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잘 나갔지만, 지금은 2군으로 뛰고 있는 야구 선수 치성. 애인과 이별하고 시한부 선고까지 받으면서, 세상에 홀로 남겨진 듯한 절망에 빠져있다. 오갈 데 없는 치성을 달래주는 건, 친한 형이 하는 단골 바 뿐일까. 하지만 그곳에서도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이기지 못하고 이내 쓰러진다.
무너진 치성을 챙기는 건 다름 아닌 바텐더 이연. 차분하고 조용한 줄만 알았는데, 그날 이후 치성의 곁을 맴돌며 서툴게 혹은 당돌하게 마음을 표현하기 시작한다. 알고 보니 그녀는 학창 시절부터 같은 동네에 살았던 이웃으로, 오랫동안 치성을 짝사랑해 온 인물이었던 것.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다가오는 사랑을 환영할 수 없는 치성. 그리고 그런 속도 모르고 조금씩 가까워지는 관계에 즐거워하는 이연. 왠지 복잡한 두 사람 사이로, 인연은 신비하게 흘러간다. 사랑이란 게 대관절 무엇이길래.
# 마감 임박의 가지치기
밀당이란 뭘까. 밀고 당기기. 관심을 끌려고 일부러 거리를 두거나 친한 척하는 등, 감정의 텐션을 조절하는 행동을 이르는 말이다. 대개 연애 상황에서 사용하는 단어지만, 일상생활 곳곳에 밀당 아닌 지점이 없다. 클라이언트와의 계약 상황에서도, 정치인과 유권자 사이에서도, 심지어 타임세일을 외치는 전단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서로의 재화를 손해 없이 교환하고자 하는 기술. 반의어 두 개를 그저 붙여놨을 뿐인데, 실제 뜻 너머 관용적인 긴장감이 넘친다.
이 같은 상호작용은 등가교환을 원칙으로 하지만, 아름다운 윈윈은 왜 이리 어려운지. 둘 중 누군가 욕심을 더 부리기라도 하면 결렬이다. 어느 정도 힘이 균형을 이루어야 서로 만족할 만한 합의점이 나올 터다. 하지만 상대가 강력한 데다 대안이 없다면 어쩔 텐가. 너 말고도 일할 사람 많고, 오늘만 한정판매라는데 발길을 안 멈추고 어떻게 배기겠어. 갈 길이 바빠도 둘러는 봐야지.
영화 <아는 여자> 속 동치성의 모습이 그렇다. 그는 현재 좌천된 2군 신세에, 사랑이라 믿었던 관계도 빈 깡통이 되어버린 처지. 속은 열불이 터지지만 그래도 괜찮다며 웃어 보인다. 세상과의 밀당에 무너지지 않고 이내 평정심을 찾는 치성. 자신은 아직도 첫사랑을 못 해봤다는 말로 슬픔을 이해한다. 그러나 그런 자기 다스림도 의사의 충격적인 한마디에 기능을 잃어버린다. 길어야 3개월, 내년을 볼 수 없다.
내일이 있기에 다시금 해볼 의지가 있던 건데, 갑자기 내 인생이 마감 임박이라니. 발걸음에 전원이 꺼진다. 연습을 위해 야구장에 올라섰어도, 날아오는 공을 쳐다보지도 않고 그저 서 있는 게 전부다. 오늘의 홈쇼핑이 마감되더라도 새로운 구성으로 언젠간 돌아올 일이고, 따지고 보면 없이도 살아갈 인생이다. 그런데 삶이 종료된다는 건 선택권이 박살 난 게임이잖아. 강제로 타임세일 인생에 떠밀린 치성. 뭐라도 골라야 한다. 시간이 부족해서 모든 걸 다 가져갈 수 없다. 사소한 질문은 접어두자. 곁가지를 잘라내 본다. 이것저것 치우고 나니, 오랜 시간 해소되지 않았던 마음속 질문 하나가 남았다. 사랑이란 정말 무엇일까.
