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름은 아이샤(عائشة)
만 20살에 튀니지에 가서 현지 홈스테이 가족들이 나에게 지어준 이름. 태어나서 평생 쓸 이름을 받은 것도 아니고 외국에서 쓰는 이름이 크게 중요할까라고 생각했지만 큰 오산이었다.
이 이름은 많이 쓰기도 하고 선지자의 아내의 이름이기도 하기 때문에 굉장히 현지스러운 이름이라 할 수 있겠다. 튀니지에서 회사나 시장에서 사람들과 인사할 일이 정말 많은데 통성명을 할 때 내 이름을 말하면 대부분 무슬림이냐고 물어볼 정도로 나에 대해 호기심을 자극하고 다양한 주제를 이야기할 수 있게 물꼬를 터줬다. 비록 내가 무슬림이 아니라 할지라도 현지 이름을 사용한다는 것에서 좋은 인상을 받고 짧은 아랍어지만 튀니지 사투리도 떠듬떠듬 수다를 떨기 시작하면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특히 수도가 아닌 지방에 근무할 때는 수많은 아이샤들 중에 동양인은 the one and only였기 때문이다.
때론 다르게 불리기도 했는데 아이한테 쓰는 귀엽게 부르는 방법이라고 했다. 예를 들어 라일라(ليلى)라면 '루루', 와르다(وردة)는 '두두' 이런 식으로 부르는 것인데 당시에 내가 어리기도 했고 동양인이라 더 어려 보였는지 옆집 할머니, 집주인아줌마, 슈퍼 아저씨, 어린 친구들까지 나를 슈슈라고 불렀다. 당시에 동네 아이들에게 음악수업도 하고 한글도 알려주고 그랬는데 애들이 나를 꼬맹이 취급하는 것 같아서 처음에는 난감했다. 나중에는 다들 친해지고 싶고 좋아하는 맘에 그랬다는 것을 알고 더 친하게 지내게 되었지만 말이다.
나는 지금도 아이샤라는 이름을 쓴다. 나와 내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에게는 아이샤라는 이름을 알려주고 그들도 그 이름으로 나를 부른다. 왜냐하면 한국이름으로 살았던 시간보다 아이샤로 살아온 그 시간부터가 진짜 나인 것 같고 그게 진짜 내 이름인 거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