해 놓고 에어컨도 점검받으며 여름맞이 준비를 완료했다. 창밖 풍경이 초록으로 바뀌고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는 날씨에 맘이 설레어 커피 한잔 내려 창문 밖을 바라보며 오랜만에 옛 생각에 젖어들어본다.


나는 인천에서 두바이, 두바이에서 튀니지로 이동을 했다. 날씨가 한창 더울 때라 마음에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공항을 나서던 그 순간의 공기의 온도와 냄새를 잊지 못할 것 같다. 마치 건식 사우나에 들어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숨이 턱 막히는 뜨거운 공기였다. 파란 하늘에 흙빛 낮은 건물들이 드문드문 서있는 생경한 풍경이 나의 첫 튀니지이다.


튀니지의 여름은 45도 넘게 기온이 올라간다. 하지만 사막이 있는 지역을 가면 참 희한한 것이 그늘에 서면 시원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길을 걷다가 가로수 밑에서 잠시 쉬었다 다시 걸으며 한국의 '빨리빨리'와 다른 템포로 살아가야 포기하지 않고 목적지까지 갈 수 있다. 이런 깨달음을 내가 더 빨리 생활에 적용했다면 더 즐거운 경험을 많이 할 수 있었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조금 남지만.. 나는 동료 1명과 함께 홈스테이 집으로 보내졌다. 동네는 허름하고 좁은 골목으로 이루어져 있어 돌아다니기 쉽지 않았다. 더군다나 튀니지는 한국과 다르게 집을 직접 짓거나 살다가 늘어나는 가족에 맞춰 증축을 하기도 하기 때문에 똑같은 집이 거의 없다. 우리 홈스테이 집은 1층에 아빠가 운영하는 전화가게가 있고 그 입구를 통해 들어오면 중정이 있었다. 바닥부터 벽까지 파란 아라베스크 타일로 장식되어 보기에도 실제로도 시원한 중정의 끝에 내가 묵는 방이 있었다. 중정에서는 하늘을 맘 놓고 볼 수 있었는데 가끔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정원에 나와 밤하늘을 보곤 했다.


내가 튀니지에 도착했을 때 당시 라마단이라는 금식기간이었다. 이 기간에는 해가 떠있는 동안에도 일은 하되 먹고 마시지 않는다. 이슬람 신자가 아닐지라도 금식하는 사람들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앞에서 먹거나 마시지 않는다. 하지만 반대로 해가 떨어진 밤에는 파티가 벌어지는데 라마단 한 달 동안을 간헐적 폭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 생각한다. 나 같은 이방인은 이 라마단이 현지인들과 친해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첫해에는 홈스테이 가족들과 항상 같이 식사를 하고 식탁에서 영어와 그날 배운 아랍어를 섞어서 쓰면서 수다를 떨고 차를 마시면서 이해는 안 되지만 드라마를 함께 보았다. 아침에 어학원에 가서 프랑스 수업과 아랍어 수업을 듣고 집에 와서 현지인 가족들과 떠들어댔고 어느덧 한 달도 안 돼서 아랍어로 꿈을 꾸게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집을 배정받고 얼마 안 돼서 어학원에서 숙제로 홈스테이 가족들과 상의해서 현지에서 사용할 이름을 정해오라고 했다. 우리 가족들(특히 아빠)은 이 얘기를 듣고 식사 내내 고민에 빠져있었다. 그리고 나와 동료에게 이름을 정해주었다.


나의 이름은 عائشة


이슬람 선지자의 아내 이름인 아이샤로 중동에서 많이 쓰이는 여자 이름이다. 이슬람 국가에서는 존경하는 인물이나 부르기 좋은 이름, 뜻이 좋은 이름 등으로 이름을 결정한다고 한다. 홈스테이 언니의 부연설명으로는 좋은 인생이라는 뜻이 있는데 내가 당시에 20살이 갓 넘은지라 앞으로의 삶을 응원해 주는 마음에서 이런 이름을 주었던 것 같다. 실제로 이 이름은 아직도 쓰고 있고 나는 썩 좋은 인생을 살고 있는 듯하다. 이름에 관해서는 다음에 조금 더 이야기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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