# 1인 1사랑 체제
사랑을 궁금해하는 치성의 모습은 사실 의뭉스럽다. 밀당 따윈 집어치운 이연의 순수한 직진을 무심하게 흘려보내면서 사랑이 웬 말이야. 시한부 인생이라 다가오는 관심에 거리를 두려는 마음은 알겠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그런 사사로운 감정은 사치일 테니까. 그럼에도 그의 세계에 마지막 남은 질문이 사랑이라니. 도대체 무슨 기억이 새겨있길래 몸과 머리가 따로 노는 걸까. 이에 영화는 수년 전 치성의 귓가에 맴돌았던 한 관중의 외침을 떠올린다.
“니가 날 정말로 사랑한다면 나랑 같이 죽으면 되잖아! 그렇게 사랑하다 죽어버리면 우리가 원했던 사랑을 이루잖아. 사랑을 잡아! 이 X신아!!”
사랑한다면 같이 죽자는 서러운 외침. 경기장에서 얼어붙었던 그때의 심경만큼이나, 지금의 치성을 더 혼란스럽게 만든다. 자신은 미친 듯이 붙잡고 싶은 목숨인데, 그깟 사랑이 대체 뭐라고 죽는다는 말을 어찌 저리 꺼낼 수 있나 싶다. 남들에겐 다 있는 내년이 나에겐 없다는 것도 겨우 받아들였는데. 그 소중한 걸 포기하게 하는 저 뜨거움은 무엇인가. 잃는다는 감정은 강력하다. 우리는 얻는 기쁨보다 사라지는 고통에 더욱 민감하다. 신경이 쓰였음에도 어물쩍 흘려보냈던 그날의 소란은, 결국 생의 마지막을 정돈하는 질문이 되었다.
“사랑이 뭐 대수냐. 여자 만났다? 이름부터 물어보고. 그 이름 알면 그 이름을 가진 그 여자 사랑하는 거고. 그리고 나이 물어보고”
“사랑에 대해 잘 몰라요. 근데 사랑하면요. 그냥 사랑 아닙니까? 무슨 사랑 뭐 어떤 사랑 뭐 그런 거 어디 있나요? 그냥 사랑하면 사랑하는 거죠.”
기회가 날 때마다 사랑이 뭔지 아느냐 묻는 치성. 이에 영화는 사랑학개론 교수님에게 물어야만 할 것 같은 인생 난제를, 그저 흩뿌리듯 늘어놓는다. 사랑이 뭐 대수냐. 사랑하면 그냥 사랑 아니냐. 혜안을 구하는 이에겐 어찌 보면 참으로 가벼운 대답일 터. 한데 그렇다고 틀렸다고 할 이유도 찾을 수 없다. 게다가 하나하나 겹치는 의견도 없다. 은행강도, 도둑, 야구 코치님, 경찰서 반장님, 심지어 돌아가신 아버지까지. 이들이 생각하는 사랑의 의미는 천차만별이다. 사랑은 도대체 무엇인지 남은 시간 동안 해소해야 하는데, 누구도 ‘모름지기’라는 말로 도장 찍어주지 않는다.
“사랑은 누구도 표현할 수 없는 각자 마음속에 어떤 것일지 모르는데, 왜 그렇게 틀에 맞춰 넣으려고 그럴까? 그리고 그 규격에 맞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라고 부정하려고 하는 걸까?”
영화를 연출한 장진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사랑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사랑은 결코 어떤 명제로 정의할 수 없는 고유한 것 즉, ‘사랑은 정의할 수 없다’라고 말하는 듯하다. 야구 경기에는 규칙이 있고, 시한부 진단에는 근거가 있다. 하지만 사랑을 정의하는 데는 어떤 이유도 필요하지 않단 거다. 각자 마음의 빛깔대로 이해하면 그뿐. 강요할 것도, 가르칠 것도, 혹은 자신을 부정할 것도 없는 신비한 개념이다.
