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짐과 여름

by 난이방인

나이가 들면 들수록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시간이란 기준으로 많이 고민하게 된다. 사회생활을 막 시작할 때는 새롭게 무언가를 시작한다고, 업무에 적응을 하면 무언가를 새롭게 한다고 나름대로 바쁘다.

그러다가 왜 이렇게 사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 무언가 하나는 해보자는 마음이 생겼다. 물론 다른 사람에 비해서 바쁘게 사는 상대적 박탈감으로 인해 생긴 생각이었지만 결심은 시멘트처럼 단단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런 마음이 생긴 시기는 여름이었다.

여름이기에 더운 날은 나를 움직이게 하기도 했지만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만들었다. 하지만 날씨를 생각하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하나씩 정하게 되었고, 정한 다짐을 이루어 가려고 노력했다.

예를 들면, 집 근처 산에 오르기, 뙤약볕 아래에서 한강변 자전거 타기, 혼자 카페에서 한 없이 책 읽기, 보고 싶은 전시회 보기, 유명한 빵집 가서 빵 먹기 등등 소소한 것들이었다.

특별하지 않지만, 시작하기 쉬운 것들, 소소한 것들 중심으로 찾아봤고 결국 결정한 것은 ‘인왕산 정산 오르기“였다.

어느 날 회사에는 사전 예고도 없이 연차를 내고 갈 준비를 했다. 모자와 500ml 생수 한 병, 선크림을 담은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섰다.

서대문에 있는 삼성병원 옆길로 들어가면서 크게 한숨을 들이켜본다. 32도를 왔다 갔다 하는 날씨는 변덕도 없이 꾸준히 공기를 데우는 것 같다. 맘먹은 일이니 시작은 해봐야지 하고 인왕산 초입에 도착했지만 하늘 한번 보고 나 스스로를 들여다보니 굳은 마음은 더운 날 얼음처럼 조금씩 녹아 작아진다.

“그래도 가자, 이번 기회가 아니면 또 미루고, 미루고, 결국 못한다.”

걷기 앱을 켜고 생전 처음 뵙는 여자분이 길을 가르쳐 준다. 인왕산 초입에 도착하는 순간, 이 길이 맞나 싶게 주택가를 지나니 바로 입구란다. 올라보자. 길은 흙길이었고 가파르지 않고 쉽게 갈 수 있었다. 한참 오르고 나니 역시 내 체력도 체력이지만, 더운 공기가 내 몸을 괴롭힌다. 들고 간 생수는 어느새 바닥이 났다. 생수를 챙길 때 심산은 나도 체력적으로 자신있었고, 어릴 때부터 엄마를 쫓아 관악산을 자주 가서 등산은 혼자 자신 있어 이 정도 물이면 충분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 물은 금세 비워졌다.


머릿속에서 내려가자고 외치기 시작했다. 내려가면 올라왔던 것이 아까워 다시 올라간다. 어느새 수백 개의 계단인 계단지옥을 지나 정상에 올랐을 때는 머리가 핑 돌았다. 화창하게 파란 하늘은 무심히 ‘하늘 이쁘지 않아?’하는 것 같은데, 내 눈은 하늘 아래 수많은 건물을 보고 있다. ‘얼렁 내려가자. 힘들다...’



내려오면서 보이는 벤치마다 누웠다가 갔다. 사람이 탈진이 나면 이런 것이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윤동주 문학관에 도착해서야 내가 마음먹은 것을 해내었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해내었으니 기뻐야 하는데 생각만큼 기쁘지 않았다. 결심한 것을 실행하고 해내었다는 것으로 보면 충분히 스스로를 칭찬해 줄 만한 일인데도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았다.

버스를 타고 멍하니 창밖을 보면서 나는 다시 한번 더 해야겠다 결심했다. 내가 즐기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었다. 다른 날에 다시 와야겠다. 내가 즐겁게 즐길 수 있도록 다시 하늘을 보고 공기를 마셔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