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살 때는 귤귀신이라 불릴 만큼 귤 수확철이 되는 겨울이 되면 박스로 두고 먹어 손발이 노래지곤 했다. 귤을 포함한 거의 모든 과일을 좋아하는 나에게 튀니지는 천국과도 같았다. 지중해성 기후를 띄는 튀니지는 과일 맛집이다. 퇴근길에 과일가게 앞에 서서 어떤 과일을 살지 고민하는 것은 나에게 소소한 행복이었다. 튀니지는 과일 값이 무척 싸기 때문에 가격보다는 한 번에 들고 갈 수 있는 양 안에서 먹고 싶은 과일을 고르는 것이 나의 주된 고민이었다. 특히 수박을 사는 날은 전신 운동하는 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튀니지 수박은 사람 머리 두 개정도 크기에 10킬로가 훌쩍 넘어 무게를 달 때, 추를 한없이 올려야 했고 수박을 사기 위해서는 냉장고를 비워놔야 했다. 한번 사면 4등분으로 갈라 먹기 좋게 쓱쓱 잘라 냉장고에 넣어놓고 아침, 점심, 저녁 부지런히 먹으며 더운 여름을 시원하게 보냈다. 가끔 한국 생각이 날 때면 스프라이트 사와 큰 볼에 달큼한 속과 함께 쏟아붓고 주변에 사는 동료들을 불러 수박화채를 해먹기도 했다.
수박뿐만 아니라 다른 과일도 맛있었는데 5월이면 복숭아가 나왔다. 지금은 한국에서도 유명한 납작 복숭아를 튀니지 있을 때 처음 먹어봤는데 정말 말 그대로 꿀맛이었다. 나중에는 이탈리아, 프랑스에 갔을 때도 튀니지 생각이 나서 도착 첫날 현지 마트에 꼭 장을 봐두는 편인데 튀니지 같은 꿀복숭아는 아직 못 찾았다. 출근길 출출할 때 시장에 들러서 납작이나 딱딱이를 사서 기관에 출근해서 손으로 똑똑 잘라먹는데 과육이 싱싱하고 출근길 위에서 쏟은 땀으로 핑핑 도는 머리를 진정시키기에 안성맞춤이다.
10월쯤이면 튀니지도 한국의 늦여름 같은 날씨가 되고 겨울이 오려고 한다. 이때쯤이면 알이 꽉 찬 석류가 나온다. 그럼 큰 볼을 받치고 4등분한 석류를 들고 껍질 쪽을 주걱으로 팡팡 두들겨주면 동글한 알이 우수수 떨어져 나왔다. 내가 튀니지에 살 때는 1킬로에 3천 원 정도밖에 안 해서 손이 많이 가긴 하지만 자주 사다 먹었다. 석류를 어떻게 먹냐라고 묻는다면 첫 번째, 그냥 먹는다. 두 번째, 레몬즙을 살짝 둘러 먹는다. 이건 튀니지석류가 정말로 달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는 레시피인데 알을 탈탈 털고 그 위에 생레몬즙을 둘러주고 숟가락으로 퍼먹으면 최고다(군침 돌아..) 세 번째는 조금 아깝지만 시럽 혹은 소스를 만드는 것이다. 알맹이만 뺀 다음에 즙을 짜고 그것을 졸이기만 하면 샐러드, 치즈, 고기 어디에나 섞어 쓸 수 있다. 우리 엄마가 튀니지에 오셨을 때 한번 만들어봤는데 손이 너무 많이 가서 그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들고 안녕!
튀니지는 도시에 아파트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한국의 다가구 주택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조금 넓은 공간이 나오고 1층 집의 현관과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 1층의 자투리 공간에서 아이들이 놀거나 나무를 심어 화단이 있다. 튀니지는 일조량이 좋아 레몬, 오렌지 나무를 집에 많이 심는다. 튀니지의 겨울은 0도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 나름 따뜻한 겨울이기 때문에 겨울에도 오렌지와 레몬이 나무에 열려있다. 그래서 밖에서 친구들과 양고기를 구워 먹을 때 레몬 나무에 올라가서 바로 레몬을 따서 고기에 뿌려 먹었던 기억이 지금 생각해도 참 즐거웠다.(아래서부터 따먹기 때문에 겨울이 되면 위쪽 밖에 남지 않는다;;)
과일이 다시 먹고 싶은 건지, 그 시절이 그리운 건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옛날을 떠올리면 마음이 몽글몽글하고 다시 갈 수 없다는 사실에 조금 울적한 느낌이 들곤 한다. 사람들은 이런 감정을 불러오는 것을 모두 하나씩은 가지고 살아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