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종일 뭐한 거야
무엇인가 집착하는 것이 생기기 마련이다. 수페르가 운동화, 소주, 소설, 투시팝 막대 사탕, 파란색 변기 물. 놓을 수 없는 혹은 놓치기 싫은 것들이 상념을 먹어 치운다. 나쁘지 않은 현상이다. 그놈의 망할 잡념을 좀 줄일 필요가 있으니까.
의도치 않은 일도 있다. 전 여자 친구를 잊기 위해 홀로 떠난 여행. 호텔 방 TV를 틀자 낯선 TV 프로그램에서 전전 여자 친구가 나온다. 이런 일이 생길 수도 있나. 나쁘지 않다. 이런 특이한 우연이 흔하지는 않으니까.
종일 업무가 잘 풀린다. 숫자의 신이 내려왔다. 머릿속에 그림이 완벽하다. 어떤 질문이든 덤벼 보시지. 보고 하면서 욕을 한 바가지 얻어먹는다. 설렁설렁한 일은 극찬받는다. 나쁘지 않다. 내 능력치는 대충 할 때 극대화됨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갈수록 자신감이 없어진다. 사람에게 거리낌 없이 들이댈 때가 있었는데, 사랑이든, 우정이든 뭐든. 요즘은 자신이 없다. 지친 탓인가, 신중해진 건가, 아니면 어린 시절 소심함이 돌아왔나. 이건 좀 나쁘다. 겨우 성격 고쳤나 했는데 퇴보라니.
술에 취해 지갑을 또 잃어버렸다. 반성하며 정신을 지갑에 집중하고 다녔다. 그러자 스마트폰이 사라졌다. 이건 뭐 멍청함 등가교환인가. 놀랍게도 택시 기사님이 차고지 사무실로 갖다 놓았다. 이건 좋다. 아직 세상은 살만한 곳이다.
다섯 시간 동안 글을 세 문장밖에 못 쓰는 날이 있다. 주말을 허무하게 날렸다. 커피 두 잔 값이 아깝다. 그렇게 나쁜 건 아니다. 다섯 문장 쓰는 데 한 달 걸릴 때도 있었다. 애초에 재능 따위는 없다고 생각했다. 없으면 만들어가는 거지 뭐.
그런 이유로 이런 소소한 글이 탄생했다. 이것도 일종의 집착이다. 뭐라도 계속 써야 한다는 쓸데없는 집착. 젠장, 술이나 마시러 가야지.