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은 뿔뿔이 떨어져 살고 있다.
엄마는 지방에서 친척들과 일을 하고 계시고 아빠는 서울에서 연로하신 할머니를 돌보고 계신다.
언니와 나는 각자 결혼해서 20분가량 거리에 떨어져 살고 있다. 요즘 한 살 한 살 먹어갈수록 할머니를 돌보느라 혼자 지내는 아빠가 걱정이 된다. 한 달에 한 번은 꼭 같이 모여서 밥도 먹고 술도 한잔씩 하지만 그래도 흰머리가 늘어가고 터덜터덜 걷는 아빠의 뒷모습을 마주할 때면 걱정이 커져갔다.
얼마 전 토요일, 남편과 장을 보고 집에서 저녁을 먹고 있는데 평소 왕래가 없던 고모한테서 전화가 왔다.
"오랜만이다? 다름이 아니라 네 아빠가 하루 종일 연락이 안 되는데 혹시 같이 있거나 연락되니? 하루 종일 전화기가 꺼져있어. 이런 적이 없는데"
병원에 계신 할머니를 뵙고 온 고모가 아빠한테 전화를 했다가 전원이 꺼진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시계는 8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겉옷만 챙겨서 본가로 가서 주차하는 남편을 두고 먼저 올라갔다. 올라가는 동안 뒷머리가 저릿해지는 느낌이었다. 무슨 일이 없길 바라면서도 무슨 일이 있으면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집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아빠를 불렀지만 대답하는 사람 없이 집 안은 고요했다. 방문을 하나하나 열어보고 아빠가 없다는 걸 확인한 후, 그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소파에 앉아서 잠시 흥분된 마음을 진정시켰다. 남편도 집으로 와서 함께 고민을 했다.
"약속 있어서 나가셨는데 그때 마침 연락이 안 되었을 수도 있으니 기다려 보자. 아무 일도 없을 수 있어. 오히려 무슨 일이 있었다면 병원이나 경찰서에서 연락 왔을 거야."
남편 말이 맞다. 그리고 이렇게 일이 생겼을 때 흥분해서 우왕좌왕하기보다는 차가운 머리가 필요한 것 같았다. 적막한 집에서 아빠의 마지막 흔적을 찾아야 했다. 고모한테 다시 전화를 했다.
"집에 왔는데 아빠가 없어. 혹시 아빠랑 오늘 말고 언제 마지막으로 통화했는지 기억나요?"
"저번주에 할머니 병원 다녀온 얘기를 했는데... 너네는 아빠한테 통화 좀 자주 하지 아빠 혼자 있는데!!"
고모의 불안은 나에게 비난으로, 그 비난은 죄책감으로 번져갔다.
집안 곳곳은 찬찬히 둘러보다 보니 화분에 물을 준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다. 또 아빠 책상에서 어제 장을 본 영수증을 찾을 수 있었다. 어제까지 장을 본 것을 보니 오늘 아침에 집에서 나간 듯한데 지갑도, 차도 놓고 어딜 간 걸까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급한 대로 근처 병원 응급실을 찾아갔다. 밖에서 사고가 나서 무명으로 실려온 사람이 있을까 싶어서였다. 시간은 9시를 향해 가고 있었고 이제는 경찰에 신고를 해야 할 것 같았다. 날이 어두워져서 위험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경찰서를 찾아갔고 실종팀 담당결찰관을 만나 자초지종을 말씀드렸다. 말씀을 드리면서 아빠의 위치를 추적해봐야 할 것 같고 나이도 있으셔서 빠르게 진행해야 할 것 같다고 하셨다. 특이사항이 없냐고 하는데 갑자기 눈물이 터져 나왔다. 아빠가 잘못됐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문뜩 머리를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아침에 집 근처 산을 운동삼아 다니는데 혹시 실족한 건 아닐지.. 그걸 이제야 내가 알아차려가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그 순간에 나는 집에서 편하게 쉬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지
내가 혹시 몰라 본가에 불을 켜두었는데 혹시 아빠가 돌아왔을 때 도둑이 든 건 아닐지 놀랄까 봐 내가 집에 갔다가 불을 켜두었으니 놀라지 말라고 카톡을 남겨두었는데 아빠에게서 그것에 대한 답이 왔다. 너무 놀라 전화를 걸어봤지만 여전히 아빠의 전화는 꺼져있었다. 언니와 함께 본가로 뛰어 올라갔다. 문을 열자마자 아빠의 신발이 보였다. 안도의 한숨과 함께 기운이 쭉 빠졌다. 아빠 또한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아빠의 핸드폰을 확인해 보니 이 모든 원인은 '비행기모드'였다. 언제부터 눌린 건지는 모르지만 실수로 비행기모드가 켜져 있었고 하루 종일 연락이 되지 않았던 것이었다. 다행히도 해프닝으로 끝났고 경찰서에 전화해서 감사인사를 드리면서 무사귀가 소식을 전했다.
언니는 비행기모드를 제어항목에서 아예 빼버렸고 나는 부모님께 조금 더 자주 연락을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워치에 '내 폰 찾기' 기능을 통해 위치를 알 수 있다고 하니 부모님과 함께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부모님이 연세가 드시니 이전에 없던 고민을 하게 된다. 이번에는 처음이라 당황했지만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 되기를 기대한다. 나와 같이 가족이 귀가하지 않거나 실종된 것 같을 때는 경찰서를 방문해도 되지만 112로 바로 신고해도 된다고 하니 급할 땐 전화를 이용하면 좋다. 끝으로 신고하고 얼마 안 돼서 해결돼서 너무 다행이었고 당황한 내 얘기를 잘 들어주신 경찰관, 병원 직원분들께 너무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