영화 중반, 타자가 친 볼을 잡아서 관중석으로 던지면 안 되냐는 이연의 질문에, 치성은 “그럼 안 돼요. 아무것도 모르면서”라며 타박한다. 하지만 그의 볼멘소리에도 기죽지 않고 “그런 거 보고 싶은데, 재밌겠다”라며 방긋 웃는 이연. 그 미소엔 왠지 누군가 정해놓은 규칙에 얽매이지 말고, 자신의 사랑을 찾으라는 감독의 마음이 스친다. 사랑이 뭔지 아무것도 모르면 어때. 재밌을 텐데.
# 솔직하면 약점이 될지라도
사랑에 대한 각자의 고유한 철학만큼이나, 영화가 집중하는 게 또 하나 있다. 바로 순수한 이연의 표정이다. 무덤덤하고 냉소적인 치성의 눈치를 살피면서도, 오롯이 피어나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그녀. 특히 영화 중반 등장하는 영화관 데이트 신은 이연의 아이 같은 모습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영화관 로비에서 이별한 애인을 마주치는 치성. 그녀는 이연을 가리키며 누구냐고 묻고, 치성은 그냥 ‘아는 여자’라고 답한다. 멀리서 그 말을 듣고 있던 이연은 뾰로통한 얼굴로 한참을 생각하다가 이렇게 묻는다.
“아는 여자 많아요? 몇 명이나 돼요?”
설렘으로 가득했던 표정은 온데간데없고, 걱정이 묻어있는 목소리. 하지만 ‘아는 여자는 그쪽이 처음’이라는 치성의 대답에 이연은 곧바로 화색이 돈다. 들킬까 봐 숨기는 것도 아닌, 일부러 화끈하게 표출하는 것도 아닌,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끼는 적당한 최대치. 아무 전략 없는 순수한 빛깔은 관객에게 몽글한 마음을 오롯이 전달한다.
누군가는 즉각적인 일희일비를 경계하기도 한다. 기쁨을 나누면 질투가 되고, 슬픔을 나누면 약점이 된다면서. 그럴수록 영화는 시시각각으로 반응하는 이연의 얼굴에 더욱 집중하기로 한다. 물론 밀당의 기술도 페이스 조절도 의미 있는 관계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울고 웃고 서운해하고 기뻐하는 솔직한 감정만큼, 사랑을 담아내는 그릇이 어디 있을까. 어떤 모양새여도 상관없다. 찰랑찰랑 물을 채워낼 공간만 있으면 충분하다. 생김새에 뽐낼 것도 없다. 그릇은 그릇이니까. 70억 가지의 서로 다른 모습일지라도.
시한부 소재로 사랑 이야기를 다뤘지만, 결코 시한부의 서글픔에 집중하지 않는 영화 <아는 여자>. 치성의 아픔을 건조하게 묘사한 이유는, 아마도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우리 모두가 시한부 인생이기 때문일까. 제한된 시간선 위를 걸어간다며 인생의 밀당에 좌절할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시간제한이 걸리면 각성이 되는걸. 괜히 하지 못했던 가슴에 남은 질문들을 던져 보기도, 가식 없는 표정을 터뜨려 보기도 하자. 당신의 셔터를 내리기 전까지, 얼마든지 마음껏.
# 장진 감독님 영화는 판타지와 일상의 경계를 비추는 일종의 우화스러움이 있다. 자칫 딴세계 이야기처럼 보일 수 있지만, 굉장히 자연스럽게 우리네 사는 이야기로 이끈다. 수많은 단역들이 벌이는 따스한 유머코드는 물론이고, 일상에서 벌어질만한 특이점을 어쩜 그렇게 잘 녹여내는가 몰라. 특히 영화 속에서 치성과 이연이 감상하는 영화는, 일상극이라 못담은 아이디어를 대놓고 활용하기 위한 재밌는 장치다. 전봇대가 주인공인 영화라니. 정말이지 특유의 연극갬성이 풀풀 난단말야. 영화 속 영화의 ost를 싸이월드 bgm으로 해놓고 수만번 들었던 기억이 나네. 첫 음만 들어도 이미 동화 속에 들어온 기분.
https://youtu.be/ChoAX1yGdGA?list=RDChoAX1yGdG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